2026.10.17 08:47 AM

미 연방법원, 뉴욕시 '성역도시' 정책 소송 기각...트럼프 행정부 또 패소

By 전재희

법원 "연방정부, 뉴욕시 정책 무효화해도 피해 해소 안 돼 소송자격 부족"
법무부 "ICE 활동 적극 방해하는 지방정부 규제 문제"...수정헌법 10조 해석 놓고 공방

뉴욕시의 이른바 '성역도시(sanctuary city)' 정책을 무효화하려던 트럼프 행정부의 소송이 연방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연방정부가 뉴욕시의 이민당국 협조 제한 정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충분한 법적 자격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으며, 연방법이 뉴욕시 정책에 우선한다는 법무부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바이든(Joe Biden) 전 대통령이 임명한 라몬 E. 레예스 주니어(Ramón E. Reyes Jr.)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15일 트럼프 행정부가 뉴욕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조란 맘다니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뉴욕시)

이번 판결로 뉴욕시가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구금 요청이나 정보제공 요구에 지방정부 기관이 어느 정도 협조할지를 제한해온 기존 정책은 계속 유지된다.

트럼프 행정부, 지난해 뉴욕시 상대 소송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는 2025년 7월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시의 성역도시 정책이 지방 경찰과 교정당국의 ICE 협조를 제한함으로써 연방정부의 이민법 집행을 불법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이었다.

법무부는 당시 뉴욕시가 연방 이민법 집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으며 연방법이 지방 조례보다 우선하는 헌법상 '최고법조항(Supremacy Clause)'에 따라 해당 정책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뉴욕시뿐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미네소타를 비롯한 주·지방정부의 성역도시 정책을 상대로 2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해왔다.

법원 "연방정부에 소송자격 없다"

레예스 판사가 가장 먼저 문제 삼은 부분은 연방정부의 '소송자격(standing)'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뉴욕시가 ICE의 구금 요청을 따르지 않고 연방 이민당국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연방정부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뉴욕시 정책을 무효화한다고 해도 비슷한 내용의 뉴욕주 법률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주장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법원이 뉴욕시 조례를 폐지한다고 해도 뉴욕주 차원의 협조 제한 규정 때문에 ICE가 원하는 지방정부의 협조를 바로 확보할 수 없으므로, 뉴욕시를 상대로 한 이번 소송만으로 연방정부가 주장하는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연방법 우선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아

레예스 판사는 연방정부에 소송자격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법무부의 핵심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연방 이민법과 뉴욕시 성역도시 정책이 충돌하기 때문에 연방법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예스 판사는 관련 연방법이 지방정부에 ICE 업무를 직접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법무부가 제기한 명시적·충돌·분야 선점 등의 연방법 우선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정헌법 10조 '강제동원 금지' 원칙 적용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헌법적 쟁점 가운데 하나는 수정헌법 10조에서 파생된 이른바 'anti-commandeering'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연방법 집행을 위해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공무원과 행정조직을 강제로 동원할 수 없다.

레예스 판사는 주와 지방정부가 자신의 기관과 직원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권리가 없다면 수정헌법 10조의 anti-commandeering 원칙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뉴욕시는 이 원칙을 근거로 지방경찰이나 교정기관이 연방 이민당국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받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법무부 측 논리는 "협조 강제 아닌 방해 금지"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측에서는 이번 판결이 지방정부의 '협조 거부'와 '적극적 방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전직 연방검사인 아비셰크 캄블리(Abhishek Kambli)는 Fox News에 수정헌법 10조가 연방정부가 지방정부를 강제로 이민단속에 참여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맞지만, 지방정부가 연방정부의 독자적인 법 집행까지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역시 뉴욕시 직원들에게 직접 불법체류자를 체포하거나 추방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ICE가 자체적으로 연방법을 집행하는 것을 지방정부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핵심 법적 논쟁 가운데 하나는 '지방정부에 협조를 강요하는 것'과 '지방정부가 연방 집행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다.

ICE에 '석방 날짜' 알려줘야 하나도 쟁점

정보공유 범위를 둘러싼 법적 공방도 있었다.

법무부는 뉴욕시 정책이 ICE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으며, 연방법이 보호하는 정보공유까지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연방·지역 수사기관에는 제공되는 정보가 ICE에만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며 연방 이민당국이 차별적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예스 판사는 연방법에서 지방정부가 공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없는 정보는 개인의 시민권이나 이민 신분에 관한 정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수감자의 석방 예정일이나 현재 구금상태, 위치 등까지 연방법이 지방정부에 ICE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뉴욕시장 "시 공무원을 추방요원으로 만들 수 없어"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뉴욕시장은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맘다니 시장은 연방정부가 뉴욕시 공무원들을 이민추방 업무에 동원하려 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민 신분 때문에 추방을 걱정하지 않고 시민들이 시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뉴욕시장 측의 정치·정책적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대로 성역도시 정책이 범죄 전력이 있는 불법체류자가 ICE에 인계되지 않고 지역사회로 다시 석방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뉴욕시의 정책이 연방 이민법 집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공공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LA·보스턴·미네소타 이어 또 소송 기각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방정부의 성역도시 정책을 법원을 통해 무효화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또 하나의 패소 판결이다.

Fox News에 따르면 앞서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 미네소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유사한 소송들도 연방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이번 판결이 연방정부가 뉴욕에서 이민법을 집행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ICE와 국토안보부 등 연방기관은 자체 인력과 권한을 이용해 연방법을 계속 집행할 수 있다.

법적 쟁점은 뉴욕시 경찰과 교정기관 등 지방정부가 그 집행을 어느 정도까지 도와야 하는지, 그리고 지방정부가 협조를 제한하는 것이 단순한 '불참'인지 연방법 집행에 대한 '적극적 방해'인지를 어디에서 구분하느냐에 있다.

이번 판결에서는 연방법원이 뉴욕시의 손을 들어줬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전국적으로 성역도시 정책에 대한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어 연방정부와 주·지방정부의 이민단속 권한을 둘러싼 헌법적 충돌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