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8 12:10 AM

프랑스 전국이 불탔다...1,200명 체포·경찰 150명 부상, '수십 년 만의 최악 폭동'

By 전재희

파리·마르세유·리옹·보르도·리모주 등 전국 주요 도시 동시다발 충돌
리모주 시청 화재로 지붕 붕괴...파리선 차량 방화·상점 약탈·경찰에 돌·폭죽 공격
전국 55만~80만명 거리로...Reuters "프랑스가 수십 년간 경험한 가장 심각한 폭력사태 중 하나"

프랑스에서 학생들의 학교 환경 개선 요구로 시작된 시위가 생활비와 공공서비스, 임금과 연금 문제를 아우르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대된 가운데, 17일 주요 도시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 관공서 습격,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이 동시에 발생했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이날 하루 약 1,200명이 체포됐으며 경찰과 헌병 150명 이상이 부상했다. Reuters는 이번 사태를 프랑스가 "수십 년 동안 경험한 가장 심각한 폭력사태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불타는 역사적인 리모주 시청
(불타는 프랑스 중부 리모주 시청.  Times Now  / Youtube 캡쳐  )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는 평화적으로 행진했지만 일부 도시에서는 시위 주변부의 폭력집단이 경찰차와 정부 건물을 공격하고 상점을 약탈하면서 상황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악화했다. 특히 파리만의 국지적 소요가 아니라 프랑스 여러 대도시에서 비슷한 폭력사태가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전국 55만명 거리로...노조는 80만명 주장

로랑 뉘녜(Laurent Nuñez) 프랑스 내무장관은 17일 전국 110개 시위에 약 55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노동총연맹(CGT)과 학생단체들은 실제 참가자가 약 80만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Reuters에 따르면 이번 집회 참가 규모는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 집권기의 대표적인 대규모 저항운동이었던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의 절정기보다 컸다. 다만 2023년 연금개혁 반대 시위 당시의 전국 동원 규모에는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주목받는 것은 참가자 숫자만이 아니다. 평화적 대규모 시위와 함께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방화·약탈·관공서 공격이 발생하면서 단순한 대중집회를 넘어 심각한 치안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리모주 시청 불탔다...143년 건물 지붕까지 붕괴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중부 리모주(Limoges)다.

복면을 쓴 시위대가 시청에 불을 지르면서 143년 된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현지 당국에 따르면 지붕이 아래층으로 무너졌으며 서쪽 건물 일부를 제외하고 외부 구조의 약 3분의 2가 사라질 정도로 화재 피해가 컸다.

현지 행정 책임자는 이번 화재를 도시 문화유산에 대한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지방정부 청사가 단순한 시위 대상이 아니라 직접적인 방화 대상이 됐다는 점은 이번 폭력사태의 수위를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마르세유에선 시청 난입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Marseille)에서도 시위대가 시청을 공격했다.

시위대는 거리의 안전펜스를 뜯어 시청 출입문을 들이받았고 일부가 건물 내부 로비까지 진입했다. 한 시위자는 시청 벽에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A' 문자를 스프레이로 그렸으며 경찰이 투입된 뒤에야 건물에서 밀려났다.

상점과 지방경찰 시설도 파손됐다. AP는 마르세유뿐 아니라 보르도에서는 지방정부 건물이 공격받았고 릴과 칼레에서는 시청 진입 시도가, 브레스트에서는 경찰서 침입 시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렌·툴루즈·몽펠리에·그르노블에서도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폭력사태가 특정 지역이나 파리 교외에 국한되지 않고 프랑스 남부와 북부, 동부와 서부 주요 도시로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의미다.

리옹 관광청에도 불길

프랑스 제3의 도시 리옹(Lyon)에서는 약 2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시위 과정에서 관광청 건물 내부에 불이 났고 시위대가 해당 건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거리 곳곳에서는 쓰레기통과 각종 시설물이 불탔다.

프랑스에서 관광·행정시설 같은 공공건물까지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되는 모습이 여러 도시에서 반복되면서 이번 사태가 일반적인 노동·학생 시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파리 중심부 차량 불타고 상점 약탈

수도 파리에서는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을 중심으로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후드와 마스크, 고글 등을 착용한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폭죽과 보도블록, 각종 물체를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사용해 대응했다. AP 취재진은 자동차와 자전거, 쓰레기통 등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여러 상점이 약탈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일부 시위대는 은행을 공격했고 스포츠용품점과 의류매장, 휴대전화 판매점을 약탈했다. 대형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에 침입하려는 시도도 벌어졌다.

불붙은 트럭의 화염이 인근 건물로 번지는 상황도 발생했으며, 파리의 주요 도로인 마젠타 대로(Boulevard Magenta)에서는 수십 곳의 상점이 파손되거나 약탈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파리시장은 일부 거리가 사실상 "초토화됐다"고 표현했다.

대통령궁·의회 주변 지하철역 폐쇄

프랑스 당국은 파리 핵심 정부시설 주변의 이동도 제한했다.

샹젤리제와 대통령궁, 의회, 주요 정부청사 주변 지하철역 여러 곳이 경찰 요청으로 폐쇄됐다. 공식 시위 경로에서도 샹젤리제와 개선문 등 상징적인 지역은 제외됐다.

이는 당국이 시위대가 정부 핵심시설이나 주요 상업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경계태세를 가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현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뉘녜 내무장관은 폭력의 심각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비상사태 선포 단계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1,200명 체포·경찰 150명 부상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프랑스 당국이 발표한 체포자 수는 약 400명이었다. 그러나 밤까지 충돌과 약탈이 계속되면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Sébastien Lecornu) 총리는 최종적으로 약 1,200명이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경찰과 헌병 부상자도 150명을 넘어섰다.

경찰노조가 공개한 영상에는 여러 지역에서 군중이 벽돌과 몽둥이 등을 이용해 경찰 차량을 공격하는 모습이 담겼다. 한 경찰노조는 경찰이 전국 곳곳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며 치안병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지난 수주간 체포자 6,800명 넘어

17일의 대규모 충돌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학생시위가 본격화한 이후 10월 10일까지 프랑스 경찰이 체포한 사람은 이미 6,877명에 달했다. 대부분이 미성년자였으며 경찰 700명과 학생 약 200명이 부상한 것으로 당시 Reuters는 집계했다.

이후 정부가 공개한 수치는 더욱 늘어났다. 르코르뉘 총리는 17일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이번 사태가 시작된 이후 경찰과 헌병 937명, 학생 248명, 교직원 14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17일 하루에만 경찰 150명 이상이 추가로 다친 것으로 발표되면서 충돌은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프랑스 정부 "학생운동이 도시폭력으로 변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21일 파리 북부 저소득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교사 부족과 열악한 시설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를 봉쇄하면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학생과 학교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었지만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됐고, 10월 초부터 수백 곳의 학교가 봉쇄되거나 문을 닫았다. Strasbourg에서는 최루탄이 거리를 뒤덮었고 Marseille에서는 경찰을 향해 폭죽이 발사됐으며 Rennes에서는 쓰레기통이 불탔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미 10월 초 이 학생시위를 "수십 년 만에 가장 폭력적인 학교 시위"라고 규정했다. 이후 정부는 이 운동이 단순한 학교 시위를 넘어 "도시폭력의 물결"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 대응도 논란...10대 중상자 속출

폭력시위의 규모만큼이나 경찰의 대응 역시 프랑스 사회에서 거센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Reuters에 따르면 경찰감찰기관은 시위 진압 과정과 관련해 최소 24건을 조사하고 있다. 최루탄과 고무탄, 섬광·충격 수류탄 등으로 미성년자가 중상을 입었다는 신고가 잇따랐고 최소 4명의 청소년이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상을 입었다고 Reuters는 전했다.

15세 학생이 경찰이 사용한 충격 수류탄 폭발로 손을 잃은 사건 이후 내무장관은 학생시위에서 해당 수류탄 사용을 한때 중단시키기도 했다.

반면 경찰노조들은 경찰관들이 돌과 폭죽, 화염병 등에 공격받고 있으며 현재의 장비 없이는 대규모 폭력집단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란조끼' 넘어 전국적 사회불안으로

17일 집회에는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와 연금생활자, 농민, 노동조합, 노란조끼 운동 참여자들이 합류했다.

그 결과 지난 몇 주간 이어져온 학교시위가 이날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사회불안으로 성격이 크게 확대됐다. Reuters는 이날 벌어진 폭력사태를 프랑스가 수십 년 동안 경험한 가장 심각한 수준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특히 리모주 시청 방화, 마르세유 시청 난입, 리옹 관광청 화재, 파리 중심부의 대규모 약탈과 차량 방화가 같은 날 전국에서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청사와 상점을 공격하고 약탈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르코르뉘 총리도 폭력을 이용해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프랑스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아니며 대다수 시위 참가자 역시 폭력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주간 수천 명이 체포되고 경찰·학생·교직원 부상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데 이어, 17일에는 전국 주요 도시의 관공서와 상업시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공격받으면서 프랑스의 이번 시위는 이미 통상적인 노동·학생 시위의 범위를 크게 넘어선 대규모 치안·정치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