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07:25 AM

앨버타, 캐나다 잔류 선택...역사적 주민투표서 76% 이상 '분리 재투표 반대'

By 전재희

개표 41% 기준 76% 이상이 캐나다 잔류 지지...에드먼턴·캘거리서는 80% 넘어
카니 "캐나다는 각 지역의 합보다 훨씬 위대"...분리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산유지역 앨버타주 주민들이 역사적인 주민투표에서 캐나다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개표 초반부터 잔류 지지가 압도적으로 앞서면서, 앨버타 분리독립을 둘러싸고 수개월간 이어져온 논쟁은 일단 한 고비를 넘기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일 새벽 개표가 41% 진행된 시점에서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76%가 넘는 유권자가 캐나다 잔류 쪽을 지지했고, 25%에 못 미치는 유권자만이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두 번째 구속력 있는 주민투표 실시를 지지했다고 집계했다.

캐나다 알버타주 분리독립 투표
(캐나다 알버타주 분리독립 투표시행. CBC  )

에드먼턴과 캘거리 등 대도시에서는 잔류 지지가 80%를 넘었고, 앨버타 중부 일부 농촌지역에서도 60% 이상이 캐나다에 남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니 "캐나다는 각 지역의 합보다 훨씬 위대"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앨버타와 캐나다가 이제 다시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카니는 "앨버타 주민들과 모든 캐나다인이 새로운 목적의식과 높은 목표를 갖고 함께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는 각 지역의 단순한 합보다 훨씬 위대하다"며 "우리가 캐나다인으로서 받은 모든 것을 바탕으로 이 나라를 모두에게 더 나은 나라로 만들어야 할 기회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카니는 투표 전부터 이번 주민투표를 "위험한 허세"라고 표현하며 분리독립 논의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 시절 브렉시트를 직접 경험한 그는 앨버타가 실제 독립 논의로 들어갈 경우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무역전쟁 속 국가분열 위험 피했다

캐나다 정부 입장에서 이번 투표는 단순한 지역정치 문제가 아니었다.

캐나다가 미국과 무역갈등을 겪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 주권 관련 발언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국 최대 에너지 생산지역 가운데 하나인 앨버타가 독립 문제를 놓고 두 번째 주민투표에 들어갈 경우 국가 전체가 장기간 정치적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카니는 이런 상황에서 앨버타 분리독립 논쟁이 국가의 경제와 정치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투표로 당장 구속력 있는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분리파 "이것은 시작일 뿐"

압도적인 잔류 결과에도 불구하고 앨버타 분리독립 논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분리독립 지지자들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정치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부 분리파는 이번 투표 자체가 독립 여부를 직접 묻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향후 다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WSJ는 앨버타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번 투표를 거치며 드러난 정치적·지역적 갈등이 쉽게 치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대니엘 스미스 주총리도 정치적 부담

앨버타의 대니엘 스미스(Danielle Smith) 주총리는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서 있다.

스미스는 자신을 캐나다 연방주의자라고 설명해왔지만, 2022년 집권 과정에서는 통합보수당(UCP) 내부의 분리독립 지지세력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20일 초기 개표 결과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밝히면서 이날 저녁 앨버타 주민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연설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분리독립 주민투표 문턱 직접 낮춰

앨버타에서는 오랫동안 캐나다 연방정부에 대한 소외감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왔다.

스미스는 당내 분리파의 압력을 받으면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청원에 필요한 서명자 수를 줄이고, 서명을 모을 수 있는 기간도 연장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법원이 캐나다 탈퇴 여부를 직접 묻는 분리파의 청원안을 무효화하자 스미스는 법원 판결에 항소하는 동시에 새로운 주민투표를 직접 추진했다.

질문 역시 즉각적인 독립 찬반을 묻는 대신, 향후 구속력 있는 독립 주민투표를 다시 실시할 것인지를 묻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WSJ는 이를 사실상 "주민투표를 할 것인지에 대한 주민투표"라고 표현했다.

연방주의자도 분리주의자도 스미스 비판

이 같은 방식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분리주의자들은 지금 당장 독립 찬반을 직접 물어야 한다며 스미스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연방주의자들은 스미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당내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캐나다 국가통합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스미스가 이끄는 통합보수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틀리 "스미스가 주 전체의 문제 만들어"

앨버타 전 주총리이자 신민주당(NDP) 소속인 레이철 노틀리(Rachel Notley)는 CTV 방송에서 스미스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틀리는 "그녀가 사실상 주 전체에 문제를 만들어냈다"며 "내일 자신이 선두에 서서 승리를 선언하려 한다고 해도 성공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가 이끄는 당의 절반은 여전히 분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투표에서 잔류가 압승하더라도 통합보수당 내부의 분열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앨버타 불만의 뿌리는 석유·환경정책

앨버타는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확인 석유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캐나다 연방정부가 앨버타의 에너지산업에서 발생하는 부를 가져가면서도 석유·가스 산업을 규제한다는 불만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정책과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전 총리의 환경·기후정책을 둘러싸고 연방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게 높아졌다.

트뤼도의 비판자들은 그가 탄소배출 감축을 우선하면서 앨버타의 석유·가스 생산을 억제했다고 주장했다.

카니, 앨버타와 관계 회복 시도

지난해 트뤼도의 뒤를 이어 취임한 카니 총리는 앨버타와 연방정부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앨버타에서 성장한 카니는 일부 환경규제에서 앨버타를 제외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 해안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송유관 건설도 지지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캐나다의 '국가적 이익'에 해당하는 사업으로 규정했다.

카니와 스미스 모두 이 송유관 합의를 캐나다 연방체제가 앨버타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증거로 제시해왔다.

카니는 최근 연방주의 진영의 집회에서 앨버타 주민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에너지 생산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처럼 취급받았다"고 느껴왔다며 그 불만을 인정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실제 독립투표 가능성에 긴장

경제계에서는 이번 주민투표에서 두 번째 구속력 있는 독립투표 실시안이 통과될 경우 상당한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캘거리 상공회의소 조사에서는 기업인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두 번째 선택지가 통과될 경우 앨버타를 떠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인들은 퀘벡주가 독립 주민투표를 추진하던 당시 몬트리올에 있던 기업 본사들이 대거 토론토로 이전했던 사례를 떠올렸다.

앨버타가 실제 독립투표에 들어갔다면 비슷한 기업 이탈과 투자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투표 열기도 이례적으로 높아

이번 주민투표에 대한 앨버타 주민들의 관심도 높았다.

선거당국에 따르면 유권자의 약 43%가 사전투표 또는 특별투표를 이용했다.

이는 2023년 앨버타 주의회 선거 당시 사전·특별투표 비율이 약 28%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번 투표에서는 분리독립 관련 질문 외에도 이민정책에서 앨버타주가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 등을 묻는 9개의 추가 질문도 제시됐다.

전 주총리 "애국자로서는 행복하지만 앨버타인으로서는 슬픈 밤"

스미스의 전임 통합보수당 대표이자 앨버타 주총리를 지낸 제이슨 케니(Jason Kenney)는 개표 결과를 복잡한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케니는 CTV와의 인터뷰에서 "애국자로서는 행복한 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앨버타인으로서는 우리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이 슬픈 밤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문제를 이제 넘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압도적 잔류에도 갈등은 남아

이번 투표는 앨버타 주민 다수가 현재 캐나다에서 분리되는 문제를 다시 공식적인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둘러싼 수개월간의 논쟁은 앨버타와 연방정부 사이에 오랫동안 축적된 갈등도 다시 드러냈다.

석유와 가스, 환경규제, 연방정부의 재정정책, 이민정책과 주정부 권한을 둘러싼 불만은 이번 투표 결과만으로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분리주의 진영 역시 패배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스미스가 이끄는 통합보수당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번 주민투표는 캐나다의 즉각적인 분열 가능성을 막았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결과를 냈지만, 앨버타가 캐나다 연방 안에서 어떤 위치와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까지 끝낸 것은 아니다.

케니 전 주총리의 표현처럼 캐나다로서는 "행복한 밤"이었지만, 동시에 앨버타 사회가 얼마나 깊게 갈라져 있었는지를 확인한 투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