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07:44 AM
By 전재희
美 시청시간 줄고 올해 순가입자 증가도 정체...콘텐츠 책임자·영화부문 수장 잇따라 교체
게임·팟캐스트 실험보다 영화·TV 핵심 콘텐츠 강화...200억달러 콘텐츠 예산 새 체제로
미국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넷플릭스(Netflix)가 성장의 벽에 부딪히면서 콘텐츠 전략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미국 이용자들의 시청시간이 줄고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나 '오징어 게임(Squid Game)'과 같은 새로운 대형 히트작이 부족하다는 내부 우려가 커지자, 회사는 최고 콘텐츠 책임자와 영화부문 수장을 잇따라 교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주 약 1,000명의 직원을 감원한 직후 최고콘텐츠책임자 벨라 바자리아(Bela Bajaria)를 전격 교체했다. 이어 19일에는 영화부문 책임자 댄 린(Dan Lin)도 회사를 떠났다.
불과 며칠 사이 두 명의 핵심 콘텐츠 임원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넷플릭스 경영진이 현재의 콘텐츠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는 최근 수개월 동안 미국 이용자들이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내부적으로 문제 삼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동료 임원들에게 새로운 대형 히트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여러 차례 나타냈다.
넷플릭스는 최근 몇 년간 비디오게임과 팟캐스트, 크리에이터 콘텐츠,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왔지만, 사란도스는 이제 회사의 핵심인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기울고 있다.
넷플릭스는 20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며, 월가 투자자들은 회사가 미국 시장의 성장 정체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문제는 최근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넷플릭스는 '기묘한 이야기'나 '오징어 게임'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낼 새로운 대표작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
동시에 미국 이용자들은 유튜브(YouTube)와 틱톡(TikTok)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시청시간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닐슨 자료에서도 미국 전체 TV 시청시간 가운데 유튜브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상승한 반면 넷플릭스는 상대적으로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입자 증가세도 미국에서는 뚜렷하게 둔화됐다.
구독 분석업체 Antenna에 따르면 9월 말까지 넷플릭스는 올해 미국에서 한 달도 순가입자가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Antenna는 신용카드 청구자료 등을 통해 미국 소비자의 스트리밍 구독을 분석한다. 다만 통신사나 기타 사업자의 묶음상품을 통해 가입한 이용자는 일부 집계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Antenna의 데이터가 회사의 전체 사업성과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넷플릭스는 2025년 초부터 공식 가입자 숫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투자자들의 불안은 주가에도 반영됐다.
넷플릭스 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40% 이상 하락했다. 특히 지난해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의 영화·TV 스튜디오와 HBO Max 인수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넷플릭스 경영진은 오랫동안 자신들을 기존 미디어기업을 인수하는 '구매자'가 아니라 직접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는 '건설자'라고 강조해왔다.
그런 회사가 대형 경쟁사를 인수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일부 투자자들은 넷플릭스가 자체적인 콘텐츠 성장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넷플릭스는 올가을 내부적으로 '프로젝트 메리디언(Project Meridian)'이라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체 직원의 최대 10%를 줄이는 방안까지 논의됐지만 각 사업부 책임자들과 협의한 끝에 약 6% 감원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약 1,000명이 회사를 떠났다.
사란도스와 공동 CEO 그레그 피터스(Greg Peters)는 지난주 수요일 아침 직원들에게 감원 계획을 알리는 메모를 보냈다. 같은 날 오후 2시가 되자 감원 대상 직원들은 업무 이메일 계정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사란도스는 바자리아에게 콘텐츠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넷플릭스는 바자리아의 후임으로 피터 라이스(Peter Rice)를 선임했다.
라이스는 Disney와 Fox에서 영화·TV·스포츠 분야를 두루 담당한 미디어업계 베테랑이다.
그는 이번 주부터 넷플릭스에서 업무를 시작하며 연간 약 200억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콘텐츠 예산을 관리한다.
해당 예산에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뿐 아니라 스포츠를 포함한 라이브 이벤트까지 포함된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전략을 다시 영화와 TV 중심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라이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영화부문 책임자 댄 린도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났다.
린은 '레고 무비(The Lego Movie)'와 '그것(It)' 등의 제작자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는 17일 밤 사란도스와 함께 Academy Museum Gala에 참석했고, 다음 날 밤에는 넷플릭스 본사에서 열린 영화 'La Bola Negra' 상영행사에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9일 넷플릭스는 린의 퇴사를 발표했다.
새 영화부문 책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라이스가 영화사업까지 직접 담당할 예정이다.
이 같은 문제에도 넷플릭스는 여전히 구독형 스트리밍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사업자다.
Antenna에 따르면 9월 기준 미국 넷플릭스 가입자의 월간 해지율은 2.1%로 업계에서 가장 낮다.
2분기에도 넷플릭스는 세계 모든 지역에서 두 자릿수 비율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회사 내부 감원 메모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올해 전체 실적목표 역시 기존 계획대로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매출을 13~14% 늘리고 영업이익률 31.5%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회사의 재무실적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현재의 성장속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최근 몇 년간 이용자들의 플랫폼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실험해왔다.
그러나 성과에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스포츠 생중계는 비교적 성공적인 분야로 평가받지만 비디오게임 사업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내부 메모에 따르면 매달 게임을 이용하는 가입자는 전체의 약 3.5%에 불과하다.
게임사업의 2026년 이용자 도달률과 참여도 역시 회사 내부 목표보다 약 10% 낮은 수준이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팟캐스트와 유튜브 스타일의 크리에이터 콘텐츠도 확대했다.
이런 콘텐츠는 전통적인 드라마나 영화보다 제작비가 훨씬 적게 들면서도 수백 시간의 신규 프로그램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란도스는 지난 실적발표에서도 이런 새로운 포맷의 성장이 단기간에 회사를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진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회사 내부에서는 이러한 실험적 사업보다 영화와 TV라는 핵심 콘텐츠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용자 참여도 하락은 넷플릭스 내부의 오랜 논쟁도 다시 불러왔다.
미국 이용자들이 넷플릭스를 덜 보는 이유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작하는 콘텐츠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북부 캘리포니아 엔지니어들이 개발·관리하는 추천 알고리즘의 문제인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랫동안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취향을 판단해 어떤 프로그램을 보여줄지를 결정하도록 했다.
경영진이 특정 작품을 인위적으로 더 많이 노출시키는 행위는 내부적으로 '저울에 엄지손가락을 올린다(putting your thumb on the scale)'고 불렸고 과거에는 거의 금기시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사가 특정 콘텐츠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알고리즘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과거보다 많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넷플릭스는 홈 화면에서 게임과 팟캐스트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전략도 줄이고 있다.
대신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다시 중심에 놓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회사가 지난 몇 년 동안 추진했던 '종합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전략에서 일정 부분 후퇴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 이용자들의 시청시간을 다시 늘리기 위해 결국 넷플릭스가 가장 잘해왔던 영화와 시리즈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공개 방식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으로 한 시즌의 모든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해 몰아보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반면 Disney+, HBO Max 등 경쟁 서비스들은 주요 시리즈를 매주 한 편씩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넷플릭스 임원들은 시청자 참여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작품에 따라 주간 공개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사란도스는 이러한 변화에 반대해왔다.
넷플릭스 자체 데이터에서 가입자들이 매주 한 편씩 기다리는 방식보다 한 시즌 전체를 한꺼번에 시청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이유다.
넷플릭스는 플랫폼 자체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NBCUniversal의 Peacock 같은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를 넷플릭스 앱 안에서 추가로 구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라이브 TV 채널 도입도 검토 대상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현지 방송사 TF1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뉴스 프로그램도 포함된다.
넷플릭스가 단순한 주문형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전통적인 유료TV 플랫폼과 비슷한 역할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다.
영화사업에서도 넷플릭스의 오랜 원칙이 바뀌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대부분의 영화를 온라인에서 바로 공개했고 일부 영화만 제한된 극장에서 몇 주 동안 상영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주요 작품을 일반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비슷한 방식으로 먼저 극장에서 장기간 상영하기 시작한다.
'Charlie vs. the Chocolate Factory'와 'Narnia: The Magician's Nephew' 등은 전 세계 극장에서 최소 45일 동안 상영한 뒤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전통적인 영화사들이 사용하는 극장 우선 개봉전략을 사실상 받아들이는 것이다.
구조조정 직전 공개된 '나니아: 마법사의 조카(Narnia: The Magician's Nephew)'의 예고편은 넷플릭스가 다시 대형 콘텐츠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이 예고편은 유튜브에서 빠르게 약 8,0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형 작품이 다시 플랫폼을 대표하는 문화적 이벤트로 성장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현재 넷플릭스의 상황을 단순한 경영위기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매출은 여전히 두 자릿수로 증가하고 있고 해지율은 업계 최저 수준이며 올해 수익성 목표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미 미국 스트리밍 시장을 지배하는 넷플릭스가 앞으로 어디에서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낼 것인가다.
가입자는 크게 늘지 않고 이용자들은 YouTube와 TikTok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게임과 팟캐스트 같은 새로운 사업도 아직 기존 영화·TV 사업을 대체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지난 몇 년간의 확장 실험 이후 다시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더 오래 보게 만들 새로운 영화와 TV 히트작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콘텐츠 최고책임자와 영화부문 수장을 동시에 교체하고, 게임·팟캐스트보다 영화·TV에 다시 집중하며, 극장개봉 전략까지 바꾸는 최근의 움직임은 넷플릭스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창작전략을 전면적으로 다시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