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07:58 AM

AI 강세장 새 복병은 '주식 공급'..."과거 강세장 끝낸 역풍 다시 온다"?

By 전재희

SpaceX·Anthropic·OpenAI 대형 IPO 이어질 경우 미국 증시 신규 주식 급증 가능성
GMO "주식 공급 1% 늘면 향후 1년 시장가치 4% 감소 경향"...고평가 시장에 더 큰 충격 우려

최근 급락 이후 반등하던 미국 기술주가 다시 힘을 잃고 있다. 데이터센터 개발기업들의 자금조달 능력을 둘러싼 불안이 커지는 데다 대형 기업공개(IPO)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심까지 높아지면서 AI 강세장이 새로운 시험대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스펜서 제이캅(Spencer Jakab)은 20일 칼럼에서 과거 투자광풍을 끝낸 가장 전형적인 원인은 새로운 기술의 공급과잉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보다 먼저 '주식 자체의 공급과잉'이 버블을 터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 증권거래소 NYSE
(뉴욕 증권거래소. 자료화면)

철도와 인터넷 같은 과거 기술혁명에서는 엄청난 자본이 몰린 뒤 결국 너무 많은 설비가 건설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고, 기술 가격과 관련 기업 주가가 함께 붕괴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시장은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철도·광섬유가 너무 많이 만들어졌다

역사적으로 투자광풍의 전개 방식은 비슷했다.

혁신적인 신기술이 등장하면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관련 인프라를 건설한다. 결국 공급이 실제 수요를 넘어서는 순간 가격이 떨어지고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함께 무너진다.

19세기 철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철도가 세상을 크게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이 없었지만 투자자들이 너무 많은 철도노선을 건설하면서 일부 도시 사이에는 여러 개의 중복노선까지 생겼다.

닷컴버블 당시의 광섬유 네트워크 역시 비슷했다.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예상대로 세계를 변화시켰지만 막대한 자본이 한꺼번에 통신 인프라 건설에 몰리면서 결국 과잉투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주식 공급'이 먼저 버블 터뜨릴 수도

제이캅은 지금의 시장에서는 과거와 다른 형태의 위험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기업들은 높은 주가를 이용해 가능한 한 많은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한다. 경쟁사보다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초기 투자자와 창업자, 임직원들은 기업가치 상승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보유주식을 현금화하려 한다.

그 결과 실제 AI 데이터센터나 반도체가 공급과잉에 빠지기 전에 증시에 풀리는 새로운 주식의 양부터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장비 가격 높다고 버블 안전한 것 아니다"

자산운용사 GMO의 벤 인커(Ben Inker)와 존 피스(John Pease)는 최근 'AI 버블 붕괴의 촉매(A Catalyst for the AI Bubble Break)'라는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Nvidia의 GPU나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가스터빈 가격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AI 투자붐이 건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거에도 인프라를 구성하는 핵심 제품 가격은 주가가 무너진 뒤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닷컴버블 당시에도 인터넷망 구축에 필요한 광섬유 케이블은 기술주가 폭락하기 시작한 뒤에도 상당 기간 수요와 가격이 강세를 유지했다.

즉 현재 AI 칩과 전력장비의 높은 가격이 AI 관련주의 버블 위험이 낮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신규 주식 공급 1% 증가하면 시장가치 4% 감소"

GMO는 신규 주식 공급과 시장가치 사이의 과거 관계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미국 주식시장의 주식 공급량이 1% 증가할 때 이후 1년 동안 전체 시장가치는 평균적으로 약 4%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시장에 새로운 주식이 대규모로 공급되면 기존 주식에 투입되던 투자자금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사적 관계가 그대로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앞으로 미국 증시에 예정된 대형 IPO를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주식 공급을 중요한 변수로 봐야 한다는 것이 GMO의 주장이다.

SpaceX 하나만으로 미국 주식 공급 1% 늘 수도

대표적인 사례가 SpaceX다.

SpaceX는 지난 6월 상장했고 초기 투자자와 임직원의 주식 매각을 제한하는 보호예수 기간이 순차적으로 해제될 예정이다.

GMO 분석에 따르면 SpaceX 한 회사에서만 2027년 6월까지 미국 전체 상장주식 공급량의 약 1%에 해당하는 새로운 주식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Anthropic과 OpenAI 역시 대형 IPO를 준비하고 있어 신규 주식 공급량은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AI 기업들이 지금처럼 높은 기업가치를 유지한다면 상장을 통해 조달하거나 기존 주주들이 시장에 매각할 수 있는 주식의 규모도 그만큼 커진다.

지금 시장은 이미 역사적으로 비싼 수준

주식 공급 증가가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미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S&P500의 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CAPE)은 2000년 기술주 버블 당시 기록했던 역사적인 고점에서 멀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GMO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주식 공급 증가가 약 20% 정도의 시장조정을 유발할 수 있다면 현재와 같은 고평가 시장에서는 충격이 훨씬 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닷컴버블 붕괴 당시 미국 증시는 고점에서 약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인커와 피스는 "오늘날 시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20년간 주식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20년 동안 미국 증시가 누려온 환경과 정반대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기업들은 신규 주식을 발행하기보다 자사주를 대규모로 매입했다. 기업 인수합병도 활발했고 상당수 대형 기업은 비상장 상태를 유지했다.

자산운용사 Pictet의 추산에 따르면 금융위기 전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미국 상장주식 공급은 2005년 이후 매년 약 1%씩 감소했다.

주식 수가 줄어드는 환경은 같은 투자자금이 더 적은 주식을 놓고 경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가 상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제 대형 기술기업도 자사주 매입 줄여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투자붐이 이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Microsoft, Alphabet, Amazon, Meta, Oracle 등 대형 기술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주가를 떠받쳐온 자사주 매입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Meta는 2021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약 1,5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이후에는 추가 매입을 하지 않았다.

Alphabet과 Oracle은 각각 수백억달러 규모의 새로운 주식을 발행했다.

즉 과거에는 대형 기술기업이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며 주식 공급을 줄였지만 이제는 AI 투자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히려 주식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AI 투자 위해 신규 주식 발행 계속될 가능성

AI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서버와 GPU뿐 아니라 전력망과 발전시설, 냉각장비, 토지와 건물 등 대규모 투자가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이러한 투자를 모두 영업현금흐름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채권을 발행하거나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최근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채권발행 비용이 커질 경우 기업들이 주식발행에 더 의존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AI 투자붐이 지속될수록 새로운 AI 기업의 IPO와 기존 기술기업의 주식발행이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

한국 AI 데이터센터 기업 Elice, 상장 첫날 30% 급락

이 같은 투자자들의 경계심은 아시아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한국의 데이터센터 스타트업 Elice는 20일 증시 데뷔 첫날 주가가 30% 넘게 급락했다.

Elice는 IPO를 통해 약 1억5,100만달러 상당을 조달했지만 상장 직후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몰렸다.

WSJ는 이를 AI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경계심이 다시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SK하이닉스도 4% 넘게 하락

한국 반도체기업 SK하이닉스 역시 서울 증시에서 4% 넘게 하락했다.

아시아 기술주 전반에서 매도세가 나타난 가운데 미국에 상장된 SK하이닉스 ADR도 개장 전 거래에서 하락했다.

최근 시장에서는 AI 데이터센터 개발기업의 자금조달 능력과 AI 인프라 투자 속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관련주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SpaceX 실적에도 시장 관심 집중

시장의 관심은 20일 장 마감 후 발표될 SpaceX의 분기실적으로도 향하고 있다.

SpaceX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IPO 가운데 하나를 실시했으며 향후 보호예수 해제로 상당한 규모의 주식이 시장에 풀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회사의 실적뿐 아니라 향후 투자계획과 자금조달, 기존 주주의 주식 매각 가능성에도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와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이날 장 마감 이후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AI 버블, 제품이 아니라 '주식'이 먼저 과잉될 수도

이번 분석의 핵심은 AI 기술의 수요가 실제로 꺾여야만 AI 강세장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철도노선이나 광섬유, 통신망처럼 혁신기술의 실제 물리적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 뒤 관련 기업의 주가가 붕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시장에서는 그 과정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실제로 과잉 공급되기 전에 SpaceX와 Anthropic, OpenAI 같은 대형 기업들이 상장하고 기존 기술기업들까지 대규모 신규 주식을 발행할 경우 투자자들이 소화해야 할 주식 물량 자체가 급증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증시를 뒷받침했던 자사주 매입과 주식 공급 감소라는 순풍도 AI 투자붐과 함께 약해지고 있다.

제이캅은 결국 투자자들이 앞으로 주목해야 할 공급과잉이 GPU나 데이터센터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가장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자산, 즉 '새로운 주식'의 공급이 AI 강세장의 다음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