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5 10:42 PM

룰라, 브라질 대선 결선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꺾고 4선 성공

By 전재희

1차 투표 2위서 역전...51.8% 득표·약 440만표 차이로 승리
중남미 보수세력 연승 흐름엔 제동...의회는 우파 우세로 향후 국정운영 험로

브라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 성향의 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가 우파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 상원의원을 꺾고 사상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확보했다.

브라질 선거당국이 25일 개표를 완료한 결과 룰라는 51.8%를 득표해 보우소나루를 약 440만표 차이로 앞섰다. 룰라는 1차 투표에서 보우소나루에게 220만표 이상 뒤졌지만 결선에서 이를 뒤집었다. AP와 Reuters도 브라질 선거당국의 최종 결과를 토대로 룰라의 4선 승리를 확인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
(브라질 룰라 대통령 4연임 성공. Facebook)

룰라의 새 임기는 2027년 1월 5일 시작될 예정이다. 80세인 룰라는 이미 2003년부터 두 차례 대통령을 지냈고 2023년 다시 집권한 데 이어 네 번째 비연속 임기를 맡게 됐다.

1차 투표는 보우소나루 47% 대 룰라 45%

이번 결과는 1차 투표 직후의 흐름과는 상당히 달랐다.

지난 10월 4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약 47%를 얻어 45%의 룰라를 앞섰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두 후보가 결선에서 다시 맞붙게 됐고, 결선 직전까지도 주요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거나 보우소나루가 근소하게 앞선 결과가 나왔다.

AP에 따르면 룰라는 군사독재가 종식된 1985년 이후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1차 투표 2위 후보가 결선에서 승리한 첫 사례가 됐다. 룰라 진영은 1차 투표 패배 이후 선거전략을 재정비하고 젊은 유권자와 기권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남부는 보우소나루, 북동부는 룰라

지역별 표심은 브라질의 뚜렷한 정치적 분열을 다시 보여줬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파라나, 히우그란지두술 등 남부와 남동부의 주요 지역에서 우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Fox News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서의 격차는 1차 투표보다 줄었다.

반대로 룰라는 노동자당(PT)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브라질 북부와 북동부에서 큰 격차를 유지했다.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노동계층 지원정책에 대한 오랜 지지가 결선에서도 룰라의 핵심 기반으로 작용했다.

보우소나루가 1차 투표에서 약 5%포인트 차이로 앞섰던 미나스제라이스에서도 결선에서는 사실상 접전으로 좁혀졌다. 브라질에서 미나스제라이스는 정치적으로 남북을 연결하는 지역이자 전국 선거 결과를 비교적 잘 반영하는 대표적인 경합주로 여겨져 왔다.

생활비·치안 앞세운 보우소나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선거기간 동안 생활비와 치안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이 세금과 국가부채를 늘리고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강력범죄와 조직범죄에 대해서도 보다 강경한 법집행 정책을 약속하며 치안 불안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공략했다.

Reuters가 결선투표 당일 정리한 주요 유권자 관심사에서도 물가와 생활비, 범죄, 부패, 국가재정이 핵심 쟁점으로 꼽혔다. 지난 8월 Quaest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전년보다 구매력이 떨어졌다고 답했다.

보우소나루는 소득세 감면과 강경한 치안정책, 친기업 정책을 강조하면서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정치적 기반을 이어가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룰라는 복지와 '브라질 주권' 강조

룰라는 빈곤층 지원과 사회복지 확대를 앞세우는 동시에 선거 막판에는 브라질의 주권과 미국으로부터의 정책적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세 번째 임기 동안 빈곤과 불평등, 실업률과 아마존 삼림파괴가 감소했다고 강조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복지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을 약속했다. Reuters는 룰라의 기존 사회정책에 대한 신뢰와 예상보다 높은 투표 참여가 결선 역전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과의 관계도 선거 쟁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가 2025년 브라질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됐고, 룰라는 이를 브라질의 주권 문제로 연결해 비판했다.

트럼프, 공식 지지는 안 했지만 보우소나루 가문과 밀접

Fox News는 이번 룰라의 승리를 최근 중남미에서 이어진 보수 후보들의 승리 흐름에 제동이 걸린 결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공식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보우소나루 가문과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고 플라비우에 대한 선호도 숨기지 않았다.

Reuters는 선거 직전 트럼프 행정부 일부 관계자들이 보우소나루 가문의 정치적 복귀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해당 보도에서도 어느 정도까지 백악관이 직접 관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룰라의 재선으로 브라질은 멕시코와 함께 중남미 최대 국가 가운데 좌파 또는 중도좌파 정부가 유지되는 국가로 남게 됐다.

투표 종료 직전 2시간 연장...법적 공방 가능성

선거 당일에는 투표 종료를 앞두고 예상치 못한 논란도 발생했다.

브라질 대법원의 크리스티아누 자닌(Cristiano Zanin) 대법관은 당초 투표 종료시간을 불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전국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했다.

AP에 따르면 이는 일부 지역의 악천후와 교통문제로 투표에 어려움이 발생하면서 양측 후보 진영이 제기한 요청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자닌 대법관이 과거 룰라의 변호사를 맡았다는 점을 들어 보우소나루 측 일부 인사들이 절차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결과에서는 선거당국이 개표를 완료하고 룰라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의회 선거에서는 보수진영 약진

대통령선거에서는 룰라가 승리했지만 같은 선거주기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브라질 의회는 우파와 중도우파 세력이 크게 확대됐다. AP에 따르면 보우소나루가 속한 자유당(PL)은 하원에서 23석을 추가했고 상원의 의석도 거의 두 배로 늘렸다. 우파와 중도파 정당을 합치면 주요 법안뿐 아니라 일부 사안에서는 개헌을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의회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때문에 룰라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브라질 정치 전체가 좌파로 이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은 룰라가 맡지만 의회에서는 최근 민주화 이후 가장 보수적인 구성 가운데 하나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Reuters도 룰라가 새 임기에서 보수 우위 의회와의 충돌이라는 상당한 정치적 제약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보우소나루 정치세력도 건재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대선에서 패했지만 보우소나루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는 첫 대통령선거 출마에서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1차 투표에서 승리했고 결선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경쟁했다. 동시에 자유당은 의회에서 세력을 확대했다.

플라비우는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장남으로 2019년부터 연방상원의원을 맡아왔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점을 캠페인의 주요 메시지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2030년 대선을 앞두고 브라질 우파 내부에서 다시 보우소나루 가문 후보를 내세울 것인지, 아니면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상파울루 주지사 타르시지우 지 프레이타스(Tarcísio de Freitas) 같은 다른 보수 정치인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인지도 향후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네 번째 임기 시작부터 경제문제 부담

룰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직면할 경제환경은 쉽지 않다.

Reuters에 따르면 브라질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2%를 넘어섰고 물가상승률은 4.6%, 기준금리는 13.75%에 달한다. 높은 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가계와 기업의 부채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룰라는 최저임금과 사회복지 확대를 약속했지만 보수 우위 의회에서는 재정지출 축소와 친기업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따라서 네 번째 룰라 정부의 핵심 과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책을 얼마나 추진하느냐뿐 아니라 복지 확대와 재정건전성, 높은 금리와 성장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 대통령은 룰라·의회는 우파

이번 선거는 브라질 유권자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선거에서는 북동부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유지한 룰라가 승리했지만 의회에서는 보수세력이 크게 약진했다.

1차 투표에서 보우소나루가 앞섰다가 결선에서 룰라가 이를 뒤집었다는 점도 브라질 정치의 팽팽한 균형을 보여준다.

룰라는 네 번째 대통령 임기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동시에 자신과 정치적 방향이 크게 다른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을 얻지 못했지만 첫 대선 도전에서 전국적으로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확보했고 보우소나루 진영은 의회에서 더욱 강력해졌다.

결국 이번 선거는 브라질의 보수 흐름이 사라졌다기보다 대통령선거에서는 룰라가 가까스로 이를 막아낸 반면, 의회와 지역정치에서는 보수세력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