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9 09:48 AM

미국 3분기 성장률 3.4%...고유가에도 소비·AI 투자 힘입어 1년 만에 최고

By 전재희

시장 예상 3.1% 웃돌아...2분기 2.2%에서 성장세 가속
소비 3.8%·AI 중심 기업투자 급증...연준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다시 부각

미국 경제가 높은 휘발유 가격과 물가 부담에도 불구하고 올해 3분기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소비가 견조하게 유지된 가운데 인공지능(AI) 관련 기업투자가 급증하면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렸다.

AI
(인공지능. 자료화면)

미 상무부는 29일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 3.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계절조정과 물가변동을 반영한 수치로, 최근 1년 사이 가장 빠른 성장률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조사한 경제전문가들의 예상치 3.1%를 웃돌았으며, 2분기 성장률 2.2%와 비교해서도 성장세가 뚜렷하게 가속됐다.

중간선거 앞두고 나온 마지막 대형 경제지표

이번 GDP 발표는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나온 마지막 주요 경제지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 경제는 올해 관세와 이민단속 강화, 높은 에너지가격 등 여러 부담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탄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소비와 기업투자가 동시에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이다.

소비 3.8% 증가...경제의 버팀목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축인 소비지출은 3분기 연율 기준 3.8% 증가했다.

이는 2분기와 같은 수준의 견조한 증가세다.

소비자들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가구와 생활용품, 의류 등 상품 지출을 늘렸고 의료와 외식, 숙박 등 서비스 지출도 확대했다.

높은 휘발유 가격과 생활비 부담에도 소비가 예상보다 강하게 유지된 것이다.

9월 들어 소비는 다소 둔화

다만 분기 전체의 강한 소비와 달리 최근 흐름은 다소 약해졌다.

상무부의 별도 보고서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 소비지출은 9월에 전월 대비 변동이 없었다.

8월에는 0.5% 증가했었다.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는 속도에 비해 소득 증가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저축을 줄여 소비를 유지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세후소득 대비 개인저축률은 202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기초 민간수요 4.9% 증가

정부지출과 재고, 무역 같은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하고 민간 부문의 실제 수요를 보여주는 지표도 강했다.

'민간 국내구매자 최종판매(final sales to private domestic purchasers)'는 3분기 연율 기준 4.9% 증가했다.

2분기의 4.6%보다 더 빨라졌고, 팬데믹 이후 경제가 급반등하던 2021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미국 경제의 내부 수요가 단순한 재고나 정부지출 효과가 아니라 민간 소비와 기업투자를 중심으로 실제로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AI 투자가 성장률 크게 끌어올려

이번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는 AI 관련 투자였다.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와 서버, 반도체,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S&P Global Ratings는 IT 장비와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등 첨단기술 투자가 지난 1년 동안 미국 GDP 성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4분의 1 미만이었다.

AI 투자, GDP의 1.9%까지 확대 전망

Goldman Sachs는 미국의 AI 관련 투자가 앞으로 GDP의 1.9%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중 상당액은 해외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구매에 사용되지만, 미국 내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면서 건설 일자리와 투자지출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택건설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전체 건설투자의 약화를 일부 상쇄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수입 급증...무역은 성장률 3.3%포인트 끌어내려

강한 내수와 기업투자의 반대편에는 수입 증가가 있었다.

3분기 수입상품 지출은 연율 기준 25% 이상 급증했다.

특히 해외 반도체 구매가 크게 늘었다.

GDP는 미국 내에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만을 계산하기 때문에 수입은 경제활동에서 차감된다.

이에 따라 순수입은 3분기 GDP 성장률을 3.3%포인트나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최종 성장률이 3.4%에 달했다는 것은 국내 소비와 투자가 그만큼 강했다는 의미다.

연준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민 커져

강한 성장률은 경제 전반에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에는 새로운 부담이 될 수 있다.

연준은 현재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한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번 GDP 발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로 다음 날 나왔다.

전날 FOMC에서는 대부분의 위원이 금리 동결에 찬성했지만 일부 위원은 추가 인상을 주장했다.

"금리 올릴 이유가 더 많다"

S&P Global Ratings의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 사탐 판데이(Satyam Panday)는 이번 경제지표를 두고 "금리를 올릴 이유가 그렇지 않을 이유보다 더 많다"고 평가했다.

경제성장이 강하고 인플레이션까지 높은 상태라면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은 경기를 식히기 위해 금리를 더 높일 유인이 커진다.

특히 경제가 3%를 넘는 속도로 성장하면서 물가가 연준의 2% 목표를 크게 웃돈다면 통화긴축 필요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워시 "경제가 과열됐다고 보진 않아"

그러나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은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금융여건이 특별히 긴축적이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미국 경제가 과열된 상태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워시는 최근의 높은 성장률이 수요 과열보다 생산성 개선과 관련돼 있다고 보고 있다.

AI와 기술투자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과거보다 빠른 성장률을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상대적으로 덜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제가 너무 뜨겁게 돌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는 다시 빠르게 상승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면서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시 높아졌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지난 2월 2.4%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높아진 수준이다.

에너지가격 상승은 특히 중·저소득층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소득에서 휘발유와 생활필수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실질임금 6개월 연속 감소

물가가 오르는 동안 임금 상승세는 둔화되고 있다.

그 결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미국의 평균 실질 시간당 임금은 6개월 연속 감소했다.

경제 전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모든 가계가 그 혜택을 체감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휘발유와 식료품 같은 필수지출의 부담이 큰 가구일수록 체감경기는 GDP 성장률보다 훨씬 약할 수 있다.

고용도 강하지만은 않아

노동시장 역시 혼재된 신호를 보이고 있다.

실업률은 여전히 낮지만 고용 증가폭은 상당히 둔화됐다.

미국 기업들은 9월 2만9,000개의 일자리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경제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었다.

즉 경제성장률은 강하지만 고용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인력을 늘리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고소득층 소비가 기업실적 지탱

기업 입장에서는 여전히 강한 소비가 수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주가상승으로 자산가치가 늘어난 고소득층의 소비가 강하다.

크루즈업체 Royal Caribbean Group은 최근 여행수요 증가에 힘입어 이익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제이슨 리버티(Jason Liberty) 최고경영자는 현재 휴가상품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강하며 2027년 예약도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 관련 업종은 고금리 직격탄

반면 고금리는 주택시장과 관련된 기업들에게 계속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전업체 Whirlpool은 올해 연간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높은 원자재 가격과 연료비 부담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주택구매와 주택건설이 고금리로 위축되면서 가구와 가전 등 관련 업종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고성장·고물가' 조합이 연준 시험대

미국 경제는 현재 상당히 특이한 조합을 보이고 있다.

GDP는 3.4% 성장했고 소비는 3.8% 늘었으며 AI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다시 3.7%까지 올라왔고 실질임금은 6개월 연속 감소했다.

경제 전체는 강하지만 가계의 생활비 부담은 여전히 크고 고용증가도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연준, 12월 결정 더 어려워져

전날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번 GDP 발표로 12월 통화정책 결정은 더 복잡해졌다.

경제가 예상보다 강하다면 금리를 추가로 올려도 경기침체 위험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최근 물가상승의 상당 부분이 에너지가격 등 공급측 요인 때문이라면 금리인상으로 이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워시 의장이 생산성 향상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다.

AI 투자가 미국 성장의 새로운 축

이번 3분기 GDP에서 가장 구조적인 변화는 AI다.

AI는 단순히 기술기업의 실적을 좌우하는 산업을 넘어 미국 경제 전체의 성장률을 움직이는 주요 투자부문으로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서버, 반도체, 전력설비와 소프트웨어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이 기업투자와 건설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 수입되는 반도체가 급증하면서 무역 측면에서는 GDP를 끌어내리는 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결국 현재 미국 경제는 AI 투자와 강한 소비가 성장을 밀어올리는 동시에 높은 에너지가격과 인플레이션, 고금리가 가계와 일부 산업을 압박하는 구조다.

3분기 3.4% 성장률은 미국 경제가 당장 침체로 향하고 있지 않다는 강한 신호를 보여줬지만, 동시에 연준이 금리를 쉽게 낮추기 어려운 이유도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