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30 09:46 PM

아리니, 손실 확대에 8억달러 채권 매각...마진콜 압박에 유동자산 처분

By 전재희

70억달러 주력펀드 올해 20% 넘게 손실...은행 추가 증거금 요구
Altice·Optimum·Virgin Media·Brightspeed 부실채권 투자 직격탄
유럽 회사채 급락·프랑스 재정불안 겹쳐...고레버리지 전략 시험대

한때 유럽 신용시장 최고의 공격적 투자자로 주목받았던 아리니 캐피털 매니지먼트(Arini Capital Management)가 대규모 투자손실과 은행의 마진콜 압박에 직면하면서 최근 수주 동안 약 8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리니의 약 70억달러 규모 주력 헤지펀드는 10월 중순까지 올해 20% 넘는 손실을 기록했으며, 월말까지 손실폭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회사는 손실이 커진 부실채권뿐 아니라 비교적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우량 자산까지 팔아 추가 증거금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은행 마진콜에 8억달러 매각

아리니는 최근 몇 주 동안 약 8억달러 규모의 채권 보유분을 매각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거래 상대방인 은행들이 요구한 추가 증거금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리니 캐피털 매니지먼트(Arini Capital Management)
(아리니 캐피털 매니지먼트(Arini Capital Management). 아리니)

헤지펀드가 파생상품이나 레버리지를 이용한 거래에서 손실을 입으면 은행은 추가 담보를 요구할 수 있다. 이를 마진콜이라고 한다.

펀드가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매각하기 쉬운 자산을 팔아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아리니가 최근 유동성이 좋은 채권까지 매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력펀드 올해 20% 이상 손실

WSJ에 따르면 아리니의 약 70억달러 주력펀드는 올해 들어 10월 중순까지 20%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10월 후반에도 일부 투자자산 가격이 추가 하락하면서 월말 손실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헤지펀드로서는 상당히 큰 손실이다.

특히 아리니는 특정 부실채권과 고위험 신용상품에 대규모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으로 유명해 손실 발생 시 충격도 크게 나타나는 구조다.

통신업체 부실채권 투자에서 큰 손실

아리니의 포트폴리오를 압박한 대표적인 투자처는 통신업체들이다.

펀드는 Altice International과 Optimum Communications, Virgin Media, Brightspeed 등에 투자해왔다.

이 가운데 일부 기업의 재무상황이 최근 급격히 악화됐다.

Optimum Communications는 미국 파산법 Chapter 11에 따른 기업회생절차를 준비하고 있으며, Brightspeed 역시 연말 이전 파산신청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의 파산 가능성이 커지면 해당 회사가 발행한 채권 가격은 급락하고, 이를 보유한 헤지펀드는 큰 평가손실을 입게 된다.

Apollo가 투자한 Brightspeed도 위기

Brightspeed는 대형 사모펀드 Apollo Global Management의 지원을 받은 통신업체다.

그러나 높은 부채와 어려운 사업환경 때문에 재무구조가 악화하면서 파산보호 신청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아리니는 이러한 고위험 기업의 채권 가격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에 투자했지만 예상보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손실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CDS 지수 거래에서도 증거금 요구

아리니는 개별 회사채뿐 아니라 신용부도스와프(CDS) 지수에도 투자했다.

CDS는 특정 기업이나 채권이 부도가 날 위험에 투자하거나 이를 헤지하는 파생상품이다.

아리니가 투자한 일부 CDS 지수는 유럽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 묶음의 신용위험을 추적한다.

최근 유럽 금리가 상승하고 프랑스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 회사채 가격이 하락했다.

그 결과 아리니는 파생상품 거래에서 추가 증거금을 요구받았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채권을 팔아야 했다.

프랑스 재정불안이 유럽 회사채까지 압박

유럽 신용시장의 불안도 아리니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최근 프랑스 정부의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프랑스 국채금리가 상승했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이 돈을 빌릴 때 지급해야 하는 금리도 함께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이나 정크등급 회사채 가격은 더 큰 압력을 받는다.

아리니처럼 유럽 고수익·부실채권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펀드는 직접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Multi-Color·Aston Martin 투자도 부담

통신업체 외에도 다른 투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압박했다.

WSJ에 따르면 라벨 제조업체 Multi-Color와 영국 자동차업체 Aston Martin, 건축자재업체 Cornerstone Building Brands 등에 대한 투자도 손실을 키웠다.

Aston Martin은 최근 수년 동안 판매 부진과 높은 부채, 자금조달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처럼 아리니가 투자한 여러 고위험 기업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손실이 한쪽에 국한되지 않고 포트폴리오 전체로 확산됐다.

동물병원 운영업체도 매각

아리니는 최근 동물병원 운영업체 Pathway Vet Alliance 관련 포지션도 매각했다.

이보다 앞서 채권추심업체 Intrum과 Ritz-Carlton Yacht Collection에 대한 투자도 이미 정리했다.

가정방문 간병서비스 업체 Help at Home에 대한 보유분도 일부 매각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라기보다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유동성 관리 성격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실자산 대신 팔 수 있는 자산부터 판다

헤지펀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는 가장 크게 손실난 자산보다 오히려 쉽게 팔 수 있는 자산부터 매각한다는 점이다.

부실채권은 시장에서 매수자를 찾기 어렵거나 헐값에 매각해야 할 수 있다.

반면 비교적 거래가 활발한 채권은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다.

아리니 역시 최근 몇 달 동안 이런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매각해 마진콜에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펀드가 보유한 좋은 자산까지 줄어들면서 포트폴리오의 질이 더 악화될 수 있다.

공격적 레버리지 전략으로 유명

아리니 창업자 함자 렘수게르(Hamza Lemssouguer)는 유럽 신용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모로코 출신 수학자인 그는 Credit Suisse에서 신용상품 트레이더로 일한 뒤 2021년 아리니를 설립했다.

특히 특정 기업의 채권이나 신용상품에 대규모 자금을 집중하고 레버리지를 적극 사용하는 전략으로 명성을 쌓았다.

이런 방식은 투자판단이 맞으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시장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면 손실도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

13억달러에서 220억달러 운용사로 급성장

아리니의 성장속도는 매우 빨랐다.

설립 초기 약 13억달러 규모의 전문 헤지펀드였던 회사는 불과 몇 년 사이 운용자산 220억달러 규모의 대형 대체투자 운용사로 성장했다.

사업영역도 부실채권 투자뿐 아니라 사모신용과 구조화금융, 담보부대출채권(CLO) 등으로 확대했다.

렘수게르는 큰 포지션을 구축해 시장가격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자로 알려졌다.

모든 사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아리니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은 아니다.

회사가 운용하는 자산 가운데 약 3분의 1은 CLO 펀드에 들어가 있으며 이 부문은 여전히 양호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LO는 기업대출을 묶어 여러 단계의 증권으로 만든 구조화금융상품이다.

주력 헤지펀드가 큰 손실을 입고 있지만 아리니의 다른 사업부문까지 동일한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40억달러 규모 사모대출 전략도 확대

오히려 회사는 최근 새로운 사업도 확대했다.

아리니는 10월 첫 직접대출 펀드를 결성했다.

유럽 중견기업에 약 40억달러를 투자하는 사모신용 전략이다.

은행 대신 자산운용사가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사모신용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성장해왔다.

아리니 역시 헤지펀드뿐 아니라 안정적인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대체투자 사업을 확대해왔다.

미국 사업 CEO도 Citadel로 이동

회사 내부의 인력 이탈도 나타나고 있다.

아리니 미국사업 최고경영자였던 개빈 예이츠(Gavin Yates)는 지난 8월 회사를 떠났다.

WSJ에 따르면 그는 내년 초 Citadel에서 새로운 부실채권 투자팀을 출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아리니가 시장에서 큰 손실을 입는 상황에서 핵심 인력이 세계 최대 헤지펀드 가운데 하나인 Citadel로 이동한다는 점도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 회사채만의 문제 아니다

현재 신용시장 불안은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정크등급 부채의 만기가 대거 다가오고 있다.

높은 금리 환경에서 기존 부채를 차환해야 하는 기업들은 과거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수익성이 약한 기업은 차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부실채권과 저등급 회사채에 투자한 여러 헤지펀드가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마진콜이 위험한 이유

아리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순한 평가손실보다 마진콜이다.

투자자산 가격이 하락하기만 한다면 펀드는 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레버리지를 사용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은행이 추가 담보를 요구하면 펀드는 가격이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 없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즉시 팔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 가격이 추가 하락하고 다시 마진콜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강제매각의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70억달러 펀드에 20% 손실이면 14억달러

아리니 주력펀드 규모가 약 70억달러이고 올해 손실률이 20%를 넘어섰다는 점을 단순 계산하면 평가손실은 14억달러를 넘는 규모가 될 수 있다.

실제 손실 규모는 자금 유입·유출과 레버리지, 투자 시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 계산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약 8억달러의 채권을 단기간에 처분했다는 것은 펀드가 상당한 유동성 압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레버리지 신용투자 시험대

아리니는 그동안 공격적인 신용투자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특정 기업의 채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대규모 포지션을 구축했고,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익률을 높였다.

하지만 높은 금리가 장기화되고 프랑스 재정불안과 미국 정크채권 위험까지 동시에 커지면서 이러한 전략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Optimum이나 Brightspeed처럼 실제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시장가격 변동이 아니라 원금 회수 여부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

'고수익' 전략이 '강제매각'으로

아리니의 상황은 최근 신용시장 변화가 헤지펀드에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보여준다.

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가격이 내려가고 부실기업의 파산위험이 높아지면서 고위험 채권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레버리지를 이용한 CDS 투자까지 흔들리면서 은행들은 추가 담보를 요구했다.

결국 펀드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팔고 싶지 않은 자산까지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현재 아리니 전체 운용자산 220억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고 CLO와 사모신용 사업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70억달러 규모의 주력 헤지펀드가 20% 넘는 손실과 마진콜을 동시에 겪고 있다는 점은 회사가 2021년 설립 이후 맞은 가장 큰 시험대 가운데 하나다.

아리니가 추가 자산매각 없이 손실을 안정시키고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