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4 08:58 AM
By 전재희
공화당 지원에 2024년보다 더 많은 선거자금 투입...상·하원 모두 민주당에 넘어가
텍사스에만 1억5000만달러 투입했지만 탈라리코 승리...32년 만의 민주당 주 전체 선거 승리
민주당, DOGE·SpaceX 정부계약·우크라이나 Starlink 운영 등 조사 가능성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4억4000만달러 이상을 투입했지만 선거 결과는 그가 기대했던 방향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했고, 머스크가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텍사스 상원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2024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백악관 복귀를 지원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확대했던 머스크에게 이번 중간선거는 그의 정치자금이 실제 선거에서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첫 대규모 시험대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선거 결과로 머스크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한 타격을 받았으며 내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Tesla와 SpaceX는 물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맡았던 정부효율부(DOGE) 활동까지 새로운 의회 조사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선거 전부터 머스크의 연방정부 구조조정 참여와 정부계약,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Starlink 운영 문제 등을 조사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해왔다.
머스크가 이번 중간선거에 투입한 정치자금은 4억4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그가 2024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용한 약 3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당시에는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펜실베이니아 등 주요 경합주에서 직접 선거행사까지 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거액 후원자에 가까운 방식을 택했다.
머스크 자신도 최근 정치활동에 지나치게 직접 개입했던 과거 방식을 재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과의 팟캐스트에서 "처음에는 너무 몰입했던 것 같다"며 "좀 더 뒤에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유세에 나서는 빈도는 줄였어도 정치자금 규모는 오히려 훨씬 커졌고, 소셜미디어 X를 통한 후보 공격과 정치 메시지도 계속됐다.
머스크에게 가장 큰 충격은 자신이 거주하고 Tesla와 SpaceX의 본사가 자리 잡은 텍사스에서 나왔다. 그는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켄 팩스턴(Ken Paxton)을 지원하기 위해 텍사스 선거에만 1억5000만달러 이상을 투입했으며, 상당 부분은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James Talarico)를 공격하는 TV 광고와 선거운동에 사용됐다. 그러나 탈라리코가 팩스턴을 꺾으면서 민주당은 32년 만에 텍사스 주 전체 선거에서 승리했다.
탈라리코는 승리연설에서도 머스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모든 돈도 텍사스 주민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후반부에는 자신의 실제 상대 후보인 팩스턴만큼이나 머스크를 주요 정치적 상대처럼 다뤘고, 머스크의 정치적 영향력과 막대한 선거자금 투입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반대로 머스크 역시 X에서 탈라리코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거나 관련 게시물을 공유한 것이 약 60차례에 달할 정도로 그를 집중 공격했다.
WSJ가 현장에서 만난 일부 유권자들은 이런 막대한 정치자금 투입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과거 트럼프나 머스크를 지지했던 일부 유권자들까지 억만장자가 특정 주의 선거에 지나치게 큰 돈을 사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불편함을 표시했다. 개별 유권자의 반응만으로 선거 전체 결과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탈라리코 캠프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정치 쟁점화했고, 머스크를 거대 기술기업과 정치권력 결합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의 관심은 머스크가 자신이 소유한 X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쏠렸다. 머스크는 결국 "내 선거개입 우주 레이저가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나 보다"라고 농담조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 선거 이후 머스크가 실제로 직면할 정치적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2025년 이후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와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트럼프 취임 초기에는 백악관에서 정부효율부를 이끌며 연방정부 지출과 인력 감축을 추진했고, 백악관을 자주 오가면서 'First Buddy'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때 트럼프와 공개적으로 충돌하며 관계가 악화됐지만 이후 다시 관계를 회복했고,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 지원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의 위원회 운영권을 갖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머스크가 DOGE를 이끌며 연방정부 지출과 인력, 각종 정부 프로그램을 줄이는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권한을 행사했는지, 자신의 기업과 관련된 이해충돌은 없었는지 등을 들여다볼 가능성이 있다. Reuters도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정부와 대규모 계약을 맺고 있으면서 정치활동에도 깊이 관여한 기업인에 대한 감독이 강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SpaceX는 NASA와 국방부, 정보기관 등 미국 정부와 대규모 계약을 맺고 있으며 Starlink 역시 미국의 국가안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머스크가 한쪽에서는 공화당에 수억달러의 선거자금을 제공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연방정부로부터 막대한 사업을 수주하는 구조를 민주당 의원들이 조사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국유화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SpaceX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을 정도로 머스크와 민주당 사이의 정치적 긴장은 높아져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Starlink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도 새로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머스크가 우크라이나군의 SpaceX 위성망 사용을 제한했는지, 민간기업 최고경영자가 미국 외교·안보정책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통신망을 독자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적절한지 등을 문제 삼아왔다. Starlink가 우크라이나군의 통신과 드론 운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만큼 이 문제는 단순한 기업정책이 아니라 국가안보 사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머스크도 이런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X에 "칼로 사는 자는 칼로 죽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자신과 싸우려는 사람들에게 실제 배후가 누구인지 찾아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이 실제 의회 조사를 시작할 경우 머스크와 민주당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정치적 공방을 넘어 청문회와 자료 제출 요구, 정부계약 감독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머스크의 정치적 충돌이 Tesla와 SpaceX의 경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SpaceX는 최근 기록적인 IPO 이후 클라우드 사업과 새로운 우주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고 Tesla와 SpaceX의 합병 가능성까지 검토되고 있다. Reuters는 현재 논의되는 합병구조에 따라 머스크가 통합회사에서 상당한 지분과 의결권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두 회사 모두 중요한 사업 전환기에 있는 상황에서 머스크가 의회 청문회나 정치적 충돌에 상당한 시간을 쓰게 된다면 경영진의 집중력과 기업 이미지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간선거 이후 Tesla와 SpaceX 주가가 하락한 것도 민주당 의회가 트럼프 행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된 기업들의 정부계약과 규제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경계와 무관하지 않다.
머스크가 미국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2024년 대선이었다.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 직후 공개 지지를 선언한 그는 펜실베이니아 등 주요 경합주에서 직접 선거행사를 열었고 젊은 남성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한 뒤에는 Amazon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Meta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Google CEO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등 다른 기술업계 지도자들도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를 강화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다른 기술기업 경영자들과 달리 정부 내부에서 직접적인 역할까지 맡았다. DOGE를 통해 정부 구조조정에 관여했고, 정치적 영향력 역시 기업인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정부지출 감축 실적이 당초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고, 2025년 위스콘신주 대법원 선거에서는 머스크의 적극적인 참여가 오히려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제기됐다.
이 경험 때문에 머스크는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직접적인 유세를 줄였지만 정치자금 투입 규모는 오히려 확대했다. 그러나 4억4000만달러 이상을 사용한 뒤 나온 결과는 공화당의 의회 유지가 아니라 민주당의 상·하원 동시 장악이었다. 가장 많은 돈을 투입한 텍사스에서도 자신이 지원한 후보가 패하면서 머스크가 가진 막대한 자금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선거결과를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드러났다.
이번 선거에서 머스크에게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자신이 지원한 후보들이 패했다는 데 있지 않다. 선거 전까지 그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후보들을 지원하고 X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내년부터 민주당이 상·하원 위원회를 장악하면 머스크 자신과 그의 기업이 의회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민주당은 머스크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구하거나 SpaceX의 정부계약과 DOGE 활동, Starlink의 국가안보 문제와 관련한 자료를 요청할 권한을 갖게 된다. 머스크는 정치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이번 선거 결과로 오히려 정치가 Tesla와 SpaceX의 사업에 더 깊숙이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2024년 대선이 머스크의 정치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오른 순간이었다면 2026년 중간선거는 그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준 첫 대규모 선거가 됐다. 그리고 4억4000만달러를 투입했던 선거가 끝난 지금, 머스크의 다음 정치적 싸움은 선거운동이 아니라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