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6 02:30 PM
By 전재희
수지 와일스 사임 후 정치조직으로 이동...밀러 9일부터 백악관 총괄
공화당 상·하원 상실 직후 첫 대규모 인사개편...이민정책 설계자 전면 배치
민주당 "최악의 선택"...공화당 강경파는 "America First 전사" 환영
트럼프는 Truth Social에서 밀러를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참모 가운데 한 명이라고 소개하며 새 비서실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와일스에 대해서도 "비서실장으로 훌륭한 일을 했다"며 감사를 표시했고, 앞으로 자신의 정치조직에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와일스는 X에 올린 성명에서 6일이 비서실장으로서 마지막 날이라며 대통령을 위해 일한 것을 "평생의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인사 배경에는 중간선거 결과가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와일스를 교체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변화를 원했다"며 "수지는 매우 잘했고 훌륭하게 일했지만 때로는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Reuters도 밀러 임명이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 직후 이뤄진 백악관 최고위급 지도부 교체라고 전했다.
공화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하원 최소 41석과 상원 최소 7석을 순손실하면서 양원 모두 민주당에 넘겨줬다. AP는 민주당이 생활비 상승과 이란전쟁, 정부 운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바탕으로 공화당 강세지역까지 뒤집으며 의회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는 선거 전부터 측근들에게 와일스의 업무수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왔으며, 와일스는 5일 저녁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선거 직후에는 대규모 인사개편 계획이 없다고 말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백악관 운영의 핵심인 비서실장을 교체했다.
69세의 와일스는 트럼프의 2024년 대선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그의 정치적 복귀를 설계한 핵심 인물이었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한 뒤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2024년 대선 승리 이후에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이 됐다. 트럼프 1기 당시 네 명의 비서실장이 교체됐던 것과 비교하면 와일스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참모였다.
와일스는 트럼프 주변의 강한 개성을 가진 참모들을 조율하면서 백악관 의사결정에 일정한 절차를 만들려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는 냉정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Ice Maiden'이라는 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행정부 초기 18개월 동안 와일스는 과거 트럼프 백악관에서 자주 무너졌던 내부 보고와 의사결정 절차를 비교적 체계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와일스의 영향력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WSJ에 따르면 그는 주변 인사들에게 트럼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훨씬 약해졌으며, 대통령의 Truth Social 게시물이나 주요 결정에 개입하려는 시도도 사실상 포기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변화는 백악관 인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트럼프는 최근 새 대변인으로 케이티 재커라이어(Katie Zacharia)를 선택하면서 와일스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고, 재커라이어는 불과 닷새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의 주요 결정이 비서실장의 통제 밖에서 이뤄지는 사례가 늘면서 와일스가 구축했던 관리체제도 점차 약화됐다는 것이다.
와일스와 밀러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이민정책이었다. 밀러가 대규모 추방과 남부 국경 통제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과제로 밀어붙인 반면, 와일스는 일부 조치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올해 다른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이민 문제가 더 이상 공화당의 정치적 강점만은 아니며 오히려 선거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P의 선거 후 유권자 조사에서도 약 10명 가운데 6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단속이 지나치게 나갔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온 밀러를 백악관 전체를 총괄하는 비서실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트럼프가 선거 이후 정책노선을 완화하기보다 기존 방향을 더 강하게 추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사로 해석될 수 있다.
41세인 밀러는 2016년 대선 때부터 트럼프와 함께해온 최측근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이민과 국경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동했고, 2기 행정부에서는 정책담당 부비서실장과 국토안보 관련 고위 역할을 맡으며 대규모 추방과 남부 국경 봉쇄정책을 주도했다. 백악관이 올해 의회에 제출한 공식 직원현황에서도 밀러는 대통령 보좌관 겸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으로 기재돼 있다.
밀러는 단순한 정책참모를 넘어 백악관의 가장 강경한 결정들에 깊이 관여해왔다. 그의 정치적 강점은 트럼프의 정책목표를 행정조치와 법적 수단으로 구체화하는 실행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민주당과 이민단체들은 그의 정책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고 비판해왔다.
이번 인사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시점이다.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내년부터 백악관은 예산과 입법, 행정부 조사와 인사문제에서 민주당 의회와 직접 협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큰 선거 패배 뒤에는 중도층을 의식해 정치적 외연을 넓히는 인사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트럼프는 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AP는 밀러 임명을 두고 민주당의 의회 장악을 앞두고 트럼프가 협상형 인물보다 대결에 익숙한 충성파를 백악관 최고위직에 배치한 것으로 분석했다. 민주당이 내년부터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각종 조사와 청문회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밀러는 단순한 행정관리자보다 백악관의 정치적 방어와 정책대결을 동시에 지휘하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척 슈머(Chuck Schumer)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가 이보다 더 나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새 의회에서 밀러의 정책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하킴 제프리스(Hakeem Jeffries) 민주당 원내대표도 밀러를 강하게 비판하며 새 의회에서 대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공화당 강경파들은 밀러의 승진을 환영했다.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은 소셜미디어에서 밀러를 "진정한 애국자이자 America First 전사"라고 평가했고, 텍사스의 브랜던 길(Brandon Gill) 하원의원도 밀러가 훌륭한 비서실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정치동맹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발표 직전 와일스가 중간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와일스는 이민뿐 아니라 이란전쟁을 둘러싼 백악관의 의사결정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WSJ에 따르면 그는 행정부가 전쟁의 필요성을 미국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데 불만을 표시했으며, 전쟁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통제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직후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전쟁이 공화당 패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유가와 휘발유 가격 상승을 정치적 부담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전쟁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국방장관을 비롯한 핵심 안보팀에 대한 신임도 유지하고 있다. Reuters는 트럼프가 선거 이후에도 헤그세스가 "매우 잘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비서실장이 된 밀러는 이제 자신이 주도해온 이민정책뿐 아니라 백악관 전체를 관리해야 한다. 민주당 의회와의 예산협상, 이란과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외교·안보 문제, 경제와 생활비 대응, 상원 인준전략, 백악관 내부 인사까지 그의 책임범위가 크게 넓어진다.
특히 민주당이 내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과 일정 수준의 협상을 해야 하는 동시에 광범위한 의회 조사에도 대응해야 한다. Reuters는 의회 권력이 민주당으로 넘어갔지만 외교정책에서는 대통령에게 여전히 상당한 권한이 남아 있어 향후 2년 동안 국내정책에서는 협상과 충돌이, 외교에서는 대통령 주도의 정책이 병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인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트럼프가 선거 패배 이후 어떤 방향을 선택했는지에 있다. 그는 공화당이 텍사스와 캔자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전통적인 강세지역까지 잃고 의회 양원을 내준 뒤에도 핵심 정책노선을 완화하기보다 자신의 가장 오랜 강경파 참모 가운데 한 명을 백악관 운영의 정점에 올렸다. AP는 이번 선택이 민주당 의회와의 향후 관계가 타협보다는 상당한 긴장 속에서 시작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와일스가 맡았던 역할이 트럼프의 행동과 참모조직을 일정한 틀 안에서 관리하는 것이었다면 밀러의 강점은 정책목표를 빠르고 공격적으로 실행하는 데 있다. 그 차이가 앞으로 실제 백악관 운영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중간선거 직후 트럼프가 내린 첫 대형 인사결정은 분명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트럼프의 마지막 2년은 공화당 의회의 지원을 받았던 전반기와 전혀 다른 정치환경에서 진행된다. 그 출발점에서 트럼프는 절제와 내부관리로 평가받았던 수지 와일스를 정치조직으로 보내고, 자신의 이민정책과 America First 의제를 가장 강하게 추진해온 스티븐 밀러에게 백악관 전체를 맡겼다.
중간선거 패배 뒤 트럼프가 선택한 것은 노선 변화보다 지휘체계의 변화였다. 이제 관심은 밀러가 민주당 의회와의 협상이 필요한 비서실장 역할에서도 그동안 보여온 강경한 정책집행 방식을 유지할지, 아니면 백악관 전체를 관리하는 새로운 역할에 맞춰 정치적 조정자로 변화할지에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