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6 03:05 PM

헤지펀드, 10년 만의 최대 포지션 정리...AI 급락에 인력감축까지 확산

By 전재희

10월 주식선별형 헤지펀드 포지션 축소 10여년 만에 최대...시장 노출 6월 이후 9% 감소
Samlyn·Engineers Gate·Walleye 인력감축...Lone Pine도 10월 8.8% 손실
AI·기술주 급락과 레버리지 축소 맞물리며 인기 투자전략 동반 붕괴

10월 증시 급락으로 글로벌 헤지펀드 업계의 손실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포지션 축소와 인력감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주식 종목을 직접 선택해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은 지난달 10여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기존 포지션을 정리했고, AI와 기술주뿐 아니라 헬스케어와 고위험 회사채 등 여러 자산군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일부 대형 펀드는 투자팀을 축소하거나 전략 자체를 폐쇄하고 있으며, 이번 주 기술주 매도세가 다시 강화되면서 이미 손실을 입은 펀드들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펀드 메니저
(펀드 메니저. 자료화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amlyn Capital과 Engineers Gate, Walleye Capital 등 여러 헤지펀드가 최근 투자조직을 줄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수익을 올렸던 일부 펀드들은 여름 이후 AI 관련주가 급반전하면서 수익 대부분을 반납했고, 10월에는 연간 수익률 자체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사례도 나타났다. 헤지펀드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보유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매각하면서 그동안 여러 펀드가 공통적으로 보유했던 인기 포지션까지 추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10월 포지션 축소 속도 10년 만에 최고

Morgan Stanley가 고객들에게 보낸 자료에 따르면 10월은 주식 종목선별형 헤지펀드들이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줄인 속도가 10여년 만에 가장 빨랐던 달이었다. 이들 펀드의 시장 노출도는 6월 이후 약 9% 감소했으며, 10월 말 기준 주식선별형 펀드 가운데 40% 이상이 올해 수익률이 제자리걸음이거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S&P 500과 Nasdaq 종합지수는 여전히 연초 대비 상승한 상태여서 헤지펀드들의 부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단순히 시장 전체가 하락해서 손실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종목선택과 롱·숏 전략을 사용한 펀드들이 시장지수보다 크게 뒤처진 것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높은 수익을 기록했던 AI와 기술주 중심 전략이 여름부터 급격히 반전하면서 상당수 펀드가 이익을 빠르게 반납했다.

이번 주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중간선거 이후 수요일에는 증시가 한때 강하게 반등했지만 목요일 기술주를 중심으로 대규모 매도세가 발생하면서 Nasdaq 상장기업들의 시가총액 약 2조5000억달러가 하루 만에 사라졌다. 투자자들은 AI 관련주와 고위험 자산에서 빠져나와 미국 국채와 방어주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Third Point 창업자인 억만장자 투자자 댄 로엡(Dan Loeb)은 목요일 X에 "헤지펀드 매니저를 안아줘라"고 농담을 올렸다. 그러나 이 발언은 최근 헤지펀드 업계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전략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개별 펀드의 종목선택 문제를 넘어 업계 전반의 포지션 축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주 헤지펀드, 하루 4% 이상 손실

최근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분야는 통신·미디어·기술주를 집중적으로 거래하는 펀드들이다. Goldman Sachs에 따르면 이들 헤지펀드는 목요일 하루에만 4% 이상 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한때 24%에 달했던 수익률도 사실상 대부분 사라졌다. AI 관련주가 여름 이후 급락한 데 이어 최근 매도세까지 겹치면서 상반기의 높은 수익이 몇 달 만에 증발한 것이다.

여러 자산군을 동시에 거래하는 멀티스트래티지 펀드도 안전하지 않았다. Goldman Sachs는 멀티스트래티지 펀드들이 목요일 평균 1.4% 손실을 기록했으며 기술주와 모멘텀 투자전략의 부진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금리와 거시경제 흐름을 활용하는 채권·매크로 전략마저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멀티스트래티지 펀드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익원이 동시에 약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헤지펀드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포지션을 청산하는 과정 자체가 추가 매도세를 부르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러 펀드가 비슷한 종목과 전략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펀드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인기종목을 대규모로 매각하면 다른 펀드들도 동일 종목에서 손실을 입고 다시 매도에 나서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Samlyn, 금융주 중심으로 전략 대폭 축소

약 70억달러를 운용하는 Samlyn Capital은 최근 투자전략을 금융서비스주 중심으로 좁히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른 산업을 담당했던 부문 책임자들과 투자팀 인력이 회사를 떠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amlyn의 펀드는 10월까지 올해 약 5%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인력감축보다 전략 자체의 축소에 가깝다. 시장 전반에서 투자기회를 찾는 대신 상대적으로 자신이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가진 금융주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 위험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변동성이 커지고 여러 산업의 주가 상관관계가 동시에 높아지는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를 억지로 유지하기보다 투자영역을 좁히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약 40억달러를 운용하는 Engineers Gate도 비슷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인간 펀드매니저의 판단과 퀀트 모델을 결합한 이른바 'quantamental' 전략 대부분을 중단하고, 이 전략을 담당하던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을 5명을 제외하고 감축하기로 했다. 사업을 이끌어온 마이크 데일라마니(Mike Daylamani)도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Engineers Gate는 10월까지 올해 중반 한 자릿수대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다만 핵심인 정량투자 전략에는 계속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인간의 종목선택과 정량모델을 결합한 실험적인 영역을 줄이고, 기존 퀀트 중심 전략으로 다시 초점을 맞추는 셈이다.

Lone Pine, 상반기 40% 수익이 연간 손실로

올해 가장 극적인 반전을 경험한 곳 가운데 하나는 Lone Pine Capital이다. 이 회사의 헤지펀드는 올해 상반기에만 40%가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3분기에 회사 역사상 가장 부진한 3개월을 경험했다. 10월에는 수수료 차감 전 기준 8.8%의 손실을 기록했고, 이에 따라 10월까지 연간 수익률도 마이너스 7.5%로 떨어졌다.

9월 기준 약 190억달러를 운용하던 Lone Pine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3분기 서한에서 AI 관련주의 급격한 반전이 실적을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AI 성장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본 기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AI 때문에 경쟁력이 약해질 것으로 판단한 기업에는 공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는데, 두 방향 모두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AI 관련 종목이 급락하면서 롱 포지션에서 손실이 발생한 동시에, AI 때문에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해 공매도했던 기업들의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롱과 숏 양쪽에서 동시에 손실이 발생하는 이른바 '더블 히트'를 맞은 셈이다. 헤지펀드의 핵심 장점으로 여겨졌던 시장 방향과 관계없이 수익을 내는 구조가 오히려 취약점으로 바뀐 사례다.

Walleye도 최악의 한 달 뒤 매니저 감축

Walleye Capital 역시 이번 주 여러 주식선별형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감축했다. 이 회사는 2020년 3월 이후 최악의 월간 실적을 기록한 뒤 조직개편에 들어갔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 Walleye의 운용자산은 170억달러를 넘어섰다.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적정 운용규모를 다시 평가한 뒤 고객자금 일부를 반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형 헤지펀드가 자발적으로 자금을 돌려주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운용자산이 지나치게 커지면 투자기회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동일한 전략으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기 힘들어질 수 있어 일부 펀드들이 성과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시장 상황에서는 단순한 규모 문제뿐 아니라 위험관리 측면도 중요해졌다. 운용자산을 줄이면 포지션 규모와 레버리지를 낮추고 시장이 급변할 때 더 쉽게 거래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Walleye의 자금반환 계획 역시 손실 이후 투자전략과 적정 규모를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Arini는 마진콜에 8억달러 채권 매각

주식뿐 아니라 회사채 시장에서도 헤지펀드의 디레버리징이 진행되고 있다. 한때 높은 수익률로 주목받았던 Arini Capital Management는 최근 약 8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각했다. WSJ는 이 과정의 일부가 거래은행들의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앞서 보도했다.

마진콜은 레버리지를 사용한 투자에서 자산가격이 하락할 경우 금융회사가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펀드가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보유자산을 매각해 대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이미 떨어진 상황에서도 강제적인 매도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매도는 다시 채권가격을 낮추고 다른 투자자들의 담보가치를 떨어뜨려 추가적인 마진콜로 이어질 수 있다.

Arini 사례는 현재 헤지펀드의 문제를 주식시장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기술주와 고위험 회사채 등 올해 인기가 높았던 여러 자산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레버리지를 많이 사용했던 펀드일수록 자산을 빠르게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리 레버리지 줄이지 않았다면 손실 더 컸을 수도

헤지펀드와 거래하는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몇 주 동안 상당수 펀드가 이미 레버리지를 줄여놓지 않았다면 목요일 손실은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펀드들은 빌린 돈을 이용해 투자규모를 키우는 전략을 선제적으로 축소해왔다.

이런 움직임은 개별 펀드의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시장 전체에는 또 다른 부담이 된다. 레버리지를 줄이려면 주식과 채권을 팔아야 하고, 여러 펀드가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면 이미 하락한 시장에 추가 매도물량이 쏟아진다. 특히 헤지펀드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한 AI, 반도체, 클라우드와 모멘텀 종목에서는 이런 압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좋은 종목을 찾는 능력'이 오히려 약점으로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시장이 하락해서 헤지펀드가 함께 손실을 보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S&P 500과 Nasdaq은 여전히 올해 전체로는 상승하고 있지만 주식선별형 헤지펀드의 40% 이상이 10월까지 수익을 내지 못했다. 즉 시장 전체보다 개별 종목과 전략 선택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초에는 AI가 기업의 성장률과 수익성을 빠르게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투자자들을 특정 종목에 집중시켰다. 동시에 일부 펀드는 AI가 기존 산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피해기업을 공매도했다. 그러나 시장의 내러티브가 급변하면서 가장 인기 있던 롱 포지션과 숏 포지션이 동시에 역방향으로 움직였고, 여러 헤지펀드가 비슷한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손실을 증폭시켰다.

문제는 강제매도가 또 다른 강제매도를 부르는 구조

헤지펀드 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손실 규모 자체보다 포지션 축소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펀드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팔면 해당 종목 가격이 더 떨어지고, 같은 종목을 보유한 다른 펀드가 손실한도나 담보기준을 넘어서면서 다시 매도에 나설 수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마진콜이 발생하면 비슷한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Samlyn과 Engineers Gate, Walleye의 인력감축이나 Arini의 채권매각은 단순히 몇몇 펀드의 개별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가 위험노출을 줄이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시장 변동성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펀드들이 새로운 위험을 적극적으로 추가하기보다 현금비중을 늘리고 기존 포지션을 정리하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상반기 고수익에서 몇 달 만에 구조조정

올해 헤지펀드 시장의 변화는 불과 몇 달 만에 이뤄졌다. 상반기에는 AI와 기술주 상승을 정확히 포착한 펀드들이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했고 Lone Pine처럼 반년 만에 40% 이상의 수익을 올린 곳도 있었다. 그러나 여름 이후 AI 관련주가 급격히 흔들리고 10월 포지션 청산이 본격화되면서 일부 펀드는 상반기 이익을 모두 반납한 뒤 연간 손실로 돌아섰다.

이번 주 발생한 추가 기술주 급락은 이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미 상당한 레버리지를 줄였다는 점은 과거 금융위기와 같은 강제청산 위험을 일부 낮춰주지만, 동시에 많은 펀드가 위험자산을 다시 늘리기를 꺼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헤지펀드 업계가 직면한 문제는 한두 종목의 가격하락이 아니라 지난 수개월 동안 효과적이었던 투자전략들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AI주, 모멘텀, 매크로, 회사채 등 서로 다른 시장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포지션 축소와 인력감축까지 이어지면서 올해 상반기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빠르게 사라졌다.

10월이 10여년 만에 가장 강한 포지션 축소의 달이었다면, 이제 시장의 관심은 그 과정이 어디에서 멈출지에 모이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위험을 충분히 줄였다고 판단하고 다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할지, 아니면 손실과 마진콜이 추가적인 매도를 부르며 디레버리징이 더 이어질지가 향후 증시와 회사채 시장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