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정치인들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는 ‘토론’이다. 토론은 그 사람이 가진 사고의 논리적 체계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되며,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을 우위에 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논객들은 토론을 통해 명성을 쌓고 지지기반을 모을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와 토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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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토론문화의 불모지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토론문화가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조선조에 들어서며 유학이 사회규범으로 자리 잡은 까닭에 성현의 가르침과 유교적 규범을 무엇보다 먼저 지켜야 했으며, 그에 대한 비판이나 개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선 중기 조광조의 문묘 배향관련 개혁시도가 조정을 뒤흔든 파문을 일으키고 숱한 비난을 받았던 것과, 조선 말기의 예송논쟁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주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는 경직되었고, 보수적이며, 권위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현재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정치와 국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는 점도 토론문화의 발달에 악영향을 끼쳤다. 서구사회가 고대 아테네부터 ‘광장'(아고라)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토론문화가 발달했던 데 비해,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한 이후에도 ‘밀실’ 위주의 정치가 계속되었다. 소설가 최인훈은 작품 광장에서 밀실과 광장의 특성 차이를 남북의 통치체제에 빗대어 비판하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남한은 ‘밀실은 넘치나 광장이 없는 현실’로 표현된다. 정치인들은 살롱의 밀실에서, 대학생들은 어두운 지하실의 밀실에서 서로에게 익숙한 사상만을 되풀이했다. 당연히 그들 간에 소통이란 없었다.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토론’을 손에 넣은 것은 온라인 시대가 펼쳐진 이후였다. 인터넷이 새로운 문화와 공간을 동시에 제공했기에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가상공동체에서 토론하게 되었고, 일부 신진 정치인들은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는 사이트를 개설해 지지세력을 모으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아직 개인홈페이지도 활성화되지 않았고 SNS의 개념도 없었을 때 토론을 위한 공간을 제공했던 것은 포털사이트였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가 이끌던 PC 통신 시절의 대형 BBS들은 한때 수백만에 이르는 회원을 거느렸고 다양한 게시판과 동호회를 개설했다. 이때부터 온라인 토론 문화가 태동했고 시대가 변화하며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토론의 분위기는 꽤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악플사건이나 자료날조를 통한 특정인 비방이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상대방의 다른 의견을 존중했고 자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썻다.

◎ 인터넷 포털 토론방의 삼파전… 분열되는 국론

하지만 2015년 현재 온라인 토론은 사실상 사라져 가고 있다. 열기가 식어서가 아니다. 포털의 토론방이 지나치게 세력화되어 성향에 맞지 않은 의견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는 각각 일베와 오유 못지않은 첨예한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

다음 아고라는 ‘꼴진보’란 비난을 듣는다. 보수정치인과 집권여당을 비난하는 원색적인 선동 문구가 넘치고 50~60대 이상 장년층을 ‘무식한 늙은이들’이라 비난한다. 네이트 역시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게시물 대다수가 근거 없는 음모론과 비방인 경우가 많아 토론이라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반면에 네이버는 ‘수구꼴통’이란 오명을 얻을 정도로 보수색체가 강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을 ‘애국자’와 ‘빨갱이’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며 역시 왜곡된 시선으로 반대세력에 원색적인 비난을 던진다. 포털이 뉴스서비스를 시작한 이후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져 사실상 정치 성향에 따라 사용하는 포털사이트가 고정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포털에서의 토론은 올바른 정책과 국정에 대한 의견교환이 아닌, 특정 세력에 대한 찬양과 비방의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보수와 진보,  청년과 장년, 남과 여, 저소득자와 고소득자, 영남과 호남 등 계층 간의 분열도 심해져 서로 간의 이해보단 욕설이 포함된 감정적 비방의 비율이 더 높다. 각 포털 사이트의 토론방을 방문하면 손쉽게 욕설이 가득 달린 게시물과 댓글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은 올바른 토론문화로 보기 어렵다.

포털 토론문화의 질이 하락한 것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촛불 정국’이 시작된 것이 기점이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의 저변에 움틀 대던 갈등의 뿌리들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계층갈등이 극심해진 만큼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상의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 포털사이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 대해 포털사이트는 책임이 있는가? 이미 2007년경 포털의 언론성에 대한 견해가 논의된 적이 있었다. 포털의 언론성을 긍정하는 측에선 "포털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됨으로써 ‘탈미디어적 뉴스 소비’의 징후를 보인다"며 실질적인 저널리즘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뉴스 자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테고리 분류나 인기 기사와의 연결, 기사 내용의 수정 등은 콘텐츠의 변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론자들의 경우 ‘독립적 취재 및 기사 제작’과 ‘실질적∙내용적 편집 통제권’등 언론의 중요한 요소를 포털이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의미로 볼 때 포털이 ‘미디어’에는 해당될 수 있지만 ‘언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외에 어디까지나 ‘사기업’인 포털에 책임을 지우는 것보단 공적인 영역에서 통제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나왔다. 네이트는 2009년 자정작용을 의도하고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실명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범죄를 저지르는 악질 네티즌에 대한 적절한 통제방안의 부족과 사용자들의 대거 이탈로 인해 고작 2년 만인 2011년에 실명제를 폐지한 바 있다. 그 이후로 각 포털사이트는 네티즌들의 토론문화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이는 사기업에 의한 통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때문에 정부와 공공기관에 의해 건전한 온라인 토론문화 정책에 대한 명확한 관련 법령 제정과, 효과적인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사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