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동성결합(동성결혼)이 합법화될 것으로 보인다.
BBC 방송, AP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상원에서 동성 간 시민결합(civil unions)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찬성 173, 반대 71로 가결됐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법안이 최종 확정되기 위해서는 하원을 통과해야 하지만, 상원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한 상태여서 서유럽 국가로는 가장 마지막으로 동성결혼 또는 동성 간 시민결합을 허용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반대하는 바티칸(교황청)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탈리아의 상원에서 법안이 통과됐다는 점에서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법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동성커플의 입양 허용 조항은 삭제되었다는 점에서, 바티칸이 동성커플의 입양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을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동성커플 입용 허용이 삭제된 것과 관련, 가톨릭 단체 등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지난해 유럽 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도 이탈리아가 동성 커플에게 충분한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인권을 위반했다고 판결하면서 이탈리아 정부를 압박했었다.
'시민결합'은 혼인 관계에 준해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상속,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을 보장하는 가족제도다. 세금과 의료, 그리고 주거 등에 있어서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법안에는 동성 커플 어느 한 쪽이 숨졌을 때 함께 살던 사람에게 연금을 계속 지급하고, 유산 상속, 응급 의료 상황 시 근친 자격 부여 등 결혼한 배우자에게만 제공되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시민결합에서는 결혼한 배우자에게 요구되는 의무인 '신의'에 관한 언급이 빠져, 시민결합이 결혼과 완전히 동급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상원의 법안 통과에 대해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희망이 증오를, 용기가 차별을 이겼다. 사랑이 이겼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는 동성 커플이 대리모를 통해 얻은 생물학적 자녀의 입양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입양 허용 조항은 애초 정부 제출안에는 포함됐지만,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의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입양에 대해서는 반대한 탓에 삭제됐다.
가톨릭 교회와 깊은 유대를 가진 정당 등은 동성 커플들이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아 기를 가능성이 크다며 이를 거세게 반대했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는 대리모를 금지하고 있다.
동성결혼 옹호 단체들은 이번 법안에 입양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아르치게이(Arcigay)' 회장 플라비오 로마니(Flavio Romani)는 로이터 통신에 "이 법안은 다시 한 번 명확한 법률과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