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젠 투자할때", 방위비 증액 약속...사우디, 투자 앞세워 구애
중국 "제품·서비스 수입하고 싶다" 유화 제스처...이란 "핵협상 합의원해"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출발에 세계 각국이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집권 1기 때부터 '안보 무임승차론' 압박을 경험해온 유럽 각국은 미국발 청구서가 들이닥치기 전에 일단 선제적으로 방위비 인상을 약속하며 코드 맞추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는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구애에 나서는가 하면, 중국도 관세 부과 공격에 곧바로 맞대응하기보다는 미국산 제품을 더 구매하겠다며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우선 방위비 분담 시험대에 오른 유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옳다"는 식의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2일(현지시간) 유럽방위청(EDA) 연례 포럼 연설에서 "(방위비를) 충분히 지출하고 있지 않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옳다"며 "이제는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위비 지출 목표를 현행 국내총생산(GDP) 대비 2%에서 5%로 올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주장과 관련, 정확히 방위비를 어느 선까지 올릴지는 불투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에는 분명히 동조하는 발언이다.

그는 "미국을 향한 EU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스스로 방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유럽 안보를 위한 공평한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계속 남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유럽의 반대파였다면 그런 말(방위비 확대 주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 요구를 옹호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2일 마코 루비오 신임 미국 국무부 장관과 첫 통화를 한 뒤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유럽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고 대서양의 방위산업 생산을 증강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13일 유럽의회 외교위원회에서 "(미·유럽의 방위 관계 단절)을 바란다면 방위비 지출을 4배 이상으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의 이런 반응에는 나토의 안보 우산이 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돼있다.

유럽연합 27개국 중 23개국이 나토에 속해있으며, 현재로서는 미국이 주축인 나토에 유럽의 방위를 의존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방위비를 문제 삼아 나토를 탈퇴하겠다고 나선다면 지금과 같은 비용으로는 안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나토 회원국 중 방위비 증액에 대한 지지를 가장 먼저 표명했던 폴란드는 아예 미국과 연결고리 역할까지 자처하고 나섰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은 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요구 실현을 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다고도 밝히기도 했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는 노골적으로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취임식 후에 사우디가 미국 상품 5천억달러(720조 원)어치를 사주면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하겠다고 밝히자 6천억달러(860조 원) 투자로 화답하고 나선 것이다.

사우디는 트럼프 1기 때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10% 관세 부과 위협에도 일단 맞대응을 자제하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무역과 관세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미국과 소통 의지를 거듭 발신했고, 딩쉐샹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균형 잡힌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더 경쟁력 있고 품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수입하고 싶다"며 사실상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에 중동 내 대표적 반미 국가였던 이란마저도 일단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20일 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고 강조하며 대화에 열려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전략 담당 부통령도 22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란은 핵무기를 가지려 한 적이 없고,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새로운 핵 협상에 합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반면 캐나다는 일단 보복 관세 검토를 예고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라는 조롱마저 당했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도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미국에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 때 이미 미국 우선주의의 후폭풍을 경험했던 세계 각국은 당장은 대화를 앞세워 타협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관세 등을 무기로 삼은 강력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드라이브 앞에 기존 국제질서의 대변화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