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평화유지군에 미 지원 요구...트럼프, 광물협정 언급하며 "그것이 안전장치"
트럼프, 나토 집단방위 지지했지만 "쓸일 없어" 선긋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잇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과 관련, 전후 미국의 안보지원 설득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미국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유럽 평화유지군의 '안전장치'(backstop)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에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는지 질문에 "생산적인" 대화였다고만 답했다.

스타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스타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얀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그곳에 있다면 아무도 장난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것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한)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이는 오는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체결할 광물 협정 등으로 미국 근로자들이 전후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때를 가리키는 말로, 유럽에서 요청하는 안보 지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유럽 주요국은 각국 방위비를 증액해 자력 안보를 강화하고 전후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도 직접 파병하겠지만, 미국 지원은 필수라는 입장이다. 유럽은 미국에 정보 능력부터 병참, 군사 장비 지원, 나아가 러시아의 재침공과 같은 유사시 방공 약속까지 기대한다.

지난 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스타머 총리는 유럽의 희망사항을 거듭 언급했다.

그는 "내 우려는 (종전이나 정전)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는 임시방편이 아닌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푸틴이 다시 가거나 더 가려 한다면 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러시아와 '취약한' 안보 합의를 맺었던 후과를 겪고 있다. 1994년 12월 우크라이나는 소련 핵무기를 포기했고 미국과 영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그만큼 굳건한 안보 보장이 절실한 유럽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오락가락하는 화법에 불확실성만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자신이 속도를 내고 있는 우크라전 종전 관련 러시아와 협상이 타결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유럽과 입장차가 극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방위 의무를 명시한 조항인 5조를 지지하느냐 질문에 "지지한다"고 답하고선 곧바로 "난 우리가 그래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난 우리가 매우 성공적인 평화를 가질 것이며 그게 길고 항구적인 평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담에 앞서서는 영국 평화유지군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이 돕겠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도움이 필요 없다, 영국은 훌륭한 군을 보유했고 스스로 돌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고선 스타머 총리가 "우리는 항상 서로를 지지한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여러분(영국인) 혼자 맡을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트럼프와 스타머의 만남은 (다음날 만날) 젤렌스키엔 엄혹한 예고편"이라며 "트럼프는 그들(유럽 정상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내 주요 현안 일부에 대해선 소득을 챙긴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등에 대해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갈등을 빚는 가운데 이날 스타머 총리와 회담 후에는 미·영 무역 협정이 "아주 금세"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가 영국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설득했느냐는 직접적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아주 열심히 노력했다"며 "두 위대하고 우호적인 국가인 우리는 관세가 필요 없는 진짜 무역 협정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미국과 무역 협정을 추진했으나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이 전반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물러서면서 중단됐다.

수개월간 난항을 겪어 온 영국의 차고스제도 주권 이양 문제에 대해서도 긍정적 신호가 있었다. 영국은 미국·영국 합동 군사기지가 있는 영국령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하는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 들어가기 전 관련 질문에 "세부내용을 봐야겠지만 나빠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는 (영국과) 잘 되는 쪽으로 기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영국과 모리셔스의 주권 이양 합의에 찬성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모리셔스에 대한 중국 영향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는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군사기지가 있다. 영국과 모리셔스는 재협상을 마무리하고 트럼프 측의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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