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포퓰리즘으로 상승세를 타던 피에르 폴리예브르, 트럼프의 도발이 캐나다인들을 전 중앙은행 총재 쪽으로 돌려세우다
캐나다 보수당(Pierre Poilievre) 대표 피에르 폴리예브르는 2025년 초 캐나다의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의 보수당은 1년 넘게 당시 총리였던 저스틴 트뤼도의 자유당을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차이로 앞서며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었다.
그러던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트럼프의 무역전쟁과 캐나다 합병 위협은 캐나다 정계를 뒤흔들었다. 불과 석 달 만에, 보수당은 압도적 우세에서 4월 28일로 예정된 총선에서의 열세로 돌아섰다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폴리예브르가 처한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그의 맞상대였던 비호감 정치인 트뤼도가 3월 사임했고, 트럼프의 공격적인 발언은 캐나다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며 정부 지지로 이어졌다. 현재 보수당은 여론조사 집계 사이트 338Canada 기준 자유당에 5%포인트 뒤지고 있다.
보수 진영 전략가들은 폴리예브르가 상황에 맞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타리오 주 총리 더그 포드의 재선 캠페인을 이끌었던 보수 전략가 코리 테니이크(Kory Teneycke)는 "트럼프로부터 엄청난 혼란과 변화가 쏟아지는 지금, 국민들이 '변화'보다 '안정된 손'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국민적 안정 추구의 수혜자는 바로 마크 카니(Mark Carney)다. 그는 캐나다와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했고, 3월 트뤼도의 뒤를 이어 자유당 대표이자 총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2008년 금융위기와 브렉시트 위기를 성공적으로 이끈 안정적 지도자로 내세우고 있다.
카니는 4월 13일 프랑스어 토크쇼에서 "나는 위기 관리 경험이 풍부하다"며 "지금 상황이 어렵지만,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도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여론조사 기관 아바커스 데이터(Abacus Data)가 4월 16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에 가장 잘 대처할 후보로 카니를 꼽은 응답자는 43%, 폴리예브르는 36%였다.
45세의 경력 정치인 폴리예브르는 2022년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트럼프와 유사한 포퓰리즘 전략으로 승리했다. 그는 2022년 오타와를 점거하며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항의한 트럭 운전자들을 지지했고, 세금 인하, 정부 축소, 자유당의 기후변화 정책 폐기, 군대 내 '각성주의(wokeism)' 종식을 공약했다. "캐나다 우선(Canada First)" 등의 선거 구호도 트럼프식이다.
경제 문제와 인플레이션 등 실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자유당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그의 지지율은 수십 년 만에 보수당 지도자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트럼프식 캠페인은 대중적 지지를 넓히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아바커스 데이터의 CEO 데이비드 코렛토(David Coletto)는 말했다.
그는 "유권자들은 폴리예브르가 트럼프 같다고 느끼거나, 말투나 표현 방식에서 트럼프와 유사하다고 느껴 거부감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폴리예브르는 최근 여러 인터뷰에서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교사 출신 부부에게 입양된 배경을 강조하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트럼프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4월 13일 캐나다 팟캐스트 '지식 프로젝트(Knowledge Projec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며 "트럼프는 부유한 백만장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매우 소박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많은 정책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월 17일 진행된 당 대표 토론회에서 폴리예브르는 카니를 '트뤼도 복제판'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캐나다는 자유당에 또 다른 임기를 맡길 여유가 없다"며 "가계가 식료품비와 주거비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니는 변화가 아니다. 트뤼도가 했던 똑같은 약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폴리예브르는 선거 초점이 경제와 생활비 문제에 맞춰지길 바라고 있다. 그는 캐나다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자유당의 10년'이라 부르며, 생산성 저하와 1인당 GDP 정체를 지적한다. 또한 자유당이 인기 없는 소비자 탄소세 폐지안 등 보수당 정책을 모방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는 카니를 세계 엘리트라 지칭하며 포퓰리즘 전략으로 공격하고 있다. "마크 카니와 자유당 같은 글로벌 엘리트는 우리의 산업 기반을 팔아넘기고 일자리를 중국과 미국에 넘기며 캐나다 노동자들을 버리고 있다"고 그는 4월 초 토론토 외곽 유세에서 말했다.
트럼프처럼 폴리예브르도 대규모 유세 인파를 자랑한다. 보수당 측에 따르면 4월 7일 앨버타주 에드먼턴 유세에는 1만5,000명이 참석했다.
폴리예브르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인물, 트럼프다. 트럼프는 여전히 일부 캐나다산 제품에 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중국 등 세계적 경쟁자에게 집중하면서 보수당에게 반사이익이 생기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앵거스 리드 연구소(Angus Reid Institute)에 따르면, 캐나다인들도 다시 생활비 문제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앵거스 리드 대표 샤치 컬(Shachi Kurl)은 "몇 달간 관세 문제가 캐나다인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관세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우려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