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개의 공식 통계 삭제... '진짜 중국 경제' 파악 어려워져

최근까지 중국 정부는 다양한 공식 통계를 외부에 제공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수많은 통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보도했다.

부동산 거래, 외국인 투자, 실업률과 같은 핵심 경제지표부터 시작해 화장품 소비나 간장 생산량 같은 세부 항목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에 달하던 데이터가 현재는 삭제되거나 비공개로 전환됐다.

WSJ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연구자들과 투자자들이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데 활용해오던 수많은 데이터를 이유 없이 삭제하고 있다.

이는 과도한 부채, 붕괴 위기에 직면한 부동산 시장 등으로 침체에 빠진 중국 경제에 대해 정부가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중국 토지분양 통계

(톶지분양 통계. 중국국가통계국)

'투명성 실종'... 경제지표 줄줄이 삭제

중국 국가통계국은 최근 몇 년 사이 도시 실업률과 실업급여 수급자 수 등의 발표를 중단했다. 어떤 수치는 "제공 부처가 더 이상 데이터를 넘기지 않는다"는 간단한 이유만 남긴 채 삭제됐다.

청년 실업률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여름, 청년층(16~24세)의 실업률이 21.3%로 최고치를 찍은 뒤, 북경대 경제학자 장단단(张丹丹)은 실제 수치는 46.5%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8월부터 해당 통계 발표를 전면 중단했다.

이후 정부는 2024년 1월 '새로운 방식'으로 산출한 실업률 14.9%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전일제 대학생 약 6,200만 명'을 아예 실업자 대상에서 제외해 신뢰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GDP신뢰 어렵다"... 대체 지표 찾는 경제학자들

중국의 공식 GDP 성장률은 2023년 5.2%, 2024년 5.0%로 발표됐지만, 실제보다 2~3%포인트 높게 부풀려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경제학자들은 영화 박스오피스, 야간 위성조명량, 시멘트 공장 가동률, 전력 생산량 같은 '대체 데이터'로 경제 상황을 추정하고 있다.

뉴욕의 싱크탱크 '로듐그룹(Rhodium Group)'은 2024년 중국의 실제 성장률을 2.4%로 추산했고, 골드만삭스는 수입 데이터를 기반으로 약 3.7%로 봤다.

집값 붕괴·지방정부 재정난... '불편한 진실'통계에서 빠졌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2021년부터 급격히 냉각됐다. 정부의 대출 규제 이후 부동산 업체는 줄도산했고,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면서 시장은 침체에 빠졌다.

베이커연구소(Beike Research)는 2022년 중국 28개 도시의 주택 공실률이 미국보다 높다는 보고서를 냈지만, 며칠 만에 "데이터 오류"를 이유로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국토 매각 수입은 2022년 48% 급감했고, 이 데이터는 2023년부터 아예 공개되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 실시간 매매 데이터도 차단

2024년 4월,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시장 불안이 커졌다. 이에 상하이·선전 증시는 외국인 자금 유입·유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돌연 중단했다.

이후 증시는 4개월 연속 하락했고, 정부는 9월에야 대규모 경기 부양 조치를 내놨다.

"안정된 국가 이미지 지키기 위한 통제"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국가의 안정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통계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23년 말, 국영 증권사 소속의 저명한 중국 경제학자 가오산원(高善文)은 "중국의 실제 성장률은 2% 수준일 수도 있다"고 워싱턴에서 발언했다가 공개 활동 금지 징계를 받았다.

중국 증권감독 당국은 증권사들에게 "경제학자들이 투자자 신뢰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해외 접근도 차단... 홍콩서 주말마다 션전 가는 이코노미스트

2021년 중국은 데이터를 통제하는 '데이터안보법'을 제정해 기업정보나 위성자료, 부동산 입찰 정보 등 일부 민감 데이터를 중국 본토에서만 접근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이에 따라 외국계 은행 소속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부터 주말마다 홍콩에서 션전으로 넘어가 데이터를 내려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중국 경제의 투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지고 있다. 겉으로는 "통계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무엇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