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석 과반 확보한 연정 구성에도 불구하고 신임 투표 실패...정권 출범 불투명

독일의 차기 총리로 지명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가 5월 6일(현지시간) 연방하원(Bundestag) 신임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하며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전후 독일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자, 유럽 전체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사건으로 평가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보도했다.

메르츠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구성한 연립정부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총리직에 도전했으나, 12석의 안정 과반을 확보하고도 예상치 못한 부결을 맞았다. 투표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연정 내부에서 누구의 이탈표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프레드릭 메르츠 독일 총리후보자

(프레드릭 메르츠 독일 총리후보자. X)

포르자(Forsa) 여론조사 기관의 만프레트 귈너(Manfred Güllner) 소장은 "설사 메르츠가 2차 투표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번 사태는 그의 정치적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힌 것"이라고 말했다.

CDU의 원내대표 옌스 슈판(Jens Spahn)은 같은 날 오후 2차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메르츠가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럽, 어쩌면 전 세계가 이 투표를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기본법에 따르면 총리 지명자는 첫 투표 실패 이후 14일 내에 재도전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내에 어떤 후보도 과반을 얻지 못하면 세 번째 투표에선 단순 다수(plurality)만으로도 총리가 선출될 수 있다.

그러나 메르츠가 2차 투표에서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퇴를 택할 경우, 독일은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CDU가 이전보다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새로운 선거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이날 본 회의장에는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을 비롯한 외교 사절단 및 주요 정치인들이 메르츠의 당선을 보기 위해 모였으나, 투표 결과는 충격을 안겼다. 대통령 관저인 벨뷰 궁에도 메르츠의 방문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츠와 SPD는 이미 내각 인선을 마친 상태였으며, 부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은 현재 모두 불확실한 정치 상황 속에서 대기 중이다.

이례적인 투표 실패는 독일 정치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며, 프랑스와 같이 다수당이 없는 상태로 국정을 운영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유사성이 부각되고 있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공동대표 알리체 바이델(Alice Weidel)은 이번 결과 직후 "이는 다가올 정부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명백한 징후"라며, 메르츠의 사퇴와 조기 총선을 촉구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AfD는 CDU를 앞서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메르츠가 계획했던 프랑스·폴란드 방문 일정과 우크라이나 방문 또한 불투명해졌다. 그는 유럽 내 리더십 회복, 침체된 경제의 부흥, 그리고 이민 문제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국제적 기대를 모아왔지만, 이번 실패로 그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한편, 신임 총리 취임이 지연되면서 올라프 숄츠(Olaf Scholz) 현 총리는 차기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 임시 내각을 이끌 전망이다.

요한 바데풀(Johann Wadephul) 외무장관 내정자는 "놀라운 결과지만, 비극은 아니다"라며 "이것이 바로 의회 민주주의"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신임 투표 실패가 메르츠의 리더십에 오랜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으며, 새 정부의 법안 추진력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