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지도부 줄줄이 구금·망명... EU "명목상의 후보국일 뿐"

불과 1년 전만 해도 여러 야권 연합이 조지아 의회에서 경쟁하며 그중 네 곳이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금 8명의 핵심 야권 지도자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수감·망명·형사 기소 상태다. 집권당은 이제 주요 야당 3곳을 아예 법적으로 해산시키는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18일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구 370만 명의 남캅카스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정치적 후퇴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소련 붕괴 이후 조지아는 오랫동안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국가로 여겨졌고, 유럽연합(EU) 가입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며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꾸준했다.

조지아 시위현장
(지방선거후 대규모 시위대 모습. AP)

하지만 EU의 최근 평가에 따르면 조지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서방과 멀어진 상태다. EU는 민주주의 제도가 크게 약화됐으며 사법부가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달 발표된 EU 보고서는 조지아를 "명목상의 후보국"이라고 규정했고, 주재 EU 대사는 조지아가 더 이상 EU 가입 궤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조지아 정치·외교를 지켜본 인사들은 "민주주의가 되돌리기 어려운 선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일당 독재까지 5분 남았다"

전 외교차관·전 부의장인 세르기 카파나제는 "지금 우리는 일당 독재에 5분 전까지 와 있다"고 말했다.

나탈리 사바나제 전 조지아 EU 대사(2021년까지)는 조지아 정치가 아무리 내부 갈등이 심해도 '조지아는 서방에 속한다'는 공감대는 항상 존재했다고 평가하지만, 이제 그 합의가 무너졌다고 말한다.

그녀는"EU가 요구하는 민주화는 언젠가 권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당 '조지아의 꿈'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실상 전면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당 조지아의 꿈은 자신들이 야권의 쿠데타 시도를 막고 있으며, 조지아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몰아가려는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8년 조지아-러시아 전쟁 당시 러시아군 전차가 수도 트빌리시 외곽까지 진입한 기억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조지아인들에게 더 강하게 되살아난 상황이다.

집권당 의원 니노 칠로사니는 "조지아는 매우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평화의 섬'이다. 투자자와 기업이 원하는 것은 바로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구금된 야권 지도자들이 "쿠데타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지만 야권은 이를 탄압을 위한 조작이라고 반박한다.

야권 탄압의 배후? - 억만장자 창당자 이바니슈빌리

야권과 시민사회는 조지아의 꿈을 창당한 억만장자 비지나 이바니슈빌리를 권위주의 전환의 핵심 설계자로 지목한다. 일부는 그가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종속돼 있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그의 최고 측근 출신 정치고문이었던 지아 후카슈빌리는 "그를 러시아에 복종하는 인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며, 다만 러시아와 조지아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고, 이바니슈빌리는 위험한 세계 정세 속에서 '형 역할'을 해줄 강대국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형"은 러시아다.

경제는 러시아·중국 쪽으로 기울어

흑해 연안이라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조지아는 서방의 에너지·물류 다변화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이 있다. 1990년대 혼란 이후 조지아는 서방 지향 개혁과 친투자 정책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00년대 초 수준으로 급감했고, 대규모 서방 컨소시엄이 추진하던 흑해 대심도 항구 프로젝트는 좌초됐다. 이후 중국 기업이 계약을 따냈지만 진전은 거의 없다.

오히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기업·IT 인력 대거 유입이 경제에 활력을 주며 성장세가 유지됐다. 세계은행은 올해 조지아 경제성장률을 7%, 지난해는 **9.4%**로 예상했다.

하지만 조지아의 대러시아 석유 수입 비중은 2012년 8% → 현재 45%로 급증했다.

전 미국 대사 이안 켈리는 "서방이 조지아와의 관계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지금 조지아는 러시아와 중국에 문을 열고 있다"고 우려했다.

'속전속결' 야권 제거... "속도 체스 같다"

조지아의 꿈은 최근 몇 주간 남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전방위 조치를 취해왔다.

  • 헌법재판소 소송으로 주요 야당 3곳을 금지하려는 움직임

  •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 등 야권 핵심 9명에 대한 새로운 형사 기소

  • 심지어 집권당 창당자 이바니슈빌리와 가까웠던 전직 고위 관료들까지 기소 대상

카파나제 전 부의장은 "정부가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야권은 마치 '속도 체스'를 두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단기간에 모든 말이 사라지고 체크메이트가 가까워지는 형국이라는 의미다.

매일 밤 의회 앞 반정부 시위에서는 체포가 이어지고, 많은 정치활동가들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다. 도로를 막았다는 이유로 구금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은 이들도 수십 명에 이른다.

레로(Lelo)당의 그리고르 게겔리아는 "조지아는 유럽 테이블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라 국제 무대 자체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나라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