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S 'SAVE' 시스템에 사회보장번호·이민기록 결합...주정부가 유권자 시민권 확인 가능
보수 6명 다수의견, 하급심 금지명령 효력 정지...진보 성향 대법관 3명 반대
"불법 비시민권자 투표 차단" vs "합법 유권자 오인 삭제 위험" 정면 충돌

다만 최종 판결은 아니며, 선거 90일 전 대규모 명부 정리에는 별도 연방법 제한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가 연방 이민·사회보장 데이터를 이용해 유권자의 미국 시민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25일 일단 허용했다.

이번 결정으로 국토안보부(DHS)가 확대 개편한 SAVE(Systematic Alien Verification for Entitlements) 시스템의 사용을 금지했던 워싱턴DC 연방법원의 명령은 상급심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효력이 정지된다.

연방 대법원
(연방 대법원. 자료화면)

대법원은 서명 없는 다수의견에서 1996년 연방법이 DHS가 다른 연방기관으로부터 시민권 및 이민신분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받을 수 있도록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주·지방정부가 개인의 시민권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할 경우 DHS가 이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SAVE 시스템의 적법성을 최종 확정한 본안 판결은 아니다. 대법원은 하급심의 금지명령을 일시 중단했을 뿐이며, 관련 소송은 계속 진행된다.

기존 이민 DB에 사회보장정보 연결

SAVE는 원래 정부기관이 공공혜택 신청자의 시민권·이민신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해온 국토안보부 시스템이다.

대법원 결정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행정명령을 통해 주·지방 선거당국이 등록 유권자와 신규 등록자의 시민권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DHS는 사회보장국(SSA)의 기록을 SAVE에 연결하고, 사회보장번호를 이용한 검색과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확인하는 대량 검색 기능을 추가했다.

이전 SAVE 시스템이 주로 이민당국 기록을 바탕으로 개별 신분을 확인했다면, 개편된 시스템은 사회보장정보까지 결합해 대규모 유권자 명단을 조회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로이터에 따르면 플로리다·아이오와·인디애나·오하이오 등 일부 공화당 주도 주들은 이미 확대된 SAVE 시스템을 이용해 유권자 명단과 연방 기록을 대조해왔다.

대법원 "연방정부, 주정부 시민권 조회 요청에 응할 의무"

이번 사건의 핵심 법적 쟁점은 DHS와 사회보장국이 개인정보를 서로 공유해 유권자의 시민권 여부를 확인할 권한이 있는지였다.

앞서 워싱턴DC 연방법원의 스파클 수크나난(Sparkle Sooknanan) 판사는 지난 6월 확대된 SAVE 시스템이 사회보장법과 프라이버시법 등을 위반했다며 사용을 금지했다.

DC 연방항소법원도 9월 4일 정부의 효력정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 다수의견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1996년 제정된 불법이민개혁·이민책임법(IIRIRA) 1373조가 DHS에 다른 기관의 시민권·이민정보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으며, 주와 지방정부의 시민권 확인 요청에 DHS가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정부가 항소심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충분하며, SAVE 사용을 계속 막을 경우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선거관리 업무를 지원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 3명 반대

대법원의 진보 성향 대법관 세 명은 반대의견을 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rown Jackson) 대법관은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엘리나 케이건(Elena Kagan) 대법관과 함께 다수의견이 관련 법률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잭슨 대법관은 1996년 법이 DHS가 시민권 관련 문의에 응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사회보장법과 프라이버시법이 보호하는 민감한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사회보장국 자료의 시민권 정보가 최신 상태가 아닐 수 있어 최근 귀화한 미국 시민을 비시민권자로 잘못 표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의견은 합법적 유권자 일부라도 투표권 행사에 부담을 받거나 유권자 명단에서 잘못 제외되는 피해가 정부가 SAVE를 즉시 사용하지 못해 입는 피해보다 중대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 시민을 비시민권자로 표시한 사례도

SAVE의 정확성 문제는 이번 소송에서 가장 큰 논란 가운데 하나다.

AP에 따르면 텍사스 트래비스카운티 선거당국은 SAVE가 비시민권자로 표시한 일부 등록자를 조사한 결과 실제 미국 시민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했다.

텍사스 덴턴카운티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앤서니 넬스(Anthony Nels)가 10여년 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음에도 SAVE에서 잠재적인 비시민권자로 표시됐다. 그의 유권자 등록은 시민권을 다시 증명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취소됐다.

선거권 단체들은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SAVE 결과를 곧바로 유권자 자격 박탈의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 출신인 스티븐 리처(Stephen Richer) 전 애리조나 매리코파카운티 선거책임자도 대법원 결정이 책임 있게 사용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SAVE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최종적인 시민권 판정 수단이 아니라 추가 확인을 위한 출발점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 "선거 무결성 위한 승리"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DHS의 제임스 퍼시벌(James Percival) 법무총괄은 대법원 결정에 대해 주정부가 비시민권자의 불법 투표를 막을 수 있도록 정부 자료를 사용하는 데 대법원 긴급신청까지 해야 했다는 것이 놀랍다는 취지로 밝혔다.

행정부는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이 연방선거에 투표하는 것은 불법인 만큼, 주정부가 등록 유권자의 시민권을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하고 효율적인 연방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소송에서 법무부도 SAVE가 유권자를 자동으로 부적격자로 판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연방 데이터로 시민권 여부가 확인되는지를 주정부에 알려주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잘못된 명부 삭제 위험"

반면 여성유권자연맹(League of Women Voters)과 개인정보 보호단체 등 소송을 제기한 측은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SAVE 자료가 오래되거나 불완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귀화한 미국 시민까지 비시민권자로 표시될 수 있으며, 그 결과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유권자 명부에서 잘못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로이터는 개편된 시스템의 전체 오류율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DHS와 법무부도 관련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급심의 수크나난 판사도 앞서 SAVE 확대 과정이 충분한 개인정보 보호절차 없이 진행됐으며 시민권 자료 자체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중요한 제한...주정부가 사용해야만 작동

이번 대법원 결정이 연방정부가 전국 유권자 명단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의 선거는 기본적으로 주정부가 관리하며, SAVE 시스템을 사용할지 여부도 각 주가 결정한다.

AP는 SAVE 참여가 자발적이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주에는 이번 대법원 결정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메인주의 셰나 벨로스(Shenna Bellows) 주무장관은 SAVE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이번 결정이 메인주의 선거관리 방식을 바꾸도록 강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실제 영향은 SAVE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주와 사용하지 않는 주 사이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간선거 직전 대규모 유권자 삭제에는 '90일 규정'

이번 결정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직전 유권자 명단을 대규모로 정리할 수 있도록 즉각 허용한 것도 아니다.

연방 전국유권자등록법(NVRA)은 연방선거를 앞둔 90일 이내에는 부적격 유권자를 조직적으로 대규모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원칙적으로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다수의견 역시 이 90일 규정이 이번 SAVE 결정의 중간선거 영향을 제한한다고 인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개별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시민권 조회는 이 기간에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별도의 사건에서 90일 규정이 비시민권자로 확인된 유권자의 등록 취소까지 제한하는지 여부를 앞으로 심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 주정부 유권자 명부 확보 소송서는 잇단 패소

트럼프 행정부의 유권자 시민권 확인 노력은 SAVE 시스템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는 각 주가 관리하는 유권자 명단을 연방정부에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법적 조치도 추진해왔다.

그러나 로이터에 따르면 8월까지 연방법원들은 유권자 명부를 넘기지 않은 주정부들을 상대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소송에서 21차례 연속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들은 선거관리의 주된 책임이 주에 있고,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문제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연방정부가 전국 모든 주의 완전한 유권자 명단을 직접 보유한 상태는 아니다.

SAVE 시스템 역시 주정부가 자체 명단을 이용해 연방 데이터와 대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국 단일 유권자 명부와는 구별된다.

비시민권자 투표 규모 놓고도 논쟁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관계자들은 비시민권자가 미국 유권자 명부에 상당수 포함돼 있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반면 주 선거관리 당국과 선거 전문가들은 실제 비시민권자의 투표 사례가 존재하지만 전체 선거 규모와 비교하면 드물다는 입장이다.

AP는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조지아주가 등록 유권자 820만명 가운데 비시민권자로 확인한 사람이 20명이었으며, 오하이오에서도 약 10년에 걸쳐 비시민권자 투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9명이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비시민권자의 투표가 불법인지 여부가 아니다.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의 연방선거 투표는 이미 불법이다.

실질적인 쟁점은 이를 찾아내기 위해 어느 수준까지 연방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결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합법적인 미국 시민의 투표권이 잘못 제한될 위험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있다.

이번 결정은 '최종 승소' 아니다

25일 대법원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법적 구분도 여기에 있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SAVE 시스템의 적법성에 관한 본안소송에서 최종 승리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법원은 정부가 상급심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고,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하급심의 전면 금지명령을 유지할 경우 정부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금지명령의 효력만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본안에서는 사회보장정보와 이민정보를 결합한 SAVE 시스템이 프라이버시법과 사회보장법을 위반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이 계속된다.

그러나 중간선거를 불과 수주 앞둔 시점에 대법원이 시스템 가동을 다시 허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당장 선거관리 현장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90일 규정과 주정부의 자발적 참여라는 제한 때문에 실제로 몇 명의 유권자가 추가 확인 대상이 되고, 실제 명부 변경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주별 정책과 후속 법원 판단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