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UAE·이라크 등 우회 수출 확대...전쟁 이후 최대 수준 회복
이란은 미국의 해상봉쇄로 원유 수출 막혀...대중(對中) 잔여 물량도 10월 중순 고갈 전망

협상 지렛대 약해진 테헤란, 군사적 재도발 유인 커져
유가 안정 조짐 속에도 항만·정유시설·송유관 타격 땐 다시 급등 가능성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이 최근 빠르게 회복되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쥐고 미국과 국제사회를 압박하려 했던 전략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란의 지렛대가 약해질수록 오히려 군사적 확전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미국과 걸프 산유국들에는 더욱 위험한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
(호르무즈 해협. 자료화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 해군과 걸프 산유국들은 이란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우회하는 능력을 높이며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량을 상당 부분 회복시켰다. 그 결과 중동산 원유 수출은 이달 들어 전쟁 발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반등했다.

중동 원유 수출, 전쟁 이후 최고 수준으로 회복

유조선 추적업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량과 우회 수출 물량을 합쳐 하루 약 1,300만 배럴에 근접했다. 이는 전쟁이 시작된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선박 추적업체 클레플러(Kpler)는 지난주 기준 호르무즈 해협 및 우회 경로를 통한 원유 흐름이 전쟁 이전의 약 80% 수준까지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추적업체 후액스(Huax) 자료에서도, 2월 전쟁 직전 약 1,900만 배럴 수준이던 중동 지역 원유 수출이 최근 들어 큰 폭으로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디, 동서 송유관 복구...우회 수출 재개

사우디아라비아는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던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을 복구해 다시 원유를 홍해 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이를 통해 홍해 항구에서 유조선에 원유를 선적하고 있으며, 일부 물량은 국내 정유시설로도 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UAE 역시 오만만의 푸자이라(Fujairah)로 연결되는 자국 송유관을 활용해 일부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우회 경로는 완전한 대체 수단은 아니지만, 이란이 호르무즈를 압박하는 상황에서도 걸프 산유국들이 일정 수준의 수출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은 봉쇄에 갇혀...원유 수출 기반 급속 약화

반면 이란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미국이 7월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재개한 이후, 이란은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자국 원유를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란이 벌어들이는 원유 수입은 봉쇄 이전에 해협 밖으로 미리 빼돌려 놓은 물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클레플러는 해협 밖에 남아 있는 이란산 원유가 9월 초 약 2,900만 배럴에서 최근 약 1,500만 배럴 수준으로 줄었다고 추산했다. 이 물량 대부분은 중국행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 속도라면 10월 초~중순이면 사실상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전쟁과 제재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이란 경제는 핵심 외화 수입원마저 잃게 된다. 전쟁 이전 하루 약 200만 배럴에 육박하던 수출을 대체할 뾰족한 방법도 없다. 육상 운송으로는 하루 4만 배럴 정도밖에 옮길 수 없어, 기존 수출 규모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협상 지렛대 약화...이란, 더 위험한 선택 할 수도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단순히 이란의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였던 '세계 에너지 공급 위협'이 약해질수록, 다른 방식의 압박-즉 군사적 재도발-에 나설 유인이 커질 수 있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은 "이란의 호르무즈 전략이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란이 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충돌을 직접 유발하려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리처드 브론즈 역시 "이란 지도부가 호르무즈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느낄수록 다른 방식의 확전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걸프 산유국들, 항만·정유시설 추가 공격 우려

걸프 산유국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내부에서의 선박 공격 대신, 항만·정유시설·송유관 등 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겨냥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바꾸는 것이다.

지역 당국자들에 따르면 혁명수비대는 이미 전술을 빠르게 바꾸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역내 민병대 네트워크도 동원할 수 있다. 실제로 예멘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 아래 홍해에서 사우디 선박 및 관련 시설을 위협해 왔다. 최근 이란이 경제적 압박을 받으면서 전장을 홍해 쪽으로 넓히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 초 이라크발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 동서 송유관이 한때 가동을 멈췄고, 후티 위협으로 홍해 항로도 불안정해지면서 사우디 아람코가 일부 물량을 다시 호르무즈 쪽으로 돌려야 했던 점은 이런 우회 경로 역시 완전히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가 안정 신호 속에도 '상방 위험' 여전

최근 원유 수출 반등은 국제유가의 급등세를 다소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도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본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하마드 후세인은 "분쟁이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 한 유가의 위험은 여전히 상방에 치우쳐 있다"고 진단했다. 즉 수출 회복세가 나타나더라도 항만, 정유시설, 송유관 등에 대한 공격이 다시 성공할 경우 유가는 곧바로 재차 급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도 여전히 중동 에너지 흐름에 취약하다. 이번 수출 회복으로 유가와 휘발유·경유 가격 부담이 다소 완화될 수는 있지만, 충돌이 재격화되면 미국 소비자 물가와 세계 경제에 다시 큰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이란의 휴전 제안 거부 이후 긴장 다시 고조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이 제안한 새로운 휴전안을 거부했다. 해당 제안은 미국이 이란 항구 봉쇄를 7일간 풀고, 그 대가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 협상 공간을 마련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 뜻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최근 성명에서 "호르무즈의 수호자들"을 언급하며 여전히 이 수로의 통제력을 핵심 압박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실제 상황은 이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영국 해군과 연계된 UKMTO(영국 해사무역기구)는 최근 72시간 동안 호르무즈에서 확인된 공격이나 중대한 교란은 없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공식 공격 보고는 9월 23일이었다. 이는 유엔총회 기간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일시적 숨 고르기일 수 있지만, 시장은 이를 장기 안정 신호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미국에는 "좋으면서도 위험한" 상황

결국 지금의 상황은 미국에는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력이 약해지면서 국제유가와 미국 내 연료가격에 대한 압박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또 미국과 걸프 동맹국 입장에서는 이란의 협상력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압박받는 이란이 오히려 더 과감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더 위험한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이란이 더 이상 경제적 카드로 원하는 양보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군사적 충돌의 강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초크홀드(chokehold·질식시키는 통제력)'가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위기가 완화되고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란이 남은 영향력을 입증하기 위해 더 큰 충돌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국제사회는 지금 더 민감한 전환점에 서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