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미군 병력 이라크 북부 기지서 철수...2003년 침공 이후 23년 군사주둔 사실상 종료
이라크 정부의 친이란 민병대 무장해제 시한은 실패...9월30일에서 2027년 6월로 연기
미·이란 전쟁 이후 친이란 무장세력에 무기 공급 다시 증가...미 시설 공격도 수백 차례

미국은 철수하지만 정보·감시 능력과 경제적 영향력 유지...이라크의 '진짜 주권' 시험대 

미국이 30일 이라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주요 미군 병력의 철수를 완료하면서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한 미국의 이라크 군사개입이 23년 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미군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의 마지막 기지에서 병력을 철수했고, 미 국방부는 이로써 이슬람국가(ISIS)를 상대로 한 12년간의 공식 군사임무도 종료됐다고 밝혔다. 이번 철수는 2024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당시 이라크 정부가 합의한 일정에 따라 진행됐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최종적으로 이행했다.

그러나 미국이 떠나는 시점의 이라크는 23년 전 미국이 처음 개입했을 때 기대했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23년 동안 약 1조7천억달러를 투입한 뒤 마지막 주요 군사기지를 폐쇄하지만, 친이란 민병대는 오히려 정치·군사적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이라크에 미군 더 이상 필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백악관에서 알리 알자이디(Ali al-Zaidi) 이라크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더 이상 이라크에 군대를 둘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자료화면)

트럼프는 당시 41세의 알자이디 총리를 새로운 이라크 지도자로 치켜세웠고, 알자이디는 같은 자리에서 9월30일까지 친이란 민병대가 무기를 국가에 넘겨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병력을 철수하는 대신 알자이디 정부가 이라크 내 무장세력을 통제하고 국가 밖의 별도 군사조직을 없애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미군 철수일인 9월30일이 됐음에도 이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민병대 무장해제 시한 결국 2027년 6월로 연기

이라크 정부는 당초 9월30일까지 친이란 무장단체들을 해체하거나 무기를 국가 지휘체계 아래 두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조직은 협조 의사를 보였다. 이라크 군 당국은 몇몇 무장세력이 실제로 무기를 넘겼으며 다른 조직들과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타이브 헤즈볼라(Kataib Hezbollah)와 하라카트 알누자바(Harakat al-Nujaba)를 비롯한 강경 민병대들은 무장해제를 거부했다.

AP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결국 9월30일이었던 무장해제 시한을 2027년 6월로 미뤘다.

미군 철수와 민병대 무장해제를 동시에 추진하려 했던 계획 가운데 한쪽만 예정대로 진행된 셈이다.

"정부 자체가 우리가 만든 결과"

일부 친이란 민병대는 자신들이 단순한 무장조직이 아니라 현재 이라크 정치체제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카타이브 사이이드 알슈하다(Kata'ib Sayyid al-Shuhada)의 카젬 알파르투시(Kazem al-Fartousi) 대변인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강제로 자신들의 무기를 빼앗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조직과 다른 민병대들이 이라크 정부 부처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으며 의회에도 수십 석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알자이디 총리가 지난해 총선 이후 연립정부 협상을 통해 선택되는 과정에도 민병대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서 "정부는 우리가 만드는 데 참여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는 이라크의 민병대 문제가 단순히 무장해제 명령을 내린다고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미·이란 전쟁이 오히려 민병대 다시 강화

더 큰 문제는 올해 2월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세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다시 활성화했다는 점이다.

미국 전·현직 관리들에 따르면 전쟁 초기에는 이란이 미국과의 직접 전투에 집중하면서 이라크 민병대로 보내는 소형무기와 드론, 단거리 로켓 공급이 한때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름부터 공급이 다시 증가했고 최근에는 보다 장거리의 미사일과 드론까지 사용되기 시작했다.

WSJ에 따르면 전쟁 초기 두 달 동안 이란군과 친이란 민병대는 이라크 내 미국 외교·군사시설을 상대로 600차례가 넘는 공격을 감행했다.

사우디 핵심 송유관 공격에도 이라크 거론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무장세력의 영향은 이라크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

이달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드론 공격에 대해 사우디 당국은 드론이 이란 국경과 가까운 이라크 지역에서 발사됐다고 밝혔다.

이 송유관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면서 걸프 산유국들이 원유를 홍해 쪽으로 우회 수출하는 핵심 통로다.

따라서 이라크 내 무장세력이 이란과 미국의 전쟁뿐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셈이다.

미군 떠나지만 ISIS 위협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의 공식 설명은 이라크군이 이제 ISIS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ISIS가 더 이상 과거처럼 영토를 점령하고 중앙집권적인 군대로 행동하는 조직은 아니며 이라크 안보군이 대테러 임무를 주도할 능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ISIS 잔존세력은 여전히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미국 철수를 앞두고 이라크 북부와 쿠르드 지역에서는 ISIS 잔존조직의 활동이 증가했다는 보고도 나왔다.

미 국방부 감찰관도 올해 보고서에서 미·이란 전쟁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대테러 지원이 사실상 거의 중단된 상태까지 둔화됐다고 지적했다.

2011년 떠났다가 ISIS 때문에 3년 만에 돌아온 미국

미군의 이라크 철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고 2011년 대부분의 병력을 철수했다.

그러나 불과 3년 뒤 ISIS가 시리아에서 이라크로 넘어와 모술을 비롯한 광대한 지역을 장악하면서 미군은 다시 돌아왔다.

미국이 주도한 수천 차례의 공습과 이라크·시리아 병력의 지상작전을 통해 ISIS의 영토 지배는 무너졌지만, 그 과정에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역시 ISIS와 싸우며 세력을 확대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일부 민병대는 해체되지 않고 정당을 만들고 정부기관에 진입했다.

교육부와 세관·세무기관 등 주요 정부조직에도 민병대와 연계된 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의 침공이 역설적으로 이란 영향력 확대 길 열어

이는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남긴 가장 큰 역설 가운데 하나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란과 이라크는 8년간 전쟁을 벌였고 수십만명이 숨졌다.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이란의 가장 강력한 지역 경쟁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미국이 2003년 사담 정권을 무너뜨린 뒤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이란과 가까운 정치세력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WSJ은 미군 침공 이후 발생한 혼란이 이란이 이라크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이후 이라크 무장단체들을 조직하고 로켓과 장갑관통 폭발물 등의 무기를 제공했으며, 이란 장교들을 보내 훈련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미국의 기밀해제 정보자료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기자 납치까지...바그다드 치안불안

미군 철수를 앞둔 올해 이라크에서는 미국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도 다시 커졌다.

WSJ에 따르면 미 대사관은 최근 이라크에 있는 미국인들에게 잦은 보안경보를 보내고 있으며, 일주일에 약 두 차례는 민병대에 의한 납치 위험과 관련된 경보다.

지난 3월에는 미국 프리랜서 기자 셸리 키틀슨(Shelly Kittleson)이 바그다드 도심에서 납치됐다.

미국 관리들은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연계된 무장대원들이 그를 차량에 강제로 태워 납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키틀슨은 약 일주일 뒤 이라크 정부와 민병대 간 협상 끝에 풀려났다.

미국인 4,500명 숨지고 1조7천억달러 투입

이라크전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든 해외전쟁 가운데 하나다.

WSJ은 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약 4,500명의 미군이 사망했고 이라크인 희생자는 최대 약 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의 직접·간접 지출은 약 1조7천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쟁의 출발점이 됐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은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마지막 미군은 에르빌서 철수...패트리엇도 빼냈다

미군은 30일 이라크 북부 에르빌(Erbil)의 마지막 기지에서 장비와 병력을 철수했다.

WSJ에 따르면 미군은 철수에 앞서 에르빌 주변을 방어하던 패트리엇 방공체계도 이미 철수시켰다.

이 때문에 쿠르드 자치지역에서는 이란과 친이란 민병대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P도 미군의 철수와 방공망 제거 이후 쿠르드 지역에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모든 미국 군사·안보 활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군 철수가 미국의 이라크 안보관여가 완전히 끝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WSJ에 따르면 미 해병대 일부는 미국 대사관과 외교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남고, 이라크군이 보유한 미국산 F-16 전투기와 전차를 정비하는 민간 계약업체들도 계속 활동한다.

미 국방부 관계자도 미국의 공식 이라크 군사작전은 종료되지만 역내 정보·감시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이를 이라크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대규모 지상병력의 상시 주둔은 끝나지만 미국이 중동 전체에서 이라크 상황을 감시하고 개입할 능력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군대는 떠나도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남아

미국의 영향력은 군사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라크는 국가 예산의 약 90%를 원유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원유판매 대금은 오랫동안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개설된 이라크 중앙은행 계정을 통해 관리돼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구조는 2003년 미군 침공 직후 만들어졌으며 미군 철수 이후에도 유지된다.

미국은 달러 접근과 금융제재를 통해 이란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계속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군사적으로는 떠나더라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아니다.

이란과 친이란 민병대는 "미국의 패배" 주장

반대로 이란과 친이란 민병대들은 미군 철수를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로 선전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과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조직들은 23년에 걸친 미국의 군사주둔이 끝난 것을 미국의 전략적 패배이자 이라크 주권의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 내부에서는 다른 우려도 나온다.

미군이 사라진 뒤 이라크 국가기관이 ISIS 잔존세력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친이란 민병대를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특히 민병대의 무장해제 시한이 미군 철수와 동시에 지켜지지 못했다는 점은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운다.

이라크가 맞은 진짜 시험은 미군 철수 이후

이번 철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2003년 시작된 이라크 군사개입의 한 시대를 끝내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라크 입장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시험의 시작이다.

미군이 떠난 뒤 이라크 정부는 ISIS 잔존세력을 통제하고, 수만명에 달하는 민병대의 무기를 국가 지휘체계 아래 두면서, 동시에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알자이디 정부는 일부 민병대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단계적으로 무장해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보다 병력이 많은 무장조직을 강제로 해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라크 대테러부대(CTS)는 2024년 기준 약 1만4천명 규모로 추산돼 친이란 민병대 전체보다 병력이 적다.

전직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 빅토리아 테일러(Victoria Taylor)는 알자이디 총리가 불과 몇 달 안에 민병대를 무장해제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요구였다고 평가했다.

23년 전 미국이 들어왔고, 이제 이란의 영향력이 남았다

결국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남긴 가장 역설적인 결과는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의 권위주의 정권은 사라졌지만, 미국의 최대 중동 경쟁국인 이란의 영향력이 오히려 확대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에 들어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고, 2011년 철수했다가 ISIS 때문에 2014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2026년 다시 떠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친이란 무장세력들이 이라크 의회와 정부기관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일부는 미국 정부가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상태에서도 국가예산과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23년에 걸친 직접적인 군사주둔을 끝낸 2026년 9월30일은 따라서 이라크전쟁의 완전한 종결이라기보다 미국의 역할이 '주둔군'에서 역외 감시와 외교·경제적 영향력으로 바뀌는 시점에 가깝다.

그리고 미군이 떠난 자리에서 이라크 정부가 친이란 민병대와 ISIS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 이라크의 주권과 안정성을 가르는 핵심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