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발 텔아비브행 플라이두바이 여객기 조종석서 충돌...승객·승무원이 공격자 제압
30초도 안 돼 1만4천피트 이상 급강하...납치·불법개입 의미하는 비상코드 7500 발신
사우디 타부크 공항에 비상착륙...탑승객 전원 무사, 두 조종사는 병원 이송
네타냐후 "여객기 추락시키려 한 것으로 보여"...UAE·사우디 당국은 동기 조사 중
이스라엘로 향하던 플라이두바이(FlyDubai) 여객기에서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를 흉기로 공격한 뒤 항공기가 급격하게 추락하는 듯한 비행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객기는 불과 3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만4천피트 이상 급강하했고, 항공기 납치나 불법개입 상황에서 사용하는 비상코드까지 발신했다.
(동체 꼬리부분에 손상을 입은 The FlyDubai 항공. instagram/p/Dd6LRB_DSH7)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석으로 진입해 공격자를 제압한 뒤 다른 조종 인력이 항공기를 통제하면서 대형 참사는 피했다. 여객기는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타부크(Tabuk)에 비상착륙했으며 승객들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사건 직후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를 찌른 뒤 승객을 태운 항공기를 추락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플라이두바이와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 당국은 현재까지 공격의 구체적인 동기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플라이두바이는 사건 원인과 동기는 공식 조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며 섣부른 추측을 경계했다.
두바이 출발해 텔아비브 향하던 FZ1073편
사건이 발생한 항공기는 플라이두바이 FZ1073편으로, 9월29일 밤 두바이 국제공항을 출발해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종은 보잉 737 MAX 8이었다.
항공기는 출발 후 약 2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비행했지만 목적지에 접근하던 과정에서 조종석 안에서 두 조종사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발생했다.
플라이두바이는 공식적으로 이를 조종석에서 발생한 'altercation', 즉 물리적 충돌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당국과 탑승객 증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를 흉기로 공격했다. 로이터는 이스라엘 관리들을 인용해 공격자가 부기장이며 오만 국적자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30초도 안 돼 1만4천피트 추락
조종석에서 충돌이 발생한 직후 항공기는 정상적인 민항기 운항에서는 보기 어려운 급격한 고도변화를 보였다.
항공편 추적업체 플라이트레이더24(Flightradar24)에 따르면 FZ1073편은 짧은 시간 동안 고도가 극단적으로 오르내렸다.
특히 약 30초도 되지 않아 1만4천피트 이상 급강하했다.
이는 약 4.3㎞에 해당하는 고도다.
플라이트레이더24 역시 해당 항공기의 비행 데이터에서 극단적인 고도변화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항공기가 왜 이처럼 급격하게 하강했는지는 현재 조사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공격 조종사가 항공기를 추락시키려 했다는 근거로 보고 있지만, UAE와 사우디 수사당국이 아직 같은 결론을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다.
먼저 7700, 7분 뒤 7500
항공기의 비상신호도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FZ1073편은 오전 1시31분(미 동부시간) 트랜스폰더를 통해 'Squawk 7700'을 발신했다.
7700은 조종사가 항공관제기관에 일반적인 비상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릴 때 사용하는 국제 항공 비상코드다.
그런데 약 7분 뒤 비상코드가 7500으로 변경됐다.
7500은 일반적인 기체 이상이 아니라 항공기 운항에 대한 불법개입을 뜻한다. 항공기 납치나 승무원에 대한 강제행위 등 항공기의 안전한 운항이 외부 또는 내부 인물에 의해 위협받을 때 사용하는 코드다.
플라이트레이더24는 FZ1073편이 7700을 발신한 뒤 7500으로 바꿨다가 이후 다시 일반 비상코드인 7700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승객·승무원이 조종석으로 들어가 공격자 제압
항공기가 급강하하는 상황에서 일부 승객과 승무원이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WSJ이 확보한 탑승객 증언과 소셜미디어 영상에 따르면 기내에 있던 사람들이 조종석 안으로 진입해 공격자를 제압하고 조종석에서 끌어냈다.
탑승객으로 자신을 밝힌 이츠하크 리버(Itzhak Liber)는 기내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조종사 한 명이 흉기에 찔렸으며 탑승자들이 공격자를 조종석에서 끌어냈다고 말했다.
로이터도 승객들과 승무원이 공격자를 제압하면서 항공기 추락을 막았다는 이스라엘 측 발표를 전했다.
당시 항공기에는 업무를 위해 탑승하고 있던 플라이두바이 소속 다른 조종 인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이두바이는 이들이 항공기 통제권을 확보한 뒤 사우디아라비아 타부크 공항까지 안전하게 항공기를 운항했다고 밝혔다.
사우디 타부크 공항에 비상착륙
FZ1073편은 결국 목적지인 텔아비브로 가지 않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타부크 지역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착륙은 현지시간 기준 사건 발생 약 1시간여 뒤 이뤄졌다.
플라이두바이는 탑승객들이 모두 무사하며 인원도 전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공항 당국은 기장과 부기장 모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로이터도 두 조종사가 부상을 입었지만 승객 가운데 사망자나 중대한 부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모든 승객과 함께 비행기 추락시키려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건 발생 이후 이스라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 연설에서 훨씬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그는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를 찌른 뒤 "탑승자 모두와 함께 항공기를 추락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공격자가 사우디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고도 밝혔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Gvir)는 이를 '테러'로 규정하면서 약 180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현재 이스라엘 정부 측의 판단이다.
플라이두바이는 사건의 배후와 공격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로이터 역시 공격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테러'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아
따라서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확인된 것은 조종석에서 두 조종사 사이에 폭력적인 충돌이 있었고, 최소 한 명이 흉기에 찔렸으며, 항공기가 급격한 고도변화를 보인 뒤 7700과 7500 비상코드를 발신했다는 점이다.
또 승객과 승무원이 개입한 뒤 항공기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안전하게 착륙한 사실도 확인됐다.
반면 공격자가 정치적 또는 종교적 목적에서 행동했는지,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는지, 실제 항공기를 의도적으로 추락시키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공식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로이터는 이스라엘 당국이 사건을 잠재적인 테러 공격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동기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급강하 과정에서 꼬리 방향타 손상
항공기의 기체 자체도 손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WSJ에 따르면 초기 조사에 정통한 관계자는 비행기가 급격한 하강과 기동을 하는 과정에서 꼬리 부분의 방향타(rudder)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방향타는 항공기의 꼬리 부분에 장착돼 좌우 방향을 조정하는 핵심 비행제어 장치다.
민항기가 정상 운항 범위를 크게 벗어난 급격한 기동을 하면 기체 구조물에 강한 하중이 가해질 수 있다.
착륙 이후 촬영된 사진에서도 항공기 꼬리 부분의 손상이 확인됐다.
정확한 손상 원인과 기체가 받은 하중은 비행기록장치와 조종석음성기록장치 분석을 통해 규명될 전망이다.
사우디 당국이 조종사·승객 조사
사우디 당국은 항공기 착륙 직후 기체를 조사하고 승객과 승무원들을 상대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자국 관계자들을 사우디에 보내 조사에 참여하고 승객들을 이스라엘로 데려오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아직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없다.
로이터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 군용기가 직접 타부크로 들어와 승객들을 데려가겠다는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승객들의 후속 이동은 플라이두바이를 통해 진행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이번 사건은 UAE와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민항기가 사우디 영토에 비상착륙하면서 중동의 복잡한 외교관계까지 동시에 드러낸 셈이다.
UAE와 이스라엘, 항공보안 강화
이스라엘과 UAE 당국은 사건 이후 예방적 차원에서 관련 항공편의 보안조치를 강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플라이두바이는 2020년 UAE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두바이와 텔아비브를 연결하는 주요 항공사로 자리잡았다.
특히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후 가자전쟁으로 많은 외국 항공사들이 이스라엘 노선을 중단한 상황에서도 플라이두바이는 텔아비브 운항을 상당 기간 유지했다.
그 결과 두바이는 이스라엘 여행객들이 아시아와 다른 중동지역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국제항공 허브가 됐다.
737 MAX 자체의 기체 결함 사건은 아냐
이번 사건에 사용된 항공기는 보잉 737 MAX 8이지만 현재까지 기체 자체의 기술적 결함이 사고를 촉발했다는 정황은 없다.
플라이트레이더24와 항공사 발표, 탑승객 증언 등을 종합하면 비상상황은 조종석 안에서 발생한 폭력사건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737 MAX의 기체 안전성 문제와 연결할 근거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급격한 기동 과정에서 실제 기체 손상이 발생한 만큼 항공당국은 항공기의 비행제어 시스템과 구조적 손상 정도도 함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보안의 새로운 문제 제기
이번 사건은 기존 항공보안 체계가 주로 외부 승객의 조종석 침입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여객기 조종석 문은 외부에서 강제로 열기 어렵도록 크게 강화됐다.
그러나 위험 인물이 이미 조종석 안에 있는 조종사일 경우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특히 이번처럼 두 조종사 사이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정상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조종사가 순간적으로 사라질 경우, 객실 승무원이나 비번 조종사가 얼마나 빠르게 개입할 수 있는지가 승객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번 FZ1073편에서는 우연히 기내에 있던 다른 플라이두바이 조종 인력이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만4천피트 급강하에서 대형 참사 피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비행기록만 놓고 보면 FZ1073편은 매우 위험한 순간을 겪었다.
순항 중이던 여객기가 30초 이내에 1만4천피트 이상 급강하했고, 일반 비상코드 7700에 이어 불법개입을 알리는 7500 코드까지 발신됐다.
그럼에도 승객과 승무원이 공격자를 제압했고 다른 조종 인력이 통제권을 확보하면서 항공기는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고의적인 항공기 추락 시도로 보고 있지만 UAE와 사우디 당국의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핵심은 현재 단계에서 '테러범이 여객기를 추락시키려 했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종석 내부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수준의 폭력사태가 실제 항공기의 통제 상실로 이어질 뻔했고 탑승자들의 개입으로 대규모 참사를 피했다는 데 있다.
앞으로 조종석음성기록장치와 비행기록장치, 두 조종사의 진술 및 공격자의 신원과 통신기록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사건이 개인적인 충돌이었는지, 계획된 공격이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항공기를 추락시키려 했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