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장남, 1차 투표서 47.3%로 선두
룰라 대통령 44.8%...여론조사 뒤집은 우파 강세에 정치적 생존 걸린 결선
보우소나루 일가, 상·하원 선거에서도 잇단 승리...브라질 우파 세력 확대

치안·세금·재정정책 놓고 좌우 정면충돌...트럼프 행정부도 선거 변수로 등장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 상원의원이 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면서 오는 25일 치러지는 결선투표에서 브라질 정권의 향방을 놓고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게 됐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수감 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전 대통령의 장남이다.

브라질 대선 개표가 98% 진행된 4일 밤 현재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47.3%를 얻어 44.8%를 기록한 룰라 대통령을 앞섰다.

과반 득표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두 후보는 오는 10월25일 결선투표에서 다시 맞붙는다.

브라질 대선
(브라질 대선에서 현 룰라 대통령을 제치고 보우소나루가 1위 차지. AI)

이번 결과는 좌파 진영을 대표하는 룰라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타격으로 평가된다.

특히 선거 직전까지 주요 여론조사에서는 룰라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보우소나루가 1위를 차지하면서 브라질 사회에서 우파 지지세가 예상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론조사 뒤집은 보우소나루

선거 전날 발표된 다타폴랴(Datafolha) 조사에서는 룰라가 45%, 보우소나루가 42%를 기록해 룰라의 우세가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 투표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47.3%를 얻었고 룰라는 44.8%에 그쳤다.

다른 우파 후보들이 얻은 표까지 합치면 약 5%에 달해, 이 표가 결선에서 어느 쪽으로 이동할지가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동시에 치러진 의회 및 지방선거에서도 보수 진영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서 브라질 정치의 우경화 흐름이 다시 확인됐다.

"브라질은 이제 충분히 겪었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지지자들에게 "브라질은 이제 충분히 겪었다"며 룰라의 노동자당(PT)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노동자당 시대의 끝"이라고 선언하면서 자신을 브라질 정치의 새로운 우파 지도자로 부각했다.

브라질에서 우파가 최근 수년 사이 세력을 확대해온 배경에는 높은 강력범죄율에 대한 불만과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세금과 정부지출에 대한 기업과 중산층의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경제운영과 재정지출을 둘러싸고 좌파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우파 지지층이 더욱 결집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우소나루 일가 선거에서 대거 승리

이번 선거에서는 보우소나루 가족 전체가 정치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보우소나루(Michelle Bolsonaro)는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또 다른 아들 카를루스 보우소나루(Carlos Bolsonaro) 역시 상원 진출에 성공했다.

막내아들 자이르 헤난 보우소나루(Jair Renan Bolsonaro)와 자이르 전 대통령의 형제 헤나투 보우소나루(Renato Bolsonaro)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자신은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지만 그의 가족들이 의회 곳곳에 진출하면서 보우소나루 정치세력의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된 셈이다.

룰라 "민주주의가 준 교훈"

룰라 대통령은 예상보다 저조한 1차 투표 결과를 "민주주의가 준 교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결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80세인 룰라는 이번 선거가 사실상 자신의 마지막 대선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왔다.

따라서 25일 결선은 룰라의 정치생명뿐 아니라 브라질 좌파세력 전체의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 선거가 될 전망이다.

정책보다 인신공격 난무한 선거

이번 브라질 대선은 민주화 이후 가장 거친 선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룰라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모두 주요 TV 토론에 불참하면서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논쟁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대신 선거운동은 상대 후보를 겨냥한 개인적 공격과 배신, 소아성애, 신성모독 등을 둘러싼 비난으로 얼룩졌다.

브라질 정치권 전체를 뒤흔든 대형 은행 스캔들도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됐다.

이 사건에는 좌파와 우파 양 진영 인사들이 모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을 키웠다.

트럼프도 브라질 대선의 주요 변수

이번 선거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외부 인물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미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다시 확대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콜롬비아에 이르기까지 남미 여러 국가에서 우파 정부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브라질은 우루과이와 함께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룰라와 그의 지지세력은 트럼프 행정부가 브라질 대선에 개입해 우파의 정권 복귀를 지원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룰라 측 "미국이 선거 개입"

룰라 진영은 미국 정부가 브라질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브라질에 정부 관계자를 파견해 이른바 '선거의 공정성'을 논의하려 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선거를 이틀 앞둔 2일에는 미국 정부가 보안을 이유로 브라질 주재 미국대사관과 영사관의 영사업무를 일시 중단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과거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전력이 있으며 최근에는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백악관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브라질 좌파 진영에서는 미국이 보우소나루 진영의 정권 복귀를 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룰라와 보우소나루 가문의 '복수전'

브라질 대선은 단순한 좌우 정권교체 경쟁을 넘어 룰라와 보우소나루 두 정치세력 간의 오랜 개인적·정치적 대결 성격도 강하다.

2018년 대선 당시 룰라는 부패혐의로 수감돼 출마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룰라는 2019년 석방됐고 이후 대법원이 그의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 관할권이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유죄판결이 무효화됐다.

브라질 대법원은 이후 사건을 담당했던 세르지우 모루(Sergio Moro) 당시 판사가 편향됐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룰라는 이후 정치적으로 부활해 2022년 대선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꺾고 2023년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수감

현재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출마자격을 잃었고 2022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쿠데타를 계획한 혐의로 27년형을 선고받아 자택에서 복역 중이다.

검찰은 보우소나루가 '녹색과 노란색 단검(Green and Yellow Dagger)'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룰라와 다른 정부 고위인사 암살계획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보우소나루는 쿠데타 계획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재판을 주도한 알레샨드리 지 모라이스(Alexandre de Moraes) 대법관 역시 현재 별도의 조사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한편 과거 룰라를 수사했던 세르지우 모루 전 판사는 이번 선거에서 주지사에 당선됐다.

브라질 정치가 수년 동안 이어진 룰라와 보우소나루 진영의 사법·정치적 충돌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에 지친 유권자도 증가

그러나 모든 브라질 유권자가 두 진영의 대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업체 Quaest의 최근 조사에서는 유권자의 23%가 이번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또 10%는 무효표 또는 백지투표를 하거나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브라질에서는 대부분의 성인에게 투표가 의무이지만 불참에 따른 벌금은 시내버스 요금보다도 낮다.

정치적 무관심은 특히 저소득층 여성에게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룰라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저소득층 여성은 전통적으로 노동자당과 룰라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저소득층 여성 가운데 약 29%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거나 무효·백지표를 던졌다.

룰라 "복지 확대"...보우소나루 "정부 축소"

두 후보의 정책 방향은 크게 다르다.

룰라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복지 프로그램의 지원금을 늘리고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에 새로운 채무경감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정부지출을 크게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최소 10개 정부부처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하고 새로운 정부지출 상한제를 도입해 악화된 브라질 재정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범죄 대응에서도 극명한 차이

치안정책 역시 두 후보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강력한 마약조직을 '마약 테러조직(narcoterrorist organizations)'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일부 범죄조직에 적용한 방식과 유사하다.

그는 또 형사책임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16세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Nayib Bukele) 대통령이 조직범죄 대응을 위해 건설한 초대형 교도소를 모델로 삼아 브라질에 최고보안 교도소 5곳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치안과 범죄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강경 대응을 약속하면서 우파표를 결집시키겠다는 전략이다.

25일 결선, 다른 우파 후보 5%가 최대 변수

1차 투표 결과만 놓고 보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섰다.

그는 47.3%를 확보해 과반까지 약 2.7%포인트만 남겨두고 있다.

룰라는 44.8%로 뒤를 쫓고 있다.

특히 1차 투표에서 다른 우파 후보들이 얻은 표가 약 5%에 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들 유권자의 상당수가 결선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선택한다면 우파가 브라질 정권을 다시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룰라가 정치에 실망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저소득층과 여성층을 결선투표장으로 다시 끌어낼 경우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룰라-보우소나루 시대 마지막 승부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거가 브라질 정치를 장기간 지배해온 '룰라 대 보우소나루' 시대의 마지막 대결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룰라는 이미 80세이며 이번이 마지막 대선이라고 시사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해 향후 석방되더라도 당분간 직접 선거에 출마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낸 정치적 분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파울루의 컨설팅회사 텐덴시아스(Tendências)의 정치학자 하파엘 코르테스(Rafael Cortez)는 브라질 사회의 정치적 극단화가 단순히 정치지도자들의 행동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브라질 사회가 경제적·인종적·성별 불평등 등 매우 깊은 구조적 격차를 안고 있다며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 역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오는 25일 결선투표는 단순히 룰라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선거를 넘어,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이 복지확대와 좌파 정부의 연장을 선택할지, 아니면 재정긴축과 강경 치안정책을 앞세운 우파 정부로 다시 방향을 돌릴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