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톤 즉시 공급·11월 50만톤·이어 100만톤"...러시아 정유시설 상황 따라 추가 300만톤
美 재무부, 러시아산 디젤 거래 허용하는 임시 제재 면제 즉각 발급
트럼프 "호르무즈 완전 통제와 러시아 에너지 합의로 디젤 가격 기록적으로 빠르게 하락할 것"

미국 디젤 가격 갤런당 6달러 넘어...농민·목장주·트럭 운전자 부담 완화 최우선
중동전쟁과 글로벌 정제능력 부족 속 공급 확대 총력...유럽 비축유 방출·세금 감면에 러시아 물량까지 추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산 디젤을 미국과 세계시장에 대규모로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9일 발표했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우선 30만톤 이상을 즉시 시장에 공급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수백만톤을 추가 공급할 것이라며 최근 급등한 미국 디젤 가격을 빠르게 낮추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푸틴과 디젤 공급 합의 연합뉴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푸틴이 "즉시 30만톤 이상의 디젤을 미국과 세계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며 11월 중 50만톤, 그 직후 추가로 100만톤을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 정유시설의 가동상태에 따라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300만톤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면서, 발표된 물량이 모두 현실화될 경우 총 공급규모는 약 480만톤에 이를 수 있다. 로이터도 트럼프가 푸틴과의 회담을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며 이 같은 공급계획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디젤 가격, 기록적으로 빠르게 내려갈 것"

트럼프가 이번 합의를 발표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미국 내 디젤 가격이다. 그는 러시아산 공급 확대와 미국이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함께 언급하며 "디젤 가격은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기록적인 수준으로, 그리고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는 농민과 목장주, 트럭 운전자들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이들의 연료비 부담을 낮추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농업과 육상운송업은 다른 산업보다 디젤 사용량이 많아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다.

미국 디젤 가격은 중동전쟁과 글로벌 정유제품 공급 부족이 겹치면서 급등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디젤 가격은 최근 갤런당 약 6.28달러까지 올라 전쟁 이전과 비교해 약 70% 상승했다. 휘발유보다 디젤 가격 상승폭이 훨씬 커지면서 농업·물류업계를 중심으로 비용 부담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美 재무부, 러시아산 디젤 제재 즉시 완화

트럼프의 발표 직후 미 재무부도 실제 거래가 가능하도록 제재조치를 조정했다.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러시아산 디젤이 세계시장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임시 일반허가를 발급한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 허가는 러시아산 디젤 거래를 내년 4월7일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적용해온 제재에 상당한 예외를 인정하는 조치다.

미국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의 직접 수입을 금지하고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을 제한하기 위한 광범위한 제재를 시행해왔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의 디젤 공급난과 가격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에너지 정책에도 일시적인 예외를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0만톤 시작으로 최종 480만톤 가능

트럼프가 밝힌 공급계획은 여러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물량인 30만톤 이상은 즉시 미국과 세계시장에 공급된다. 이어 러시아는 11월에 50만톤을 추가 공급하고 그 직후 다시 100만톤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에 러시아 정유시설의 생산상태가 허용할 경우 300만톤을 추가로 공급한다는 것이 트럼프가 밝힌 합의 내용이다. 모든 물량이 계획대로 공급될 경우 전체 물량은 480만톤을 넘어설 수 있다. AP 역시 러시아가 단계적으로 최대 약 480만톤의 디젤을 시장에 추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석유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상당한 규모의 디젤과 정제유를 수출해온 국가다. 따라서 러시아의 대규모 디젤이 다시 국제시장에 유입될 경우 미국이 직접 수입하는 물량뿐 아니라 세계시장 전체 공급량을 늘려 국제 디젤 가격에 하락 압력을 줄 수 있다.

트럼프, 푸틴과 직접 협상

이번 발표는 트럼프가 푸틴과 직접 통화한 뒤 나왔다. 푸틴의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Kirill Dmitriev)도 두 정상의 통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히며 미국과 러시아의 디젤·에너지 협력이 세계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러시아에 강한 제재를 가하면서도 에너지시장과 전쟁 종식 협상에서는 푸틴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을 유지해왔다. 이번 조치는 지정학적 문제와 미국 국내 에너지 가격을 분리해 다루면서 필요한 경우 제재에도 예외를 둘 수 있다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을 보여준다.

불과 지난달 트럼프는 러시아와 이란을 겨냥한 강력한 추가 제재에 서명했지만, 대통령은 일부 조항을 면제하거나 집행을 유예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러시아산 디젤 허용도 글로벌 연료가격 안정이라는 목적에 따라 그 권한을 사용한 사례가 됐다.

중동전쟁이 미국 디젤 시장 강타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까지 선택한 가장 큰 배경은 최근의 디젤 공급난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정제제품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 원유가격뿐 아니라 디젤과 항공유 같은 정제제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

특히 원유 자체보다 정제제품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미국 내 디젤 가격은 휘발유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중동의 정유시설 피해와 일부 시설의 가동중단, 선박 운송 차질이 겹치면서 세계 디젤시장의 공급여력이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몇 주 동안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이미 정제된 디젤을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추가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트럼프 "호르무즈 완전 통제"도 강조

트럼프는 러시아산 디젤 공급 합의를 발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상황도 다시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호르무즈를 "완전히 통제(TOTAL CONTROL)"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에너지 공급 확대와 함께 두 요인이 국제 디젤 가격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최근에도 이란의 힘이 크게 약화되고 있으며 호르무즈를 통한 에너지 수송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그의 판단은 미국이 이란의 원유수출은 막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쿠웨이트 등 다른 걸프 산유국들의 원유와 정제제품은 계속 세계시장에 공급하도록 만드는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산 디젤까지 국제시장에 추가되면 중동 공급차질로 생긴 부족분을 더 빠르게 메울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계산으로 보인다.

이미 유럽에 1억배럴 방출 요청

러시아 합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내놓은 일련의 디젤 가격 안정대책 가운데 하나다.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는 유럽과 협상을 통해 향후 4개월 동안 약 1억배럴의 정제 디젤을 전략비축 물량에서 시장에 방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공급이 더해지면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시장에 추가하려는 디젤 규모는 상당히 커진다.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에서만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유럽, 러시아, 중동 등 가능한 모든 공급원을 동시에 활용해 시장에 물량을 빠르게 추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빨간 디젤' 고속도로 사용도 허용

트럼프는 해외 공급 확대와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도 긴급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5일 그는 농기계와 건설장비 등에 사용되는 이른바 '적색 염색 디젤(red-dyed diesel)'을 일반 도로 차량에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디젤은 기본적으로 일반 차량용 디젤과 같은 연료지만 농업·건설 등 비도로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연방 도로세가 붙지 않는다. 연방정부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붉은색 염료를 첨가해 판매해왔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올해 말까지 이 연료를 일반 트럭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갤런당 24.4센트의 연방 디젤 소비세 납부도 연기하도록 했다. 백악관은 주정부가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경우 대형 트럭이 한 번 주유할 때 100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외 공급·세금 감면·국내 생산 확대 '3중 전략'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정책을 종합하면 디젤 가격을 낮추기 위한 세 가지 방향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첫째는 러시아와 유럽을 포함한 해외에서 정제된 디젤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금과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해 기존 미국 내 연료재고를 시장에 더 많이 풀어놓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국 정유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활용해 국내 에너지 생산과 정유능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신규 정유공장을 처음부터 건설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기존 시설의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연방대출이나 지급보증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디젤 가격상승을 단순한 단기 에너지 문제라기보다 농업과 물류, 식품가격, 인플레이션까지 연결되는 경제문제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농민·트럭 운전자 비용이 물가로 전가

트럼프가 농민과 목장주, 트럭 운전자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도 디젤 가격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장거리 화물 대부분이 디젤 트럭으로 운송되고 있으며 농기계와 건설장비 역시 디젤 의존도가 높다.

연료비가 급등하면 운송회사가 이를 운임에 반영하고, 결국 식품과 생활용품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농업에서는 파종과 수확, 농산물 운송에 디젤이 대량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가격상승이 농가 소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트럼프는 지난 5일 긴급 디젤 대책을 발표하면서 농민과 트럭 운전자를 "미국의 생활방식을 지탱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백악관도 글로벌 디젤 공급부족이 이들 산업에 특히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제재와 에너지 가격 사이에서 정책 조정

러시아산 디젤 허용은 미국의 대러시아 정책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변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을 차단해 전쟁자금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제재의 주요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에는 중동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는 문제도 동시에 들어와 있다. 러시아산 디젤을 국제시장에 공급하도록 허용하면 러시아에는 추가적인 수출기회가 생기지만, 반대로 전 세계 디젤 공급이 증가하면서 미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트럼프는 후자를 선택했다. 특히 미국 농민과 트럭 운전자의 부담을 낮추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더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도 공급 확대할 이유 있어

러시아 입장에서도 이번 합의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러시아의 정유산업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고 한때 자국 내 연료 공급을 보호하기 위해 디젤 수출을 제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유시설 가동이 회복될 경우 해외수출을 다시 확대하면 외화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 트럼프가 추가 300만톤의 공급에 대해 "러시아 디젤 정유시설의 상태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실제 정유능력 회복 정도가 공급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AP는 러시아가 최근 몇 달 동안 자체 디젤 공급 문제로 수출을 제한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가 러시아 에너지시장에도 상당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반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러시아의 디젤 수출을 다시 허용하는 데 반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을 통해 얻는 수입이 결국 전쟁을 지속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P와 Axios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러시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기존 제재정책을 전면적으로 폐기한다기보다 디젤이라는 특정 에너지 상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예외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재무부의 일반허가 역시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시장도 즉각 반응

러시아산 디젤 추가 공급 발표는 에너지시장에도 즉각 영향을 줬다. 시장 보도에 따르면 미국 초저유황 디젤 가격은 트럼프의 발표 이후 약 3% 하락했다. 반면 국제 원유가격은 상대적으로 작은 폭으로 움직였다.

이는 현재 시장의 문제가 원유 자체의 절대적인 부족만이 아니라 원유를 디젤과 휘발유 등으로 가공할 수 있는 글로벌 정유능력과 특정 정제제품의 공급 부족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세계적인 디젤 수출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실제로 수백만톤의 물량이 단기간에 시장에 추가된다면 정제제품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중간선거 앞두고 '에너지 가격 낮추기' 총력전

이번 발표는 11월3일 미국 중간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나왔다. 최근 유가와 디젤 가격 상승으로 생활비 문제가 다시 미국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한 조치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세금이 면제된 적색 디젤을 일반 차량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유럽에는 정제유 비축분 방출을 요청했다. 여기에 러시아산 디젤까지 공급망에 다시 포함시킨 것이다.

트럼프는 휘발유 가격 역시 앞으로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는 현재 갤런당 약 4.37달러인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향후 1.85~1.95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호르무즈와 러시아, 두 축으로 가격 잡겠다"

트럼프가 이번 발표에서 러시아와 호르무즈를 함께 언급한 것은 현재 그의 에너지 전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중동에서는 미국이 호르무즈 항로를 안정시키면서 사우디와 UAE 등 걸프 산유국의 원유수출을 회복시키고, 유럽에서는 비축 디젤을 방출시키며, 러시아에서는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해 정제된 디젤을 직접 국제시장에 추가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는 적색 디젤 사용제한과 세금을 완화하고 정유능력을 확대한다. 공급과 세금, 규제, 외교협상을 모두 동원해 디젤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푸틴과의 합의를 그 전략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러시아의 첫 30만톤 공급은 시작일 뿐이며 11월 50만톤, 이어 100만톤, 러시아 정유시설이 허용할 경우 추가 300만톤까지 세계시장에 나오게 된다.

트럼프는 이 물량과 호르무즈 원유수송 정상화가 결합하면 미국의 디젤 가격이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번 결정의 목표를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의 농민과 목장주, 트럭 운전자들이 지불하는 연료비를 낮추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