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양측 합의, 즉시 발효"...러시아는 공식 동의 확인하지 않아
젤렌스키 "우리는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 멈췄다...푸틴은 우크라이나 계속 공격"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대방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는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공식 확인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면서 휴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11일 자신의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즉시 발효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에너지 휴전이 있다"며 "양측이 합의했다. 이를 위반하지 말라"고 밝혔다. 그러나 발표 직후에도 모스크바는 합의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으며, 백악관 관계자 역시 당시 러시아의 최종 동의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전면 휴전' 아닌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

트럼프가 발표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체를 중단하는 전면적인 휴전이 아니다. 정유시설과 발전소, 전력망 등 양국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제한적인 휴전 구상이다.

다만 휴전 범위조차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Axios에 따르면 백악관이 초기 단계에서 논의한 방안은 양측이 상대방의 정유시설을 공격하지 않는 이른바 'refinery-for-refinery' 방식이었으며, 이후 발전소와 전력망까지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에너지 휴전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발표한 '에너지 휴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이 실제로 합의한 내용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젤렌스키 "트럼프 발표 믿고 러시아 공격 중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트럼프의 휴전 구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으며 실제로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자료화면)

젤렌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에너지 휴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러시아 영토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가스시설과 전력 인프라 등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의 공격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푸틴의 답변"이라고 표현하며, 러시아가 에너지 휴전을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Reuters 역시 12일 러시아군이 트럼프의 발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으며, 우크라이나는 같은 기간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자제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휴전 합의 공식 확인 안 해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실제로 트럼프의 제안에 동의했는지 여부다.

크렘린궁은 트럼프의 발표 직후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을 둘러싼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지만, 트럼프가 발표한 것과 같은 즉각적인 상호 휴전이 확정됐다는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실제 전장에서도 휴전이 실행되고 있다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이 키이우 발전시설을 공격해 전기와 수도 공급에 차질을 빚게 했으며 하르키우의 화력발전소도 공격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시에니크(Denys Sienik) 주미 대사대리는 지난 일주일 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발전 및 송전시설을 200차례 이상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러시아가 멈추면 우리도 멈춘다"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휴전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상호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에너지 휴전이라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지 않고 우리 역시 그들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러시아가 우리의 에너지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들의 에너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일방적으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만 중단하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발전소와 전력망을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만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는 것은 균형 잡힌 휴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트럼프,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 요구

트럼프가 에너지 휴전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문제가 있다.

트럼프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러시아의 석유제품 생산과 수출을 줄여 국제 디젤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이란 전쟁으로 중동지역의 에너지 공급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미국의 디젤과 휘발유 가격이 정치적 부담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러시아와 별도의 디젤 공급 합의도 발표했다. Reuters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산 디젤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러시아가 즉시 30만 톤 이상을 공급한 뒤 추가로 약 150만 톤을 시장에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젤렌스키 "디젤 가격 핵심 원인은 호르무즈"

젤렌스키는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미국 디젤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는 트럼프 측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는 "디젤 가격이 우리가 러시아의 디젤 시설을 공격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며 가격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 호르무즈해협의 통항 차질을 지목했다.

에너지 전문가들 역시 러시아산 디젤 추가 공급만으로 현재 국제시장의 공급 부족을 크게 완화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동 공급 차질과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감소 등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디젤 거래도 미국 정치권 논란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제재를 완화해 러시아산 에너지를 구매할 경우 모스크바의 전쟁자금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트럼프 측과 일부 지지자들은 국제 연료가격을 낮추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면 에너지 문제를 협상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러시아산 디젤 거래와 에너지 휴전 구상은 서로 연결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일부 허용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과 전쟁 협상을 끌어내려는 구상이지만, 현재까지 러시아가 이에 상응하는 양보를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트럼프 발표와 실제 휴전 사이 간극

이번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양측이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러시아의 동의가 확보됐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가 먼저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러시아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일단 자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휴전에 들어갔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보다 정확하게는 트럼프가 양측의 에너지 휴전 합의를 발표했고 우크라이나는 조건부로 이를 수용했지만, 러시아는 공식적인 합의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푸틴이 움직이느냐가 관건

에너지 휴전이 실제 전쟁 완화로 이어지려면 결국 러시아의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

젤렌스키는 "우리는 이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싶다"며 "양측의 휴전은 매우 중요한 첫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공격을 계속한다면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정유시설을 다시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발표가 실제 휴전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지난 9월과 마찬가지로 선언에 그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에너지 휴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합의해 전장에서 이를 실행하고 있다고 볼 단계에는 아직 이르며, 특히 푸틴이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을 명확하게 받아들이느냐가 이번 휴전 구상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