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시설·국경 방어 강화하고 미사일·드론 전력 재건...민간인 군사훈련도 확대
"미국 다시 공격하면 걸프 동맹국까지 타격"...사우디 석유시설·UAE·데이터센터도 위협

이란이 미국의 추가 군사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핵시설과 주요 군사거점을 강화하고 미사일·드론 전력을 재건하는 한편, 국민들을 다시 전쟁 분위기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란 지도부는 미국이 11월 중간선거 이후 다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과 걸프지역 동맹국에 대한 보복 수위를 크게 높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란 관리들은 공개 발언뿐 아니라 주변국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접촉에서도 미국이 다시 공격할 경우 중동 전역에서 추가적인 확전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핵시설 주변 방어 강화..."지상 침투 막는다"

최근 위성사진에서는 이란이 핵시설과 국경지역 등 민감한 시설의 방어능력을 강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가 Vantor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란은 지난달 픽액스 마운틴(Pickaxe Mountain)과 나탄즈(Natanz) 핵시설 주변에 임시 흙벽과 둔덕 등 수동적 방어시설을 새로 설치했다.

이러한 시설은 공습 자체를 막기보다는 지상군의 침투나 특수작전이 이뤄질 경우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됐다.

이란 곡괭이산
(이란 곡괭이산 위성사진)

이란은 이 밖에도 핵시설과 보안 관련 지하시설의 방호 수준을 높이고 있다. 공항과 항만, 발전소 등 주요 기반시설에는 방공호와 비상물자를 설치해 전시에도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이란 당국은 밝혔다.

"미국 다시 공격하면 UAE·사우디도 타격"

이란은 군사적 억지력을 높이기 위해 보복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위협도 강화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이란 관리들은 미국이 다시 공격할 경우 이란군이 주변국 영토에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란의 최고 국가안보 관계자인 모흐센 레자에이(Mohsen Rezaei)는 11일 이란이 아랍에미리트(UAE)를 공격할 수 있으며 중동지역의 데이터센터와 인터넷 해저케이블 등도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아랍권 관계자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시설 역시 향후 전쟁이 재개될 경우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우디가 이미 예멘의 이란 지원 후티 반군으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위협이다. 후티는 지난 주말 리야드 국제공항을 미사일로 공격해 최소 13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미국도 항모·해병대 증파 준비

미국 역시 이란과의 전투가 재개될 가능성에 대비해 중동지역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군은 세 번째 항공모함 전단과 추가 해병원정대를 중동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미 국방부는 역내 미군기지에 추가 방공장비와 탄약을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지난주 11월 3일 중간선거 이전에는 이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이란의 픽액스 마운틴 핵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도 미군이 새로운 공격에 대비한 여러 군사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7개월째 교착...양측 모두 "싸울 준비"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인 군사충돌이 시작된 지 7개월이 넘었지만 어느 쪽도 현재의 대치를 끝낼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동시에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상선의 안전운항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 상선 공격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 왕립해군과 연계된 영국 해사무역작전국(UKMTO)에 따르면 지난 주말 최소 3척의 상선이 호르무즈해협과 주변 해역에서 공격을 받았다.

11일에는 오만 인근 해상에서 UAE 유조선 페트로 돌핀(Petro Dolphin)이 드론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으며 인도인 선원 2명이 실종됐다.

"미 군함 침몰시키고 승조원 사살할 수도"

이란은 미국과의 전투가 재개될 경우 미군에 대한 공격 수위도 이전보다 높이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중재자들에게 중동에 배치된 미국 군함을 침몰시키고 미군 승조원을 사살하는 시도까지 포함해 미군을 보다 공격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 9월 이란 미사일은 중동 해역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군함에 상당히 가까이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는 지난주 영국의 한 군사기지에 배치돼 있던 B-1 폭격기 12대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란혁명수비대가 해당 기지를 드론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7월 이후 미사일·드론 공장 복구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인 전투는 지난 7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추가공격 계획을 중단한 이후 대부분 멈춘 상태다.

당시 미국은 중동 전역에 배치된 시설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미사일 요격탄 재고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이 기간을 이용해 미사일과 드론 생산시설을 복구하고 무기 비축량을 다시 늘리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는 지난 9월 초 이란의 군수산업 재건 노력을 공개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부 공급망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민간인에게 대공미사일·저격 훈련까지

이란 내부에서는 국민들을 다시 전쟁에 대비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다.

테헤란 곳곳에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휴대용 대공미사일과 저격소총 사용법을 교육하는 훈련과정을 홍보하는 대형 광고판이 등장했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지난달 여성들로 구성된 첫 특공대를 훈련했다고 발표했다.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지 민병대 정예조직인 파테힌(Fatehin)이 공개한 영상에는 여성들이 게릴라전과 총기 사용, 드론 조종 등을 훈련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란 북동부 사브제바르에서는 혁명수비대 소속 병력이 유치원을 방문해 올해 초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들이 무력화했다고 주장하는 미국 토마호크 미사일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친정부 집회도 전국으로 확대

이란 국영매체는 최근 친정부 집회와 군사 관련 행사를 거의 매일 방송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집회 참가자 규모도 최근 몇 주 동안 커지고 있으며 개최 지역도 확대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한 강경파 성직자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결국 이란이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교가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란에는 싸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다.

경제난 속 '전시체제' 활용하는 이란

이란의 공격적인 전쟁 준비에는 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제재를 강화하고 항공사들에 이란 운항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면서 이란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해외와의 교통과 금융거래가 제한되면서 사실상 경제적 봉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런던 채텀하우스의 중동 담당 책임자 사남 바킬(Sanam Vakil)은 "외교와 경제, 정치 모든 분야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전시체제는 현재 이란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새로운 전쟁이 오히려 이란 정권이 현재의 정치·경제적 막다른 상황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방공능력은 여전히 취약

그러나 이란이 강경한 위협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미국의 첨단 공군력에 맞설 실제 방어능력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란은 첨단 전투기와 고고도 폭격기, 순항미사일을 이용한 미국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능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직접적인 방어보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 감당해야 할 피해를 크게 만들겠다는 위협을 통해 공격 자체를 억제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 석유시설과 UAE, 데이터센터, 해저 인터넷 케이블, 미군기지와 군함까지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도 이런 억제전략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억지와 실제 전쟁 준비 동시에"

미국과 이란 모두 현재의 휴지기를 평화를 위한 시간보다는 다음 충돌에 대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해병대, 방공장비를 추가 배치하고 있으며 이란은 핵시설의 방호를 강화하고 미사일과 드론 전력을 다시 확충하고 있다.

이란은 동시에 민간인 군사훈련과 친정부 집회를 확대하며 국내적으로도 장기전 대비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워싱턴의 민주주의수호재단(Foundation for Defense of Democracies) 이란 프로그램 책임자인 베남 벤 탈레블루(Behnam Ben Taleblu)는 "이란 정권은 말과 행동 모두에서 다음 전쟁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미국의 공격을 막기 위한 억지전략이면서 동시에 실제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경우를 대비한 전쟁계획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