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I 전년 대비 3.7% 상승...시장 예상 3.6% 웃돌아
근원물가도 2.6%로 예상 상회...월가, 10월 금리 인상 가능성 50%로 높여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7%로 높아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전쟁 이후 급등한 휘발유와 난방유 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지만, 에너지를 제외한 상품과 서비스 가격도 함께 오르면서 물가가 일시적인 에너지 충격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상승
(미국의 9월 물가 지수 3.7%)

미 노동부는 14일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8월의 3.4%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조사한 경제학자들의 예상치 3.6%도 웃돌았다.

근원물가도 예상보다 높아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6% 상승했다. 시장 예상치는 2.5%였다.

전월 대비로도 근원물가는 0.3% 상승해 시장 예상치 0.2%를 넘어섰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다른 상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린지 피에그자(Lindsey Piegza) 스티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인플레이션은 위험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다"고 평가했다.

물가 3.7%, 임금 상승률 3.0% 앞질러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임금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9월 평균 시간당 임금은 전년 대비 3.0% 상승하는 데 그쳤다. 물가는 같은 기간 3.7% 올라 6개월 연속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웃돌았다.

이는 많은 미국 가계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명목상 임금은 오르고 있지만 실제 구매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높은 생활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권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5년 넘게 이어진 높은 물가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이러한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휘발유 한 달 새 9.1% 급등

9월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였다.

휘발유 가격은 전월 대비 9.1% 급등했다. 8월 상승률 3.9%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전년과 비교하면 휘발유 가격은 34% 올랐다.

난방유 가격은 지난해 9월보다 무려 74% 상승했다. 국제유가는 2월 말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급등세를 이어오고 있다.

높은 연료비는 운송 서비스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9월 운송 서비스 가격은 전월보다 0.6% 올라 8월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항공료 22% 급등

에너지 가격 상승의 파급효과는 항공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항공료는 전년 대비 22% 급등했다. 항공산업은 연료비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유가 상승이 비교적 빠르게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된다.

중고 승용차와 트럭 가격도 전월 대비 0.7% 상승했다. 8월의 0.4%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다만 중고차 가격은 전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석유화학 원료 사용 비중이 높은 의류와 장난감 가격도 상승했다.

식품은 보합...그러나 운송비 전이 여부 주목

9월 식품 가격은 전월 대비 변동이 없었다. 8월에는 0.1% 상승했다.

그러나 전년과 비교하면 식품 가격은 2.5% 올랐다.

경제학자들은 높은 운송비가 육류와 유제품 등 식료품 가격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연료비 상승이 물류비를 끌어올리면 생산업체와 유통업체가 결국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만의 문제 아니다"

이번 물가지표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에너지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은 품목에서도 가격 상승세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새뮤얼 톰스(Samuel Tombs)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란 전쟁과 에너지 공급 차질이 단순한 일회성 충격에 그치지 않고 일반 상품과 서비스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구조로 변할 경우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장기간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

피에그자는 "전쟁이 시작된 지 이미 7개월이 지난 만큼 이는 이제 장기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인플레이션 기대도 상승

소비자들의 향후 물가 전망도 악화되고 있다.

미시간대의 최근 소비자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향후 1년간 물가가 4.7%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달의 4.6%보다 높아졌다.

5년 후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3.4%에서 3.5%로 상승했다.

연준이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이러한 기대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소비자들이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미리 상품을 구매하려 할 수 있고, 이는 수요를 더욱 끌어올려 실제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월가, 10월 금리 인상 가능성 22%→50%

이번 물가지표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정책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연준은 최근 10월 말 회의에서는 금리를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그러나 예상보다 높은 CPI가 발표되면서 월가에서는 연준이 당장 이번 달 금리를 다시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빠르게 확대됐다.

금리선물 시장에서 반영된 10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CPI 발표 전 약 22%에서 발표 후 약 50%까지 높아졌다.

연준은 지난달 3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연준 고민은 '얼마나 더 올려야 하나'

당장의 문제는 10월 회의에서 금리를 다시 올릴지 여부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최종적으로 금리를 얼마나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는지다.

이는 높은 에너지 가격과 AI 투자 붐에서 발생한 비용 상승이 미국 경제 전반으로 얼마나 확산되는지에 달려 있다.

에너지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뒤 다시 내려간다면 연준이 금리를 크게 추가 인상할 필요는 줄어든다. 반대로 에너지발 비용 상승이 임금과 상품, 서비스 가격으로 계속 전이된다면 보다 강력한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

소비는 여전히 견조

높은 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 소비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낮은 실업률과 높은 주가에 힘입어 가계는 물가 상승에도 소비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 주요 은행 경영진들도 이번 주 실적 발표에서 높은 금리에도 소비자와 기업의 대출과 지출 의욕이 크게 약화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8월 미국 소비지출은 물가 영향을 제외하고도 전년보다 2.6%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계속 지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기업 역시 원가 상승을 소비자 가격에 비교적 쉽게 전가할 수 있다.

"결국 공급 문제"

리처드 무디(Richard Moody) 리전스 파이낸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물가 상승의 핵심 원인을 수요보다 공급 측면에서 찾았다.

호르무즈해협 폐쇄와 관세, 일부 산업의 노동력 부족 등 공급 제약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이것은 공급 측면의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이 경우 연준의 금리 인상이 물가를 떨어뜨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금리를 올려 수요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원유 공급 차질이나 노동력 부족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 붐도 물가 상승에 가세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도 새로운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반도체와 컴퓨터 장비, 전력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를 크게 늘리면서 관련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9월 컴퓨터와 주변기기, 스마트홈 보조기기 가격은 전년 대비 9.7% 급등했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상승률이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새로운 공급 부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금리 올려도 AI 투자는 계속될 가능성

연준 입장에서 더욱 어려운 문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금리 상승에 크게 민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베스 해맥(Beth Hammack)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업체들은 다른 산업보다 가격 변화에 훨씬 덜 민감하고 시설을 가능한 한 빨리 확보하려는 압박이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대형 클라우드 업체와 기술기업들은 AI 시장에서 향후 막대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더라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중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AI 투자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쉽게 줄이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미국 경제 최대 변수로

9월 CPI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문제가 다시 복잡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원유와 휘발유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최근에는 운송, 항공료, 상품, 컴퓨터 장비 등으로 가격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까지 상승하는 가운데 물가가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미국 가계의 실질 구매력도 줄어들고 있다.

연준으로서는 경기와 노동시장을 지나치게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공급 충격과 AI 투자에서 비롯된 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9월 CPI가 단순한 에너지 가격 급등의 일시적 결과인지, 아니면 미국 경제가 다시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들어가는 신호인지는 앞으로 몇 달간 연준의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