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계 집결 FII, 전면 온라인 개최 또는 연기 검토...연기 가능성에 무게
리야드 공항 잇단 미사일·드론 공격...Vision 2030 핵심 관광·투자 프로젝트에도 부담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 주 수도 리야드에서 열 예정이던 대표적인 국제 투자행사 '미래투자이니셔티브(Future Investment Initiative·FII)'를 대면 방식으로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예멘의 이란 지원 후티(Houthi) 세력이 리야드 국제공항과 주요 시설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면서 안전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결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 측은 FII를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행사를 아예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연기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오는 26일부터 예정됐던 행사에 글로벌 기업인과 금융인들이 직접 리야드를 방문할 필요는 없게 된다.
'사막의 다보스' 현장 개최 결국 포기
FII는 세계 최대 금융기관과 투자회사,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사우디에 모이는 연례 행사로 '사막의 다보스(Davos in the Desert)'로 불린다.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가 추진해온 'Vision 2030' 경제개혁의 대표적인 국제무대이기도 하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사우디를 글로벌 금융·관광·첨단산업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다.
올해 행사 역시 오는 26일부터 리야드에서 세계 금융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최 측은 19일 대면 행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20일 또는 그 이전에 행사 자체를 연기할지 최종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월가 경영진들도 리야드행 재검토
행사 취소 결정에 앞서 월가 주요 금융기관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사우디 방문 여부를 놓고 고민이 커지고 있었다.
JPMorgan Chase와 Citigroup 소속 일부 은행원들은 이미 리야드에서 예정했던 회의를 취소하기 시작했고, JPMorgan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과 Citi의 제인 프레이저(Jane Fraser) 최고경영자 주변에서도 두 사람이 행사에 직접 참석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참석 예정자들은 별도의 보안팀과 호텔 및 행사장 주변의 위험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FII가 열리는 지역의 호텔이나 리야드의 주요 랜드마크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회사들은 안전 문제와 함께 사우디 측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우디 국부펀드와 정부기관은 글로벌 사모펀드와 AI 기업, 금융회사들의 주요 자금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리야드 국제공항 최소 네 차례 공격
보안 우려가 급격히 커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리야드 국제공항에 대한 후티의 연속 공격이다.
WSJ에 따르면 후티는 최근 2주 사이 리야드 국제공항을 최소 네 차례 공격했다. 이 가운데 한 차례 공격으로 최소 13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이 다쳤으며, 다른 공격에서도 추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사우디 당국은 밝혔다.
사우디 측 집계에 따르면 후티가 리야드 국제공항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발사체는 모두 20개에 달했다. 드론 10대와 탄도미사일 4발, 순항미사일 4발,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발사체 2개가 포함됐다.
후티는 최근 사우디의 정유시설과 공항 공격을 확대하면서 항공시설도 전장의 일부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티, 바브엘만데브까지 압박
후티는 여름 말부터 공세를 강화해 홍해의 핵심 해상요충지인 바브엘만데브(Bab al-Mandeb) 해협 주변의 전략지역까지 장악했다.
이 지역은 사우디의 원유 수출과 국제 해운에서 중요한 항로다. 후티가 이곳을 압박하면서 사우디의 에너지 수출과 물류망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우디와 후티는 2015년 리야드가 예멘 내전에 개입한 이후 수년간 전쟁을 벌였다. 2022년 휴전으로 대규모 충돌은 한동안 줄어들었지만 올여름 전투가 재개되면서 휴전체제도 사실상 무너졌다.
최근 후티의 사우디 공격은 수도와 민간 항공시설까지 직접 겨냥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Reuters 역시 최근 리야드 공항과 사우디 주요 시설에 대한 공격이 국제기업들의 현지 근무와 출장계획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 방공망에도 부담 가중
사우디는 영토가 워낙 넓은 데다 보호해야 할 시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방공망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왕궁과 석유시설, 공항, 발전시설 등 핵심 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방공미사일 체계를 계속 이동 배치하고 있지만 이란과 친이란 이라크 민병대, 후티 등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WSJ는 최근 후티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사우디의 막대한 국방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주요 기반시설 전체를 완벽하게 방어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행사 줄줄이 연기·취소
FII만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사우디는 최근 공격이 확대되면서 유럽연합(EU)과 걸프 아랍국가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던 정상회의를 비롯해 리야드 패션위크와 'Six Kings Slam' 테니스대회, PIF Saudi International 골프대회 등의 일정도 변경하거나 연기·취소했다.
Six Kings Slam은 최근 리야드 공항 공격 이후 12월 말로 연기됐다. FIFA 역시 사우디에서 열 예정이던 FIFAe Finals를 연기했으며 일본과 브라질 대표팀도 안전 문제를 이유로 참가계획을 변경했다.
Qatar Airways도 리야드와 담맘을 오가는 항공편을 한때 중단하면서 후티 공격의 영향이 국제 항공망으로 확산됐다.
Vision 2030의 상징적 행사까지 영향
FII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국제회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Vision 2030을 통해 사우디를 석유 중심 국가에서 금융·관광·엔터테인먼트·첨단기술 중심 국가로 전환하려 해왔고, FII는 그 전략을 세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대표 행사였다.
사우디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 비석유 부문이 전체 경제의 절반 이상으로 성장했고 수백만명의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국내 관광과 엔터테인먼트 소비도 빠르게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사우디 자본을 AI와 사모펀드 사업에 유치하기 위해 왕국과 관계를 강화했고, 동시에 사우디가 추진하는 초대형 개발사업의 자금조달도 지원해왔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피살 사건 직후 한때 월가 경영진들이 FII 참석을 대거 취소했지만 이후 관계는 빠르게 회복됐다.
이번에는 정치적 논란이 아니라 직접적인 안전 문제가 글로벌 금융계의 리야드 방문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전쟁비용까지 늘며 사우디 재정 부담
후티와의 충돌은 사우디 경제가 이미 상당한 재정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격화되고 있다.
사우디 재무부는 올해 경제가 3.6%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순외국인직접투자(FDI)도 올해 1분기와 2분기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여기에 방위비와 기반시설 보호비용까지 빠르게 증가하면 관광과 첨단산업, 대규모 개발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정부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
Vision 2030의 핵심이었던 여러 메가프로젝트도 이미 지연되거나 사업성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사우디는 지난 1월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개최 계획을 포기했으며, 2030년 리야드 세계박람회와 2034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계속해야 한다.
'안전한 글로벌 허브' 구상에 새로운 시험대
사우디가 FII 대면 행사를 포기한 것은 후티의 공격이 단순히 군사적 피해를 넘어 Vision 2030의 핵심 목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외 기업과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수천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리야드와 주요 관광도시, 국제공항이 안전하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계가 FII 참석 여부를 놓고 보안팀과 상의하고, 국제 스포츠대회와 항공편이 잇따라 취소·연기되는 상황은 사우디가 구축해온 '글로벌 비즈니스·관광 허브' 이미지에 부담을 주고 있다.
후티와의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사우디는 군사적으로 공항과 에너지시설을 방어하는 문제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을 계속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Vision 2030의 막대한 프로젝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사막의 다보스' FII의 대면 개최 취소는 이러한 압력이 국제 금융계의 실제 행동 변화로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