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부터 명품매장까지 전국 동시다발 공격...경찰, 수천명 규모 폭도 통제에 한계
르코르뉘 "조직된 극좌세력"·르펜 "급진세력과 방리외 불량배 결합"...멜랑숑은 정부의 진압방식 비판

프랑스 전역을 휩쓴 대규모 폭동이 주말 내내 이어지면서 경찰과 소방관 600명 이상이 부상하고 2,000명 이상이 구금됐다. 시청과 상점, 명품 쇼핑가 등 평소 공격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파괴되면서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도 본격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7일 전국적인 생활비 항의시위 과정에서 폭발한 폭력사태는 18일 저녁에도 계속됐다. 파리 곳곳에서는 다시 바리케이드가 불탔고, 주말 동안 전국 주요 도시에서 수천명의 폭도들이 관공서와 상업시설을 공격했다.

프랑스는 거리시위와 격렬한 충돌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WSJ는 이번 사태가 규모 면에서 최근 수년간 발생한 폭동 가운데 특히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경찰력이 전국 여러 도시로 분산되면서 수천명 규모의 폭력집단이 도심으로 몰려드는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장면도 반복됐다.

경찰·소방관 600명 이상 부상...2,000명 넘게 구금

주말 동안 부상한 경찰관과 소방관은 600명을 넘어섰다. 구금된 인원도 2,000명을 넘었다.

폭력의 범위 역시 크게 확대됐다. 시위대 주변의 복면 집단들은 지방정부 청사와 시청, 명품매장, 일반 상점 등을 공격했고 차량 방화와 약탈도 이어졌다.

17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50만명이 넘는 시민이 생활비 문제 등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대규모 평화시위 주변에서 검은 옷과 복면을 착용한 젊은 집단들이 쇼핑지역과 정부 건물을 동시에 공격하면서 경찰력이 빠르게 분산됐다.

WSJ는 경찰이 엘리제궁과 내무부 등 핵심 정부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병력을 이동시키자 다른 상업지역이 약탈에 노출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전했다.

전국 상점 3,000곳 파손·약탈

세바스티앵 르코르뉘(Sébastien Lecornu) 프랑스 총리는 19일 폭동으로 전국 약 3,000개 상점이 파손되거나 약탈당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피해를 본 사업체에 세제지원과 실업 관련 지원 등 긴급지원책을 제공하기로 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동시에 폭력사태가 집중되는 지역에 지방자치단체장이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도시 전체를 봉쇄하기보다는 폭동이 집중되는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통행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전국적인 시위 진압에서 지역별 치안통제로 대응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셈이다.

보르도 루이비통 매장까지 약탈

보르도(Bordeaux)에서는 한 무리가 루이비통(Louis Vuitton) 매장의 출입문을 부수는 장면이 촬영됐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매장으로 몰려들어 핸드백 등을 들고나갔다. 그 옆에서는 현수막을 든 평화적인 시위대가 그대로 행진하고 있었다.

이는 이번 사태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규모 평화시위와 별개로 약탈과 방화에 가담하는 집단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두 흐름이 같은 공간에서 뒤섞이고 있다.

리모주에 폭도 최대 3,000명...시청 불타고 종탑 붕괴

프랑스 중부 리모주(Limoges)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현지 행정책임자인 모리스 바라트(Maurice Barate)에 따르면 최대 3,000명의 폭도들이 도심으로 몰려들었다. 일부에서는 차량 강탈까지 발생했다.

오후 늦게 한 집단이 19세기에 건설된 리모주 시청 내부로 침입해 불을 질렀다. 당시 건물 안에는 선출직 공무원과 직원들이 남아 있었다.

직원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한 소방관들에게도 각종 물체가 날아들었다. 밤이 되자 불길이 시청의 역사적인 종탑으로 번졌고 결국 종탑이 무너졌다.

프랑스에서 시청은 단순한 행정건물이 아니라 공화국과 지방자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시청이 불타고 종탑이 붕괴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이번 폭동을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의 충격도 커졌다.

파리서는 정부청사 보호하자 쇼핑가 약탈

파리에서는 경찰이 엘리제궁과 내무부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병력을 집중 배치해야 했다.

그 결과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 주변 상업지역에 대한 보호가 상대적으로 약해졌고 비디오게임 매장과 자전거 매장 등 약 12개 상점이 약탈당했다.

47세 전자제품 매장 주인 나탕 미문(Nathan Mimoun)은 17일 저녁 자신의 매장에 도착했을 때 약 7만유로, 약 7만8,000달러 상당의 제품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가 강제로 열린 철제 셔터를 수리하는 동안에도 약탈자들이 계속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미문은 다음 날 깨진 유리조각을 치우며 "재정적으로 재앙"이라며 다시 사업을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등학생이 아니다"

56세 상인 에르베 드니(Hervé Denis)는 친구가 운영하는 오토바이 장비점의 깨진 유리창 안을 바라봤다. 매장 안 진열대와 선반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는 약탈자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며 "이들은 고등학생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약탈자들이 프랑스의 저소득 교외지역인 방리외(banlieues)와 공공주택단지에서 몰려온 절도범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이번 폭동의 참가자가 누구이며, 초기 학생시위가 어떤 집단의 가세로 변질됐는지를 둘러싼 프랑스 사회의 논쟁을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르코르뉘 "고도로 조직된 극좌집단"

폭동의 책임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격화하고 있다.

르코르뉘 총리는 폭동에 가담한 사람들 가운데 "고도로 조직된 극좌집단"이 있으며 이들이 내년 봄 대통령선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가 이번 폭력사태를 단순한 생활고 시위의 우발적 격화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일부 조직의 행동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극좌 성향 정치인 장뤼크 멜랑숑(Jean-Luc Mélenchon)은 정부의 경찰 대응이 오히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정부가 "혼돈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고 비판했다.

르코르뉘는 X를 통해 즉각 반박했다.

그는 폭력 중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명분을 제공할 수는 없다며 멜랑숑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르펜 "급진 정치세력과 방리외 불량배의 결합"

마린 르펜(Marine Le Pen)도 마크롱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르펜은 폭동이 정치적 급진세력과 프랑스 방리외의 범죄 성향 집단이 결합하면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방리외는 파리와 리옹, 마르세유 등 대도시 외곽의 저소득 지역을 의미하며 북아프리카와 아프리카계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많이 거주한다. WSJ는 이 지역에 프랑스의 소수 무슬림 인구 상당수가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설명은 르펜이 이번 폭동의 성격을 규정하며 제시한 정치적 주장이다.

르펜은 18일 프랑스 국기 앞에서 발표한 영상연설에서 불타버린 리모주 시청을 집중적으로 언급하며 "공화국의 가장 신성한 상징들이 모욕당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았다"고 말했다.

WSJ는 최근 시위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르펜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가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 "거리 혼란으로 정치논쟁 가로채려 해"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18일 저녁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폭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WSJ는 마크롱이 폭동을 실제로 어떻게 중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책을 많이 제시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발표)

마크롱은 오히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세력이 거리의 혼란을 이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거리로 나와 시위하고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공화국을 훼손하고 정상적인 정치적 논쟁을 가로채는 데 있다고 말했다.

내무장관 사의 표명...마크롱은 반려

폭동 진압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면서 로랑 뉘녜(Laurent Nuñez) 내무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현재 프랑스의 치안 상황을 고려할 때 법질서 담당 지도부의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표를 반려했다고 밝혔다.

내무장관이 사임을 제안할 정도로 이번 폭동이 정부에 상당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폭동 뒤에는 심각한 재정문제

이번 사태는 프랑스가 심각한 재정문제에 직면한 가운데 발생했다.

학생들은 지난 수주 동안 학교를 봉쇄하며 교사 확대와 교육예산 증액을 요구해왔다. 생활비 상승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운동은 학생시위에서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저항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추가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수년째 GDP의 5%를 넘어섰으며 금융시장에서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정부가 재정질서를 회복할 능력이 있는지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의 국채 조달비용 역시 상승압력을 받고 있다.

즉 거리에서는 교육과 공공서비스, 생활비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재정지출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대선 6개월 앞두고 폭동까지 겹쳐

이번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프랑스가 대통령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마크롱 정부는 재정위기와 생활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동시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폭력사태를 통제해야 한다. 여기에 좌파와 우파 정치세력은 폭동의 원인과 책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며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조직적인 극좌세력의 개입을 강조하고 있고, 멜랑숑은 정부의 경찰 진압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르펜은 급진 정치세력과 방리외 범죄집단의 결합을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주말 동안 드러난 가장 직접적인 현실은 정치권의 설명과 관계없이 경찰이 동시에 여러 도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력사태를 통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다.

시청과 정부시설뿐 아니라 일반 상점과 명품매장까지 공격받았고, 피해 상점은 3,000곳에 달했다. 경찰과 소방관 600명 이상이 부상하고 2,000명 이상이 구금되면서 이번 사태는 이미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에서 출발했던 시위의 범위를 크게 넘어섰다.

프랑스는 이제 생활비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불만, 재정위기, 치안문제 그리고 대선을 앞둔 정치적 양극화가 동시에 충돌하는 상황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