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아르헨티나 국경 넘어 에콰도르 거쳐 미국행...브라질 당국 여권 취소
자금세탁 등 형사수사 직면...트럼프 행정부는 가족에 미국 비자 발급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 상원의원이 브라질 당국의 여권 제출 요구를 이행하지 않은 채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이동해 28일 오전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보우소나루
(대선 불복을 선언했던 보우소나루 당국 압박에 미국행.자료화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보우소나루와 부인 페르난다, 두 딸 카롤리나와 루이자는 27일 밤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육로 이동한 뒤 현지에서 전세기를 타고 에콰도르 과야킬을 거쳐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오파로카 이그제큐티브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TV 화면에는 가족이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대선 패배 이틀 만에 브라질 떠나

보우소나루는 지난 25일 대통령선거 결선에서 현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에게 패했다.

최종 개표에서 룰라는 약 6,425만표를 얻어 51.79%, 보우소나루는 약 5,983만표로 48.21%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표차는 약 440만표였다.

보우소나루는 그러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투표 종료 직전 전국 투표시간이 2시간 연장된 점 등을 문제 삼으면서 선거 결과의 무효화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도 선거 이후 기자들에게 브라질 선거가 "조작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며 보우소나루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현재까지 선거 결과를 뒤집을 만한 부정선거 증거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대법원, 여권 제출하고 브라질에 남으라고 명령

대선 직후 보우소나루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브라질 대법원은 그가 자금세탁 관련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일반여권과 외교관여권을 연방경찰에 제출하고 브라질에 머물도록 명령했다.

Reuters에 따르면 대법원은 보우소나루가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과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출국 제한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그는 정해진 기한까지 여권을 제출하지 않았고, 이후 해당 여권들은 취소됐다.

보우소나루는 앞서 공개적으로 자신은 브라질을 떠날 생각이 없으며 여권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밤 10시50분 아르헨티나 국경 넘어

아르헨티나 당국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가족은 27일 오후 10시50분께 미시오네스주에 있는 탄크레두 네베스 국제교량을 통해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왔다.

이 지역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국경이 만나는 곳으로 브라질 남부의 대표적인 육로 국경지역이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이들이 입국 당시 유효한 여행서류를 제시했으며 아르헨티나 측에서는 입국을 제한할 법적 조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40분 만에 전용기 탑승

국경을 넘은 지 약 40분 뒤인 오후 11시30분께 보우소나루 가족은 아르헨티나 전세기 업체 Baires Fly가 운항하는 전용기에 탑승했다.

비행계획상 목적지는 에콰도르 과야킬로 등록됐다.

항공편 LV-JQW는 28일 오전 0시21분 아르헨티나 푸에르토이과수에서 이륙해 과야킬에 잠시 기착한 뒤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오전 9시25분께 마이애미 인근 오파로카 이그제큐티브 공항에 착륙했다.

아르헨티나 당국, 하루 전 전용기까지 검색

보우소나루의 이동은 상당 부분 비밀리에 진행됐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하루 전인 27일 보우소나루가 Baires Fly 전용기에 탑승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해당 항공기를 검색했지만 당시에는 그가 비행기에 탈 계획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보우소나루 가족은 육로를 통해 아르헨티나로 넘어간 뒤 바로 같은 전세기 업체의 항공기에 탑승했다.

그의 선거캠프 관계자들조차 이동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Reuters에 따르면 선거대책본부장은 그가 브라질에 남아 야당을 이끌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미국 비자 발급"

보우소나루의 미국 입국 문제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개입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보우소나루와 가족에게 미국 비자를 발급하고 입국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28일 보우소나루의 미국행에 대해 "승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 대선 결과를 다시 문제 삼으면서 보우소나루 가족에 대한 브라질 사법당국의 처우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금융범죄 관련 수사 직면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에서 직면한 문제는 선거 결과만이 아니다.

그는 현재 브라질 대법원에서 금융 관련 형사수사를 받고 있다. 브라질 대법원 기록에도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대상으로 한 연방경찰의 형사수사 사건이 등록돼 있다.

AP는 대선 이전부터 그가 부패와 자금세탁, 탈세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부실 금융기관 Banco Master의 전 소유주로부터 자금을 받아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를 다룬 영화 제작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돼 있다. 보우소나루는 모든 위법행위를 부인해왔다.

영화 제작자금 수사도 진행

브라질 연방경찰은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전기영화 'Dark Horse' 제작자금의 흐름도 조사해왔다.

경찰은 플라비우가 영화 제작을 위한 투자금 유치와 자금조달 과정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으며, 관련 자료는 대법원에 제출됐다.

다만 이러한 내용은 현재 수사 단계의 의혹이며 플라비우가 해당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공개 메시지는 "지지자들에게 감사"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에서 마지막으로 공개한 메시지는 26일 밤 Instagram에 게시한 영상이었다.

그는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감사하면서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다시 주장했다.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범죄 의혹을 부인하며 당국의 요구에 따라 여권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 날 기한까지 여권은 제출되지 않았고, 그날 밤 그는 가족과 함께 육로로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었다.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도 과거 미국행

이번 사건은 부친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과거 행보와도 비교되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역시 2022년 대선에서 룰라에게 패한 뒤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 미국 플로리다로 이동한 바 있다.

그는 이후 브라질로 귀국했고, 2022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쿠데타 모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 현재 27년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플라비우의 동생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Eduardo Bolsonaro)도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브라질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불법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브라질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귀국할 경우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다.

룰라 "남아서 결백 입증했어야"

룰라 대통령은 경쟁자의 갑작스러운 출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Reuters에 따르면 룰라는 보우소나루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브라질에 남아 사법절차를 통해 결백을 증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대선 직후부터 긴장 관계에 놓인 브라질과 미국의 외교관계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룰라 정부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가 보우소나루 가문을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브라질 국내 사법절차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반면 트럼프는 자이르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도피' 여부 둘러싼 법적 공방 불가피

보우소나루가 실제 어떤 여행서류를 이용해 브라질 국경을 빠져나갔는지와 브라질의 출국금지 명령이 국경 전산망에 언제 반영됐는지도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그가 입국할 때 유효한 여행서류를 제시했다고 밝혔지만, 브라질 당국은 그가 여권을 제출하지 않아 해당 문서들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입국 당시 문서가 아직 법적으로 유효했는지, 브라질의 출국 제한을 어떤 방식으로 통과했는지에 대한 추가 조사가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대선 패배 불과 사흘 만에 브라질의 주요 야당 지도자이자 전 대통령의 장남이 형사수사를 받는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그의 미국 입국을 공개적으로 허용하면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문제는 이제 브라질 국내 정치와 사법절차를 넘어 미·브라질 관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