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판매 22% 급감·올해 2014년 이후 최악 전망...EV 브랜드는 143개까지 난립
내수 부진에 수출 1200만대 예상...유럽 완성차업체 구조조정까지 압박

중국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자국 시장에서는 심각한 판매 부진과 과잉생산에 직면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 소비자들의 승용차 구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2% 감소했다. 중국 자동차업계는 올해 연간 판매량이 약 1850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수출대기중인 BYD 전기차
(선적을 준비하는 BYD 수출용 차량이 늘어선 부두. 자료화면 )

그러나 중국에는 연간 약 6300만대의 경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비가 이미 구축돼 있다. 중국 소비자들이 올해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량의 세 배가 넘는 생산능력이다.

10만대 공장 세웠는데 올해 판매 660대

중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Skyworth Auto다.

회사는 2021년 주력 전기차 공장이 연간 10만대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9월까지 중국 내 실제 판매량은 660대에 불과했다.

난징의 일부 Skyworth 판매점에서는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자동차도, 고객도, 직원도 없었다. 상하이에 회사 홈페이지상 공식 판매점으로 표시된 한 지점은 이미 오래전에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회사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새로운 승용차 모델이 소개되고 연구개발 인력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올라와 있다.

GM CEO "경쟁자 너무 많아...정리 필요"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Mary Barra) 최고경영자는 지난 7월 중국 자동차 시장에 대해 "경쟁자가 너무 많다"며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상당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장이 악화됐는데도 이러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전기차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지방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각 도시가 자신들의 지역을 '전기차 시대의 디트로이트'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지역 자동차기업에 자금과 공장, 세제혜택, 저리대출을 제공했다.

전기차 브랜드 143개까지 증가

그 결과 2025년 말 기준 중국에서 최소 한 개 이상의 자동차를 실제 판매한 전기차 브랜드는 143개에 달했다.

시장 성장기에는 많은 기업의 경쟁이 혁신을 촉진했다.

하지만 중국 인구가 감소하고 대도시의 대중교통망이 잘 구축돼 있으며 로보택시 산업까지 성장하면서 일반 가정의 자동차 구매가 과거처럼 지속적으로 급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지방정부와 자동차기업은 공장을 폐쇄하거나 사업을 철수하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으면 지역 일자리와 세수, 투자까지 동시에 줄어들기 때문이다.

NIO도 지방정부 구제로 생존

중국 전기차 기업과 지방정부의 밀접한 관계는 NIO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NIO는 2020년 초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허페이시로부터 약 7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아 위기를 넘겼다.

허페이시는 NIO를 지역 전기차 산업단지의 핵심 기업으로 육성했고 수만명의 고용을 기대했다.

이후 NIO 주가가 급등하며 한때 GM보다 기업가치가 높은 세계 4위 자동차회사에 오르자 중국 여러 지방정부가 비슷한 방식으로 부실 전기차업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일부 스타트업은 지방정부로부터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조건으로 공장을 제공받고 생산설비 구매에 대한 세제혜택까지 받았다. 지역 은행들도 저렴한 자금을 공급했다.

Xiaomi 공장 3년 만에 건설

지방정부 지원은 성공적인 기업에도 큰 힘이 됐다.

스마트폰업체 Xiaomi는 베이징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불과 3년 만에 자동차 공장을 완공했다.

2024년 가동을 시작한 이 공장에는 Tesla가 먼저 도입한 대형 다이캐스팅 기술 등 첨단 생산설비가 적용됐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은 기술혁신에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 CATL은 지난해 10분 이내 급속충전 기술을 공개했고 BYD도 곧 비슷한 기술을 선보였다. Geely는 배터리를 5분 이내 거의 완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차 3대 중 2대가 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중국의 전기차 전환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9월 중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약 3분의 2가 순수 전기차 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였다.

문제는 전기차 전환 속도가 너무 빨랐고, 그 과정에서 공장과 브랜드가 지나치게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공장은 올해 약 6300만대의 경차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수 예상판매량은 1850만대 수준이다.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추거나 해외시장에 판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가격 3년 만에 약 20% 하락

첫 번째 생존전략은 가격 인하다.

AlixPartners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평균가격은 2023년 초 이후 거의 20% 하락했다.

가격전쟁은 판매량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기업의 수익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올해 첫 8개월 동안 중국 자동차업계의 평균 이익률은 3.6%까지 내려가 수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NIO는 2021년 이후 매년 10억달러 이상 적자를 내고 있으며 주가는 최고점에서 95% 하락했다.

베이징시가 지배하는 BAIC Motor도 지난 7월 치열한 경쟁 때문에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 차량을 주문하려면 긴 대기기간이 필요했던 Xiaomi조차 올해 판매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탈출구는 해외 수출

가격을 더 낮추기 어려운 기업들의 두 번째 선택은 수출이다.

중국 자동차업계는 올해 약 1200만대의 차량을 해외로 수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대 초 연간 수출량이 약 100만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수년 만에 10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중국은 2023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자동차업체들이 철수한 러시아 시장에서 판매를 크게 늘렸지만, 현재는 영국과 독일, 싱가포르, 멕시코, 브라질 등 중산층 이상 시장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BYD, 폭스바겐보다 1만달러 이상 싸게 판매

가격경쟁력은 상당하다.

영국에서 BYD는 주력 모델인 Seal 하이브리드 세단을 약 4만4000달러에 판매한다.

비슷한 사양의 Volkswagen Passat보다 1만달러 이상 저렴하다.

Volkswagen 최고경영자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이 자동차들은 유럽의 비용구조로는 맞출 수 없는 중국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점유율 11.7%까지 상승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내수 위기가 해외 자동차산업에는 더 큰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5대 자동차업체는 지난 9월 유럽 자동차시장에서 11.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자동차산업 컨설팅업체 Dunne Insights의 마이클 던(Michael Dunne)은 이를 두고 "중국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해외에서는 쓰나미가 발생한다"고 표현했다.

중국 시장에서 팔지 못한 자동차가 해외시장으로 쏟아지면서 세계 자동차업체들의 가격과 수익성까지 압박하고 있다는 의미다.

Volkswagen 최대 5만명 구조조정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는 Volkswagen이다.

중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Volkswagen은 2년도 되지 않아 두 번째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최대 5만명의 인력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BMW도 중국 판매부진에 따른 이익전망 악화를 이유로 약 8000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Chrysler 모회사 Stellantis 역시 유럽에서 중국 자동차업체들과의 경쟁 때문에 손실을 보고 있다.

미국만 중국차 영향 거의 없어

세계 주요 자동차시장 가운데 중국 업체들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높은 관세와 중국산 자동차 기술에 대한 각종 규제로 중국 완성차업체들의 시장진입이 사실상 차단돼 있다.

그 결과 GM과 Ford는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여전히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남아 있다.

반대로 유럽은 중국차 유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이 중국과의 자동차 교역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무역흑자가 적자로 전환됐다.

자동차를 발명한 국가로 평가받는 독일에서 중국 브랜드 판매가 늘어나는 동안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중국시장에서 점유율을 잃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Volkswagen, 중국 공장 이미 3곳 폐쇄

Volkswagen은 중국 국영 자동차업체들과 설립한 합작기업을 통해 수십 년간 중국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최근 판매감소에 대응해 이미 세 개의 공장을 폐쇄했다.

이를 통해 중국 내 생산능력을 과거 약 500만대에서 400만대 수준으로 줄였다.

회사는 여기서 다시 약 50만대의 생산능력을 추가로 줄이려고 한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Volkswagen과 Audi 차량은 약 260만대에 불과했고 올해는 다시 약 30% 감소했다.

그럼에도 Volkswagen은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첨단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합작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GM 역시 지난 8월 중국 핵심 합작사업을 20년 연장했다.

베이징도 '과도한 경쟁' 우려

중국 중앙정부 역시 현재 상황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자동차산업의 지나친 가격경쟁을 '내권(involution)'이라고 표현하면서 제조사들에게 무리한 가격인하를 자제하고 어려움을 겪는 부품업체에 대한 대금지급을 앞당기라고 요구했다.

지난 8월에는 "비합리적 경쟁" 때문에 자동차기업들이 안전기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자동차 안전감독을 강화하는 캠페인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상무부는 서방에서 제기되는 '중국 자동차 과잉생산' 논란 자체에는 반발하고 있다.

상무부는 중국 자동차 수출 증가는 규모의 경제와 각국의 친환경 전환 수요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신차 500종 쏟아져

정부의 과잉경쟁 우려에도 기업들의 확장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4월 베이징 모터쇼에는 약 1500대의 차량이 전시됐다.

Volkswage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중국시장에서 500종이 넘는 신차가 출시됐다.

기업 경영진들은 여전히 더 많은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만들고 해외시장에 더 많이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평균 브랜드 판매량 8만7000대...'좀비 브랜드'도 수두룩

AlixPartners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기차 브랜드 한 곳당 평균 판매량은 약 8만7000대였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연간 1000대도 팔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 브랜드'가 상당수 존재한다.

경제논리만 놓고 보면 이런 업체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일자리와 세수를 지키기 위해 지역 자동차업체의 퇴출을 막으면서 시장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방정부 승진은 세수·고용에 달려"

Sino Auto Insights의 투 러(Tu Le)는 중국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어려운 이유를 지방정부의 이해관계에서 찾았다.

그는 "지방정부 관리들이 승진하려면 세수를 창출하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의 계획과 지방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장을 폐쇄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과잉생산을 해결할 수 있지만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실업과 세수 감소라는 직접적인 정치·경제적 부담이 발생한다.

자동차는 철강보다 구조조정 어려워

중국은 과거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에서도 심각한 과잉생산 문제를 겪었다.

2010년대 중앙정부가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일정 부분 생산능력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은 훨씬 어려운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호주국립대 펑밍 루(Fengming Lu)는 자동차 공장이 워낙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으며 지방경제에 깊숙이 연결돼 있어 철강이나 알루미늄보다 구조조정하기 훨씬 어렵다고 설명했다.

XPeng "자동차만 팔아서는 안 된다"

일부 중국 전기차업체들은 이미 자동차 판매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XPeng 창업자 허샤오펑(He Xiaopeng)은 최근 자동차만 판매하는 사업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Tesla의 일론 머스크가 Optimus 로봇과 로보택시에 집중하는 것처럼 XPeng도 로보택시와 로봇,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샤오펑은 "낮은 마진의 성장만 추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XPeng 역시 올해 중국 판매가 두 자릿수 감소하면서 적자폭이 더 커졌다.

합병조차 지방정부 이해관계에 막혀

중국 정부도 자동차업계 통합 가능성을 검토해왔다.

지난해 국영 자동차업체 Dongfeng과 Changan이 동시에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두 회사가 합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계획은 결국 무산됐다.

분석가들은 두 회사가 위치한 지방정부 어느 쪽도 자동차산업의 중심 지위를 다른 지역에 넘겨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중국 내수 위기가 세계 자동차시장으로 수출

중국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역설은 분명하다.

기술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기술에서는 미국과 유럽 업체들을 앞서는 분야까지 생겼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너무 많은 기업과 공장을 키운 결과 국내 수요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가격을 낮추면 수익성이 악화되고, 공장을 닫으려 하면 지방정부와 고용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해외시장이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올해 약 1200만대를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이미 중국 5대 업체의 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중국 내 과잉생산 문제가 유럽 자동차업체의 감원과 공장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따라서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수시장에서는 판매가 22% 감소하고 연간 6300만대 생산능력이 남아도는 반면, 그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시장으로 나오는 값싼 전기차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경쟁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중국에서 지진이 나면 해외에서는 쓰나미가 온다"는 업계의 표현처럼, 중국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지연이 이제 세계 자동차업계 전체의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