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하루 만에 4대 차량으로 동선 교란...아르헨티나 국경 넘어 전용기 탑승
트럼프 직접 입국 승인·루비오 비자 발급 추진...실제 입국은 1년 체류 가능한 '인도적 가석방'
아르헨티나 밀레이 측근도 이동 과정 관여...미국서 망명 정치조직 구축 추진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가 법원의 출국금지 명령을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차량 미끼와 비밀 국경 이동, 전용기를 동원한 치밀한 작전이 진행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보우소나루의 미국행에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측근들과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아르헨티나 대통령 측 인사들이 관여했다. 보우소나루는 28일 오전 마이애미에 도착한 뒤 트럼프에게 자신을 받아준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며 미국을 "자유의 땅"이라고 표현했다.

대선 패배 24시간도 안 돼 사라진 보우소나루

보우소나루의 탈출작전은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에게 패배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27일 월요일 저녁 브라질리아 자택에서 검은색 차량 4대가 동시에 출발했다. 차량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보우소나루를 취재하던 기자들과 당국은 어느 차량에 그가 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보우소나루
(보우소나루 브라질 야당 전 대선후보. 자료화면)

다음 날 오후에는 보우소나루 측 일부 인사들이 언론에 그가 이미 미국 플로리다에 도착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보우소나루는 아직 브라질에 있었다.

"이미 미국 갔다"는 정보도 미끼

보우소나루가 이미 미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브라질과 해외 언론을 통해 퍼질 당시, 실제로는 아르헨티나 국경 너머에서 그를 태울 전용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WSJ는 이번 작전이 "기만과 미끼에 크게 의존했다"고 전했다.

동선에 대한 허위정보가 계속 퍼지면서 브라질 정부뿐 아니라 워싱턴과 브라질에 있는 보우소나루의 가까운 정치적 동맹들조차 그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출국금지 명령 직후 탈출작전 시작

보우소나루는 대선 이전부터 형사수사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대선 패배 직후 브라질 대법원이 그에게 출국을 금지하고 여권을 제출하도록 명령하면서 상황이 급박해졌다.

WSJ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측 인사들은 그가 체포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월요일부터 미국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작전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보우소나루 가족은 이 수사를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해왔으며, 대법원의 출국금지 명령은 이런 주장에 다시 불을 붙였다.

동생 에두아르두가 미국 측과 연결

탈출작전의 핵심적인 연결고리 가운데 한 명은 보우소나루의 동생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Eduardo Bolsonaro)였다.

WSJ에 따르면 에두아르두는 트럼프 측 인사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구축해왔고, 이번에도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정치고문 제이슨 밀러(Jason Miller)를 포함한 소수의 측근들은 보우소나루를 아르헨티나에서 플로리다로 이동시킬 전세기를 확보했다.

보우소나루 가족, 트럼프 진영과 수년간 관계 구축

이번 미국행은 갑작스럽게 형성된 관계를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WSJ는 보우소나루 가족이 수년 동안 트럼프와 그의 핵심 참모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치·법적 문제에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고 전했다.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는 마러라고 만찬과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백악관 회동 등을 통해 트럼프 진영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구축해왔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Donald Trump Jr.)와 포옹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트럼프, 브라질에 관세·대법관 제재까지

보우소나루 가문과 트럼프 진영의 개인적인 동맹관계는 이미 미국과 브라질의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해 브라질 정부의 보우소나루 처리 문제를 이유로 브라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고, 이번에 플라비우의 출국을 금지한 같은 브라질 대법관에게 제재도 가했다.

WSJ는 양국의 대표적인 정치 가문 사이에 형성된 개인적 동맹이 미국과 브라질의 관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밤 10시50분 아르헨티나로 국경 통과

보우소나루와 부인 페르난다, 두 딸은 27일 화요일 브라질 남부를 향해 이동했다.

이날 오후 10시50분 이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연결하는 탄크레두 네베스 국제교량을 건너 아르헨티나 푸에르토이과수로 입국했다.

이 지역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의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국경을 통과한 뒤 보우소나루 가족의 차량은 아르헨티나 공항보안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과수 국제공항 출입국심사장으로 이동했다.

밀레이 최측근도 현장에서 작전 감시

WSJ 보도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측의 관여다.

전직 아르헨티나 정보기관 책임자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산티아고 카푸토(Santiago Caputo)는 푸에르토이과수에서 작전 진행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카푸토는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와 직접 연락하며 이동을 조율했다고 이번 작전에 관여한 관계자는 WSJ에 전했다.

밀레이는 트럼프 행정부와 보우소나루 가문 모두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7월에는 브라질에서 열린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의 선거유세에 직접 참석해 룰라를 "도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발언 이후 브라질 정부는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를 소환했다.

아르헨티나 공항에는 전용기 대기

보우소나루 가족이 도착했을 때 이과수 국제공항에는 이미 전용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전세기 회사 Baires Fly 소유의 Gulfstream G400이었다.

항공추적 자료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하루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푸에르토이과수에 도착해 보우소나루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우소나루 가족은 오후 11시30분께 전용기에 탑승했다.

보우소나루, 이탈리아 여권 사용

WSJ가 확인한 아르헨티나 비행명단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여권이 아니라 이탈리아 여권을 이용해 여행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명단에는 그의 부인과 두 딸도 함께 기재돼 있었다.

이는 브라질 법원이 보우소나루에게 여권 제출을 명령한 상황에서 그가 어떤 여행서류를 이용해 국경을 넘었는지를 둘러싼 논란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에콰도르 거쳐 마이애미로

전용기 LV-JQW편은 자정을 조금 넘긴 오전 0시21분 푸에르토이과수에서 출발했다.

항공기는 에콰도르 과야킬에 기착해 연료를 보충한 뒤 미국으로 향했다.

약 9시간 뒤인 28일 오전 9시30분께 마이애미-오파로카 이그제큐티브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보우소나루는 남색 폴로셔츠에 배낭을 멘 모습이었다.

공항에서는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우산을 펼쳐 보우소나루 가족을 취재진의 카메라에서 가린 채 준비된 SUV로 이동시켰다.

트럼프가 직접 미국 입국 승인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보우소나루와 가족의 미국 입국을 직접 승인했다.

이후 마코 루비오(Marco Rubio) 국무장관이 가족에게 비자를 발급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실제 보우소나루 가족의 미국 입국은 일반적인 비자가 아닌 '인도적 가석방(humanitarian parole)' 형태로 이뤄졌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미국 내에 최대 1년 동안 체류할 수 있다.

향후 보우소나루가 망명을 신청하거나 다른 체류신분을 확보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마이애미 도착 후 스스로를 "브라질 지도자"로 표현

보우소나루는 미국 도착 후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을 "브라질의 지도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과 가족을 "자유의 땅"으로 받아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밀레이 대통령에게도 "용기"와 "정의감"에 감사를 표했다.

보우소나루는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망명 정치조직' 구축 추진

보우소나루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브라질 정치를 계속 이끌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관련 논의에 관여한 인사들을 인용해 그가 미국에서 사실상 망명 정치조직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 중간선거가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백악관이 보우소나루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룰라 정부를 적극 압박할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 "관여하지 않겠다"

트럼프는 보우소나루가 자신을 브라질의 정당한 지도자라고 주장한 데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직접적인 지지를 피했다.

그는 보우소나루 가족이 "매우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매우 이상한 선거였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50개국 이상 룰라 승리 인정

룰라는 25일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를 약 440만표 차이로 꺾었다.

WSJ에 따르면 룰라의 승리는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중남미 여러 국가를 포함해 50개국 이상이 공식 인정했다.

국제선거 관찰단도 이 정도의 표차라면 브라질 선거 데이터의 무결성을 의심할 근거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그러나 아직 룰라의 재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선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아버지 자이르도 대선 패배 뒤 플로리다행

플라비우의 미국행은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과거 행보와도 유사하다.

자이르는 2022년 룰라에게 대선에서 패한 뒤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그해 12월 플로리다 올랜도로 이동했다.

약 3개월간 지인의 집에 머문 뒤 브라질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브라질 국내 사건, 미·브라질 외교문제로 확대

이번 사건은 이제 보우소나루 개인의 형사수사나 브라질 국내 정치문제를 넘어섰다.

브라질 법원이 출국을 금지한 대통령선거 패배 후보가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이동했고, 밀레이 정부 측 인사와 트럼프의 핵심 측근들이 그 과정에 관여했으며 미국 대통령이 직접 입국을 승인했다는 것이 WSJ 보도의 핵심이다.

특히 미국이 보우소나루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룰라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WSJ는 이를 "트럼프가 외국 정치 가문을 위해 미국의 힘을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차량 미끼와 허위정보로 동선을 감추고, 국경 너머에 전용기를 준비한 뒤 아르헨티나 정부 관계자의 지원 속에 에콰도르를 거쳐 미국으로 이동한 이번 작전은 보우소나루 가문과 트럼프 진영 사이에 수년간 형성된 정치적 동맹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