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ropic "5~10년 안에 대부분 질병 치료 가능"...제약업계는 과도한 기대 경계
Vertex, AI기업 50곳 활용했지만 실제 작동하는 신약 후보 못 만들어
AI 신약개발 투자 84억달러로 급증...FDA 승인 약은 아직 '0'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질병 대부분을 수년 안에 치료할 수 있다는 실리콘밸리의 기대와 실제 신약개발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

앤트로픽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 자료화면)

Anthropic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최근 AI가 5~10년 안에 대부분의 인간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글로벌 제약사 경영진들은 인간 생물학의 복잡성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이 같은 전망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Vertex "그건 완전히 말이 안 된다"

제약업계의 반응은 상당히 직설적이다.

버텍스 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 집행회장 제프 라이든(Jeff Leiden)은 최근 한 기술업계 관계자로부터 AI가 향후 7년 안에 인간 질병의 90%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건 완전히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Vertex는 지금까지 약 50개의 AI 기업과 협력해 회사가 보유한 약 1만개의 화합물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러나 라이든에 따르면 이들 AI 기업 가운데 실제로 작동하는 새로운 약물을 만들어낸 곳은 없었다.

그는 "AI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AI만으로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회사가 있다면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경험에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AI가 쓸모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약업계가 AI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형 제약사는 이미 AI를 신약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AI는 질병 치료의 표적을 찾고, 실험용 신약의 구조를 조정하고, 특정 치료제가 어떤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일지 분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라이든 역시 AI를 과학자의 '코파일럿'으로 표현했다.

문제는 AI가 인간 과학자를 완전히 대체해 독자적으로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AstraZeneca "질병과 생물학은 복잡하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최고경영자 파스칼 소리오(Pascal Soriot)도 AI 낙관론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 산업에서 오래 일하면 자연스럽게 겸손해진다"며 "질병은 복잡하고 생물학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암을 치료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큰 도약"이라고 평가했다.

AstraZeneca 역시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AI 바이오기업 Insitro와 심혈관 및 비만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금으로 4000만달러를 지급했다.

Oracle과도 협력해 임상시험에 적합한 환자를 더 빠르게 모집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AI가 약을 '설계'할 수는 있지만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해

신약개발에서 AI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속도다.

AI는 막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분자를 설계하고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데 인간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보물질을 만들어내는 것과 실제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을 개발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맥킨지(McKinsey)에서 AI 신약개발을 담당하는 알렉스 데버슨(Alex Devereson) 수석파트너는 AI가 실험용 약물을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설계할 수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약물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오프타깃'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 중·후반 단계 실패의 상당 부분은 안전성 문제에서 발생한다.

약물이 목표로 한 단백질이나 세포에만 작용하지 않고 다른 생물학적 경로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오프타깃(off-target)' 효과 때문이다.

이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나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신약개발 중·후반 단계 실패의 약 4분의 1이 이런 안전성 문제와 관련돼 있다.

현재 AI 모델들은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보다 쉬운 문제에 돈이 몰린다"

데버슨은 현재 AI 신약개발 투자의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투자가 가장 중요한 문제보다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분자 구조를 설계하거나 논문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인간의 몸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수년 동안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은 훨씬 복잡하다.

결국 신약개발의 가장 어려운 단계는 AI만으로 쉽게 단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I 신약개발 투자 84억달러

그럼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맥킨지 자료에 따르면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가 AI 신약개발 분야에 투자한 금액은 2025년 약 84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불과 2년 전 약 40억달러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Insilico Medicine과 Generate Biomedicines 등 AI 기반 바이오기업 일부는 자체적으로 설계한 신약 후보를 임상시험 후기 단계까지 진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FDA 승인을 받은 AI 설계 신약은 없다.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공격적

제약업계의 신중한 태도와 달리 실리콘밸리는 훨씬 낙관적이다.

Anthropic의 아모데이는 지난 9월 X에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5~10년 안에 대부분의 인간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Anthropic은 올해 비공개로 운영되던 바이오기업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거의 모든 업무를 AI로 수행하는 1인 바이오기업도 인수했다.

OpenAI 역시 지난달 AI 기반 신약개발 바이오기업을 인수했다.

AI 기업들이 신약개발을 차세대 대형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제약사들도 AI기업과 손잡아

대형 제약사들도 기술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Eli Lilly와 Nvidia는 올해 1월 향후 5년 동안 최대 10억달러를 투자해 신약개발과 로봇공학 분야에서 AI 활용을 연구하기로 했다.

Bristol Myers Squibb와 Novo Nordisk, Sanofi 역시 OpenAI나 Anthropic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제약사들이 AI를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AI가 신약개발 전 과정을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특정 단계에서는 상당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Regeneron "15년을 5년으로 줄이진 못한다"

리제네론(Regeneron) 최고과학책임자인 조지 얀코풀로스(George Yancopoulos)도 비슷한 입장이다.

10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그는 AI가 연구실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혁명적인 시간 단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마법처럼 나타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15년 걸리는 일을 5년으로 줄여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 하나를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여전히 장기간의 실험과 임상시험, 규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FDA도 AI 활용 규정 마련

미국 규제당국도 AI 활용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FDA는 최근 AI를 이용한 규제자료 제출과 임상시험 데이터 분석에 대한 새로운 관리체계를 제안했다.

그러나 규제절차를 효율화하더라도 신약개발의 핵심 병목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합한 환자를 충분히 모집하고 장기간 건강상태를 관찰하며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해야 하는 과정은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Bayer, 환자 1억명 데이터 며칠 만에 분석

AI가 확실한 장점을 보여주는 분야도 있다.

Bayer의 유전자치료 연구팀은 최근 약 1억명의 환자 기록을 AI로 분석했다.

AI는 유전적 특징과 환자의 병력 데이터를 며칠 만에 분석해 회사의 유전자편집 기술을 적용하기 가장 적합한 질병 5개를 찾아냈다.

사람이 같은 규모의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다.

"AI가 질병을 치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Bayer 최고운영책임자 세바스찬 구스(Sebastian Guth)는 이 사례조차 AI가 질병을 치료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AI 자체가 질병을 치료했다는 의미냐면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짜 마법은 뛰어난 인간 과학자와 AI를 결합할 때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재 제약업계가 AI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인간 생물학이 마지막 장벽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단백질 구조 예측과 데이터 분석, 분자설계 능력은 크게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단순한 데이터 집합이 아니다.

같은 약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고, 하나의 생물학적 경로를 조절하면 다른 예상치 못한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질병 역시 단일 원인보다 유전자와 환경, 면역체계, 생활습관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제약회사들이 AI 낙관론에 신중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복잡성이다.

AI는 신약개발의 '가속기'

현재까지의 실제 활용사례를 보면 AI는 신약개발을 완전히 대체하는 기술이라기보다 속도를 높이는 도구에 가깝다.

연구자가 수개월 동안 찾아야 할 데이터를 며칠 만에 분석하고 수많은 후보물질 가운데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선별하는 데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 인간에게 투여했을 때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확인하는 단계에서는 여전히 인간 과학자와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와 제약업계의 온도차

현재 AI와 신약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두 산업이 바라보는 문제의 차이를 보여준다.

실리콘밸리는 컴퓨팅 능력과 AI 모델 성능이 빠르게 발전하면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생물학적 문제도 결국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제약업계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인간 생물학이 단순한 계산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AI 신약개발 시장에는 이미 수십억달러의 자금이 들어가고 있고 대형 제약사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AI가 설계한 신약 가운데 FDA 승인을 받은 약은 하나도 없다.

AI가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실제로 올 가능성을 제약업계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은 실리콘밸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인간 과학자의 역할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약업계의 현재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