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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북한이 우리 정부가 주창해온 단계적·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에 어느 정도 호응해 나온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이 같은 언급에 상당한 의의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5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측에서 우리측에게 하는 얘기의 기본적 방향이 그 말 속에 다 집약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 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의 ‘작은 통일' 추진 움직임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내비쳤다. 정부는 사회·문화 및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면서 남북을 점차 실질적인 경제 공동체, 문화 공동체로 묶는 '작은 통일'을 실현하고 장기적으로는 정치 통합의 '큰 통일'로 나아가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드레스덴 제안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된 사업들이 앞으로 추진 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2차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순항한다면 북한 농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복합농촌단지 건설, 임산부·영유아 지원 패키지 프로그램 제공 등 인도적 지원 확대, DMZ(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및 북한 산림녹화 사업 등 생태 분야의 협력, 광복 70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 개최, 남북러·남북중 경제협력 사업 등의 전개를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 막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마련된 상황에서 아직 북한의 태도를 예단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도 아직은 지나친 기대를 하고 접근하기보다는 2차 고위급 접촉까지 상황 관리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대화 동력이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6일 정부 당국자는 "북한도 자기들식의 접근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타협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다는 뜻에서 오솔길 언급이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며 "다만 북한의 기본 인식이 바뀌었다고 볼 순 없고 우리 생각과 바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너무 나간 것 같다” 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한편,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바라보는 미국의 기류는 복합적이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고 한반도 긴장국면이 완화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관계개선은 어렵다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밤 논평을 내고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및 통일구상에 긍정적 반응을 보여왔던 만큼, 이번에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우리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방남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며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제시한 대로 작은 단계를 밟아가며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중동과 우크라이나, 에볼라 등의 긴급 현안에 대처하는 데 여념이 없어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해나가는 데 특별한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방향과 속도에 일말의 경계심도 표출되고 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는 북한과 근본적인 관계개선이 쉽지 않으며 자칫 북한의 '초점 흐리기'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보수 성향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이번 방한은 남북한 간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한국이 핵과 미사일을 거론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저해하는 것처럼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정부 내의 많은 사람이 이번 방한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한국이 북한을 다루는 데서 좀 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방한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맞춰온 정책에 차질을 주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번 방한은 한·미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이번 방한이 남북 고위급 대화재개의 모멘텀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양측의 모호한 태도로 미뤄볼 때 실질적 관계 진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특히 북·미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전환 과정에서 미국이 '고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면 6자회담 재개에 전제조건을 단 미국이 갈수록 고립화될 것"이라며 "한·미·일 3국이 입장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겠으나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에 진전을 이룬다면 여의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