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10일 타결됐지만 국내 산업계는 기대와 우려 속에 제대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Like Us on Facebook


정부가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고 밝힌 농축수산 분야와 달리 우리의 주력 수출 분야인 공산품에 대해서는 세부 내용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자 수입국으로 중요한 만큼 기업들이 대응책 수립을 위해 나름대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중국 소비재시장 공략의 주력 주자로 장밋빛 기대를 모은 대표 한류 상품의 일부는 중국의 빗장에 계속 걸리거나 장기 관세 철폐 대상으로 분류돼 애초 기대한 FTA 효과를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에 맞춰 서둘러 FTA를 타결하면서 우리 측이 양보한 부분을 자세히 공개하기를 꺼리거나 일부 합의 내용이 모호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한중 FTA 협상에서 다룬 우리 측 1만2천여개의 공산품 가운데 30여개만 그 결과를 공개했다. 중국 측의 공산품 개방 계획에 대해서는 50여개 품목만 제시했다.

농산물의 경우 품목별 양허(관세 철폐) 대상과 방식을 자세히 공개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과 중국은 자동차에 대해서 모두 현행 관세 장벽을 유지하기로 합의했지만 애초 정부의 발표 자료에서 빠져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 공을 들이는 완성차업계가 협상 결과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한중 FTA 타결 내용만을 갖고는 정확한 득실을 따지기 어렵고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목소리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떤 품목에 대해서 관세가 몇 년 후에 어떻게 없어지는지 정확한 정보가 없어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도 "자동차부품은 중국의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하는 데 세부 내용을 알 수 없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도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자동차부품 중에 기어박스, 핸들, 클러치가 중국 측의 관세 철폐 제외 대상에 포함됐다는 내용을 타결 발표 하루 뒤인 11일에야 공개했지만 다른 부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류 상품의 수출에 대해서도 낙관적 전망만 하기에는 쉽지 않다. 피부관리 화장품, 샴푸, 린스는 중국 측의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돼 현행 관세 장벽이 거의 유지된다. '천송이 코트'와 같은 여성용 코트·재킷, 냉장고, 에어컨, 밥솥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은 제품은 10년에 걸쳐 관세가 점차 없어진다.

다만 두 나라가 48시간 통관 원칙, 화장품 분야의 시험검사기관 상호 인정 등 비관세 장벽의 완화에 합의해 수출 촉진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품목별 원산지 기준(PSR)의 구체적 내용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원산지 기준은 상품의 국적을 가려 특혜 관세를 적용하는 것으로, 그 기준에 따라 양허 품목의 관세 철폐를 무력화할 수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우리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ISD는 투자 유치국이 FTA 협정상의 의무나 투자 계약, 투자 인가를 어겨 투자자가 손해를 봤을 때 해당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양국은 기존 한중일 투자보장협정을 준용해 ISD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투자 인가 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ISD를 적용한다. 예컨대 우리 기업의 투자 준비 단계에서 중국 정부의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투자 계획이 무산돼 피해를 볼 때는 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중국 투자액(신고 기준)은 지난해 32억9천만 달러로 중국의 대한국 투자액 4억8천만 달러보다 월등히 많은 정도로 한국 기업의 투자가 활발하다.

반면 한미 FTA에서는 정식 투자가 이뤄지기 전인 투자 계약과 인가도 ISD 제소 대상에 포함해 국내에서 미국 투자기업의 공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중 FTA 가서명을 위해 합의 내용을 정리하고 조문화하면서 기업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