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지난해 사상 첫 800만대 판매를 돌파하고도 4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글로벌 5위 기업에 맞게 외형은 키웠지만 정작 내실은 다지지 못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장사를 잘했지만 엔저와 원화 강세, 러시아 루블화 폭락 등 외부 요인이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외변수 탓만 할 수는 없다. 이런 요인들은 단기간 불거진 문제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인데다, 다른 완성차업체도 똑같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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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대·기아차가 보다 근본적인 성장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세계 5위의 위상에 걸맞게 연구개발(R&D) 투자 강화와 원가절감 등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 영업이익률 해마다 뒷걸음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실적은 나란히 4년 전으로 후진했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9.2% 하락한 7조5천500억원, 기아차는 19% 감소한 2조5천72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두 업체의 영업이익은 모두 2010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원·달러 평균 환율이 전년보다 41원 하락하고, 러시아 루블화가 50% 이상 폭락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보다 기아차의 영업이익이 더 크게 하락한 것은 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은 44%로, 글로벌 경쟁사 평균인 75%와 현대차의 64%에 훨씬 못 미친다. 국내공장 생산분은 수출할 때마다 환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업이익률도 해마다 뒷걸음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2010년부터 미국시장 등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제값받기' 정책을 추진했다. 이 덕분에 2010년 8.8%이던 영업이익률은 이듬해인 2011년 10.3%까지 높아졌다. 2012년에도 10.0%를 유지했으나 2013년에는 9.5%, 지난해에는 8.5%로 떨어졌다.

물론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다른 세계적 업체와 비교해보면 BMW(12.0%·3분기 누적 기준), 도요타(9.2%)에 이어 3위 수준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더 우려되는 대목이다.

먼저 제값받기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1년에 현대차가 제값받기를 하면서도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엔화도 강세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일본 업체들은 엔저를 등에 업고 딜러들에게 파격적인 판매장려금(인센티브)을 지급하며 대대적인 판촉 공세를 벌이고 있다.

현대차도 이에 맞서 미국시장에서 인센티브를 대당 1천377달러에서 1천728달러로 25% 올렸다. 이는 업계 평균 인센티브인 2천787달러의 60% 수준이지만, 이전만큼 차 값을 받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차 값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건비 등 비용이 늘어나게 되면 수익성은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 주요 시장 점유율도 '후진 중'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800만대를 돌파하며 선전했지만, 도요타와 폴크스바겐은 사상 첫 1천만대 판매를 넘어섰다. GM도 992만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동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다른 경쟁업체들도 다 같이 선전하면서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7.9%로 4년 만에 8% 아래로 떨어졌고 2012년부터 10%대를 유지하던 중국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9.3%로 하락했다. 유럽시장 역시 전년보다 0.2%포인트 하락한 6.0%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업체들은 앞다퉈 R&D 투자와 원가절감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쉽게 점유율 격차를 줄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요타는 생산 플랫폼 공용화 기술인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를 올해 처음으로 공정에 적용한다.

TNGA가 적용되면 기존에 서로 다른 차종을 각각의 플랫폼에서 생산하던 것을 앞으로는 플랫폼 3∼4개에서 전체 차종의 60%를 생산할 수 있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폴크스바겐은 차급이 다른 모델도 부품을 공용할 수 있는 플랫폼 MQB(가로배치 엔진 전용 모듈 매트릭스)를 이미 개발했다.

현대·기아차도 오는 2018년까지 공장증설과 R&D 등에 80조7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투자 계획이 한발 늦은 감이 있다고 평가한다.

올해는 아반떼와 투싼 등 신차 출시를 통해 점유율 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신차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현대·기아차의 고민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새로운 신기술을 가진 신차종을 많이 출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인건비 등 원가절감을 통해 전반적인 경쟁력을 키워야만 글로벌업체들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