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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경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인 화제로 자리잡았다. 요즘엔 중학생만 되어도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간간이 '스티븐 잡스'라고 답할 정도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기업가는  성인이나 정치인 못지 않게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대중은 기업의 성과만큼이나 그들의 인격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또 매료되기도 한다.

◎ 정체할수 없다.... 교황에게 장난전화 거는 자신감

애플신화의 주역인 스티븐 잡스는 '스타 경영인’으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망한지 이미 4주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애플의 트레이드 마크와같은 존재이며 잡스 신드롬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의 개인적인 성격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특히 대학시절 공짜 장거리 전화 장치인 '블루박스'를 만들어 유통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의 블루박스는 불법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전화를 사용하는 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잡스의 사업 파트너이자 애플의 컴퓨터 개발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우리는 블루박스로 바티칸의 교황에게 장난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잡스가 젊은시절 히피문화에 깊이 심취했던것 역시 유명하다. 실제로도 잡스는 애플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LSD(항정신성 마약)을 해봤나?", "밥 딜런이 나의 역할모델이다. 딜런은 결코 정체하는 법이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그의 불법적인 사업 아이템과 권위를 조롱하는 행위를 기존 체제에 대항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성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프트뱅크를 이끌고 있는 손정의 (손 마사요시)는 재일교포 3세로 어려운 어린시절 보냈다. 할아버지는 광산노동자로 살았고 할머니는 리어카로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그것으로 닭과 돼지를 키웠다. 다만 그의 아버지는 손정의가 어렸을때부터 입버릇처럼 "너는 천재다"라는 말을 주입시켰으며 그 덕분에 손정의는 나중에 "하도 그런 소리를 듣다보니 정말 내가 천재라고 믿게 되었고, 그것이 훗날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라 회상했다.

손정의는 19세에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20대에 이름을 날리고, 30대엔 1천억의 군재금을 마련하고, 40대엔 사업에 승부를 건다, 50대엔 연1조엔 매출의 사업을 완성하고, 60대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얻은 자신감 덕분인지 그는 이 계획을 지금까지 완벽하게 이루어 나가고 있다.

◎ 쌓아올린것에서 탈피하는 혁신

잡스를 대표하는 단어는 '혁신'이다. 애플의 뿌리는 PC제조 였지만 잡스는 애플이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시장을 찾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애플 혁신의 대표적인 예로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실현한 '아이폰'을 꼽을 수 있다. 기존에도 IBM의 '사이먼'이나 에니콜의 PDA등 스마트폰의 원형은 존재했지만 이는 전화기라기 보단 소형화된 PC의 개념에 가까웠다. 때문에 주 구매대상이 전문가에 한정되었고 큰 시장을 형성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애플은 대중에 '작은 PC'가 아닌 '새로운 전화기’로 개념을 전환했고, 이를 통해 더 큰 시장을 개척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이먼과의 기술 수준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 영향력은 비할바가 되지 못했다.

손정의의 소프트 뱅크는 소프트웨어 유통과 IT투자를 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성공적인 합병과 투자의 경영모델로 더 유명하다. 90년대 후반, 닷컴버블이 붕괴하며 야후 인수를 통해 주목받았던 소프트뱅크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빌게이츠에 이어 세계적인 갑부 2위였던 손정의는 이후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이 100분의 1로 하락하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손정의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본 보다폰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보다폰은 일본 통신업계에서 3위에 머물렀기에 소프트뱅크의 보다폰 인수 소식이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인수건을 통해 인터넷통신업체에서 이동통신사업업체로 거듭난 소프트 뱅크는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며 더 큰 기회를 잡았다. 아이폰이 출시되기도 전에 일본에서의 독점 계약권을 따낸것이다. 결국 지난해 말, 소프트 뱅크는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인 NTT를 누르고 이동통신업계 일본 국내 1위로 올라섰다.

애플과 소프트뱅크 모두 작은 기업은 아니었고 굳이 신규 사업을 추진하지 않아도 기존의 매출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영자의 혁신과 용기를 덕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PC를 거쳐 WWW, 모바일로… 그런데 왜 한국엔 재벌밖에 없는가?

스티브 잡스는 1955년생, 손정의는 1957년생이다. 이들이 사업을 일으키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다. 지면엔 이 두 사업가만 소개를 했지만 이 시기엔 IBM과 HP, 마이크로소프트 등 쟁쟁한 기업들도 태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업을 물려받아 재벌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현대그룹 역시 이 시기를 발판삼았다. 그리고 90년대 와 21세기 이후로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거대기업이 계속해서 탄생했다. 페이스북, 페이팔, 트위터, 알리바바 등 웹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들이 분기 매출 3조가 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제2의 주커버그를 꿈꾸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열기를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국내 최고의 기업은 삼성과 현대고, IT기술을 무기삼아 도전한 벤처기업중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네이버, 다음∙카카오 정도다. 이 두 기업도 한 번도 시가총액 1위를 해보지 못했다. 결국 한국의 경제는 재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던 것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아이디어도 재벌과 기존 시장에 의존하는데서 그친다. 성장하는 기업은 재벌의 계열사밖에 없고, IT업계의 신성으로 등장한 '배달의 신', '요기요'도 새로운 수익을 개척하는 것이 아닌, 개인사업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하는 구조를 고수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잡스와 손정의의 유별난 자신감과 낭만, 그리고 과감한 결단은 낮설게 느껴진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경쟁적이고 획일적인 태도가 유연한 사고와 자존감의 발달을 억제한다"고 지적한다. 젊은이들에게 혁신을 일으킬만한 비전과 자신감이 없기에 대한민국의 경제마저 더 큰성장의 기회를 놓쳐 정체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능력있는 대학생들마저 선호 직업 조사에 1순위를 공무원. 2순위를 대기업 입사로 적어내고 있으며, 서비스업종으로 창업 하는 젊은이도 프렌차이즈에 기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경향은 초등학생에게도 발견되고 있어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