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진규 기자] = 한때 대한민국 국민들도 자신이 '중산층'임을 자처하던 적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모두가 한국의 경제전망에 낙관적이었고 더 잘살게 될거라 믿었다. 하지만 1997년 IMF금융위기가 터진 뒤 국민들은 급격하게 '서민'의 정체성을 찾아입기 시작했다. 이제 대기업의 오너나 고위 공직자처럼 지배계층에 있거나, 극빈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서민으로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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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부총재 데이비드 립튼은 4일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주최의 세미나에 참석해 '소득불평등과 재정정책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점점 커지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며 "재분배 정책으로 이들을 재건해야 한다"는 요지의 조언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준는 지니계수는 1990년 0.26에서 2010년 0.31로, 상대빈곤율 비율은 9%에서 15%로 상승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연령대별 상대빈곤율과 성별임금격차도 크게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노년층으로 갈수록 상대빈곤율이 급상승하면서 65세 이상 노인 상대빈곤율(2010년 기준)이 47.2%에 달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성별 임금 격차도 39.0%(2011년 기준)로 강연자료에 제시된 25개국 중 가장 컸다. 두 번째로 격차가 큰 일본 29%와도 10%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립튼 부총재는 "수십년간 많은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불평등이 심해지는 나라는 성장이 느려지고 반대로 덜 불평등한 나라는 빨리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점점 악화되는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소득재분배 정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나 보조금 등에 돈을 쓰는 것이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건강이나 교육에 비용을 지출하면 저소득층에게 도움이 돼 이들이 (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도 재분배를 위해 공공사회적 지출을 늘려야 한다"며 "단순히 재분배를 넘어서 (소득·직업·교육에 있어서 계층 간) 사회이동성을 늘리고 중산층을 재건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다만 "효과적인 재분배를 위해서는 관련 정책이 거시경제 목표와 일치해야 하며 조세와 재정 정책의 효과는 서로 연관돼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립튼 부총재는 "현재 세계 경기 회복세가 매우 약하고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면 국제유가의 하락과 환율조정"이라며 "특히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것은 한국과 같은 석유 수입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나쁜 소식으로는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회복세가 완만히 늦어지고 있다는 것과 대부분 신흥시장국의 잠재적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 재무차관이었던 립튼 부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고 구제금융 계획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서울대에는 이번에 처음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