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5)의 유족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넴초프의 딸 잔나(30)는 1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푸틴의 최대 비판자였고 야권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였다"며 정치적 의미에서 넴초프 피살의 책임은 푸틴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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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초프 장례식 후 외국으로 도피해 이탈리아에 지내고 있던 잔나는 아버지 피살 이후 야권 분위기와 관련, "야당은 힘을 잃었고,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며 "아버지처럼 정부와 맞설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가진 인물이 없다"고 전했다.

잔나는 사건 수사와 관련 "러시아 기관의 수사에 전혀 믿음이 없다"면서 "러시아에는 사법, 독립적 법원, 독립적 수사 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기관은 진실을 밝히는 데는 관심이 없다면서 수사관들이 자신의 진술을 듣기 위해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대신 자신이 아버지의 아파트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넴초프가 숨진 날 밤에 그의 아파트에 있던 모든 기기와 문서들을 압수해갔다고 전했다.

넴초프의 아파트에는 피살 사건의 동기 중 하나로 추측되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관련 자료들이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잔나는 수사 당국이 넴초프 살해 사건의 동기를 종교적 이유로 몰아가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러시아 남부 체첸 자치공화국 내무군 부대대장 출신의 자우르 다다예프가 넴초프의 이슬람 비판 발언에 분노해 배후없이 독자적으로 범행했다는 잠정 수사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체첸과 이웃 다게스탄, 잉구셰티야 등에선 아버지를 존경했다"며 "아버지가 1990년대 체첸과 러시아의 전쟁을 중단시키는데 도움을 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넴초프 살해의 주요 원인은 그가 푸틴 정권과 지속적으로 투쟁하면서 정권을 비판한 때문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 당국, 피의자 고문 의혹 제기한 인권운동가들 연행 시도 

당국은 현재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체첸 출신 다다예프를 비롯한 5명의 용의자를 붙잡아 구속수사하고 있다. 

다다예프는 조사 과정에서 넴초프 살해 혐의를 시인했고 넴초프가 러시아내 무슬림과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치소를 방문해 다다예프 등 3명의 피의자들과 면담한 인권운동가들이 수사 당국의 회유와 고문으로 피의자들이 허위 자백을 했다고 폭로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구치소 및 교도소 내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시민감시위원회' 부위원장 에바 메르카체바는 야권 성향의 '도즈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다다예프가 전날 구치소를 방문한 인권운동가들에게 가장 먼저 팔과 다리 등의 멍과 상처 등을 보여주면서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다다예프는 남부 잉구셰티야에서 자신을 체포한 수사관들이 이틀 동안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사를 하면서 식사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직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 했다면서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혐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잉구셰티야에서 모스크바로 이송되기 전까지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팔목과 다리에 남은 수갑과 족쇄의 흔적을 보여줬다. 이송과정에서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웠다고도 전했다.

다다예프는 수사관들이 반복적으로 '네가 넴초프를 죽였나'라고 다그쳐 '아니다'고 계속 답했지만 혐의를 인정하면 함께 체포된 옛 내무군 근무 시절 부하를 풀어주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다다예프를 면담했던 메르카체바와 대통령 산하 인권위원회 위원장 안드레이 바부슈킨의 집과 사무실에 11일 저녁 수사관들이 찾아와 이들을 연행하려했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메르카체바와 바부슈킨은 그러나 당시 현장에 없어 연행은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연방수사위원회는 인권운동가들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확산하며 파문을 일으키자 메르카체바와 바부슈킨을 수사 방해 혐의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