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4선에 성공했다.
우즈베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0일 전날 치러진 우즈벡 대통령 선거 관련 브리핑에서 "카리모프 대통령이 득표율 90.39%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앞서 총 투표율은 90.01%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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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27년째 권좌를 지키는 인물이다. 국제사회에선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38년 1월30일 실크로드의 중심지 사마르칸트에서 타지크족 어머니와 우즈벡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카리모프 대통령은 올해로 만 77세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옛소련 시절 우즈벡 공화국의 재무장관 등 다양한 요직을 거치고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 6월 우즈베크 공화국 공산당 서기장에 오르며 집권을 시작했다.
그는 1991년 9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서 같은 해 12월 시행된 대선에서 우즈벡 초대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1995년 3월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임기를 2000년까지로 연장했다.
카리모프는 이후 2000년 1월 대선에서도 압도적 승리를 거뒀으나 서방 선거감시단은 이 선거를 자유롭거나 공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수행을 위한 미군의 자국 내 주둔을 허용, 미국의 '동맹국'이 됐다.
2002년 1월에 또다시 국민투표를 시행,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늘렸다.
주변국인 키르기스스탄에서 시민혁명인 '튤립혁명'이 일어나 장기집권해오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쫓겨난 지 2개월 후인 2005년 5월 우즈벡 동부도시 안디잔에서도 튤립혁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군이 시위 참가자들에게 발포하며 대규모의 사상자가 나왔다. 목격자들은 무고한 시민 수백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당국은 희생자 대부분이 테러리스트와 정부군으로 사망자는 고작 187명뿐이라고 맞섰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이후 '안디잔 사태'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우즈벡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이에 카리모프는 자국에 주둔하던 미군기지를 폐쇄했고 그 후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했지만, 작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혹시 모를 러시아의 침공을 우려해 최근 들어 다시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도 카리모프는 88% 이상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카리모프는 한때 건강악화설이 돌며 이번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현지에서 돌았지만, 보란 듯이 4선에 성공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앞으로 5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