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실기업 잡기' 시작됐다.

대기업 19곳이 채권은행 주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올 상반기에 선정된 35곳을 합하면 올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총 54개로, 2010년(65개) 이후 최대 규모다.

채권은행들은 지난달부터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 중 잠재 부실위험 가능성이 있는 368곳을 대상으로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벌였고, 그 결과 총 19개 대기업이 구조조정 대상(C∼D등급)으로 선정됐다. 업종별로는 철강이 3곳으로 가장 많았고, 조선·기계제조·음식료 부문이 2곳씩 포함되었으며, 건설·전자·석유화학·자동차·골프장 업종에서는 각 1곳이 새롭게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금감원은 이날 구조조정 대상 기업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최근 워크아웃 돌입이 결정된 동아원[008040] 등 상장사 3곳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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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위험도는 A∼D의 네 개 등급으로 나뉜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C∼D등급으로, 이 분류에 들어가는 기업은 워크아웃 (기업재무구조개선)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대상이 된다. C등급은 '부실 징후는 있으나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 채권금융기관 주도 워크아웃을 통해 금융지원을 받는 동시에 자구계획 이행을 추진하게 되며. D등급은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으로, 추가적 금융지원 없이 자체적 정상화를 추진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을 정부로부터 요구받게 된다. 다만 C그룹 역시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거나 자구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신규 여신이 중단되고 기존 여신도 회수되는 등 엄정한 조치를 받게 된다.

정부가 앞장서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과도한 부실화가 국내 은행 건전성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175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금융권 신용공여액은 총 2조 2,204억 원이었으며,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돼도 자산건전성이 재분류되어 은행권이 약 4,505억 원의 대손충당금 (어듬, 외상매출금, 대출금 등 채권 공제 형식으로 계산되는 회수불능 추산액) 적립이 필요하게 된다.

이번에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된 19개사에 대한 금융권 신용공여액은 총 12조5천억원으로, 은행권 공여액(12조2천500억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기업 구조조정 추진으로 은행권이 추가로 적립해야 할 대손충당금은 1조5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충당금 적립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금감원은 추산했다. 다만 충당금 증가에 따른 은행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 하락폭은 0.03% 포인트로, 은행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수준이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시장 논리에 맞지 않다?

정부는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제조업이 성장에 한계를 맞은 탓에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늘고 있다며, 미국의 기준 금리 상승으로 기업대출로 인해 은행이 받는 부담이 더 커지기 전에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분류에 따르면 좀비기업 수는 2009년 2천698개에서 지난해 말 3천295개로 증가했으며, 국내 은행권의 대출에 대한 기업의 9월 말 연체율 역시 1.00%로 전월 말보다 0.04% 포인트 내려갔지만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0.10%포인트 상승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에 C∼D등급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잠재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으며, 우선 B등급을 유지한 23개사를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대상 기업으로 선정해 자구계획 이행실적을 점검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지나친 개입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국가미래연구원 이재우 연구위원은 "국책은행인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상업은행을 동원해 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으며, 실질적 금산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선 은행을 주주로 둔 회사가 부실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돼 이권개입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