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기독교 변증가이자 스코틀랜드의 목회자인 데이빗 로벗슨(David Robertson) 목사는 최근 영국 기독교 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What to say when someone asks for proof of God's existence)"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서 무신론자들이나 불가지론자들은 증거가 없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제시해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증거를 제시하면 정말 믿을 것이냐고 반문했다. 칼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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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가 충분하지 않아요."

이 말은 매우 합리적인 것 같다. 사람들은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야 하느냐고도 한다.

반신론자(anti-theism)라고 불리는 '강경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주장을 방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보다 온건한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충분하면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불가지론자들이다.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모른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겸손해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이들은 충분한 증거가 없어서,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당신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에게 충분한 증거와 정보를 준다면, 나도 믿을 것이라고 한다. 

이 입장은 영국의 철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에 의해 가장 잘 진술됐다. 그는 자신이 만약 죽은 후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라고 묻는다면, "충분한 증거를 제공해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죠"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무관심, 냉담이 주된 생각이다. 많은 친구들은 밤에 침대에 누워 삶의 의미를 숙고하지 않을 것이며 실존적 불안으로 고통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게임이나 내야 할 고지서, 그리고 병원에 가는 일에 더 염려할 것이다.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에서 쿠바 구딩 주니어(Cuba Gooding Jr.)가 톰 쿠르즈(Tom Cruise)에게 "돈을 보여달라(show me the money)"고 요구한 것처럼,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악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증거를 보여달라(show me the evidence)"는 말을 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한 지역 신문에서 한 무신론자 저자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그는 우리는 자녀들을 오직 증거에 기초한 사실에 대해 가르쳐야 하며 기독교는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 사학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오만(교만). 겸손하고 합리적인 요청으로 보이는 이 요청의 배후에는 실제로는 엄청난 교만이 숨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내놓는 사람은 자신이 증거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중립성과 지성, 그리고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자신을 재판관 위의 재판관의 위치에 놓고 있다. 

일반적인 주장은 "X나 Y나 Z를 행하는 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증거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내가 첫 번째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왜 자신이 그러한 증거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당신은 겸손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십자가에 무릎을 꿇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사랑과 자비가 만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버트런드 러셀이 심판의 날 심판애 앞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증거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핑계치 못할 이유다. 그는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눈 먼 자였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편견. 매우 빈번하게,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증거가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음모 이론가와 논쟁을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던지, 자동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다며 묵살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음모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특정 문제에 대해 답하거나 특정 증거를 제시하면 질문을 한 사람은 즉각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림으로 질문했던 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것을 발견해왔다.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쓸데 없는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증거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증거를 제시하면 하나님을 받아들일 각오가 된 증거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라. 

리차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것이 거의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거대한 손이 하늘에 "나는 존재한다"고 쓴다면, 그들은 (이것을 쓴 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기보다) 이것을 설명할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전능한 인격적인 창조주를 믿는 것 외에 무엇이든지 말이다.

빅뱅이 증명되었을 때, 성경이 말하고 있는대로 우주가 실제로 시작점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무신론자들은 그들이 처음에 거부했던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 상황이 말해주는 명백한 의미에 대해 회피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증명되지 않은 다중우주론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다중우주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그들의 철학을 나는 '애브기즘(ABGism, Anything But God, 하나님 외에 무엇이든지)'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증거가 없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욕망에 감정적으로 이끌리고 있다.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본다. 그러나 현실에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요청할 때, 그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 모나리자의 복잡함과 섬세함에 대해 감탄하며 칭찬하라는 것과 같다. 죽은 돌에게 말을 걸고, 이들 돌에게 춤을 추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에게 살아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복음전도자들, 설교자들, 기독교인들을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성경을 아는 자들에게는 예외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 눈 먼 자를 보게 하고,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성령의 권능으로 다이나마이트처럼 역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아니다. 성령께서는 항상 도구들을,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생각을 통해 마음에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하면서 모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우리가 제시하는 증거를 사용하셔서 이 증거에 대해 듣는 자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이들이 사도 바울처럼 다메섹의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의 산(Mount Improbable)을 한 순간에 뛰어넘는 한 번의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여러 요인들을 사용하신다. 증거나 경험, 성경, 우연의 일치, 친구, 원수와 가족들까지.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유명한 미국 드라마 <엑스 파일(The X-Files)>의 모토인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라는 모토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성적인 불가지론자들은 그 진리를 찾는 자들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 진리를 제시하려는 이들이다.

<도킨스에게 보내는 편지(The Dawkins Letters)>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기독교가 진리라고 믿는 10가지 다른 이유들을 제시했다. 천지창조(The creation), 인간의 마인드와 영(the human mind and spirit), 도덕법(the moral law), 미(beauty), 종교(religion), 경험(experience), 역사(history), 교회(the church), 성경(the Bible), 그리고 예수(Jesus)다. 우리도 우리의 리스트들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지적으로, 매력적으로, 그리고 통찰력 있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중요한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추천하는 책은 조시 맥도웰(Josh McDowell)의 <평결을 요구하는 새로운 증거(New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라는 책이다. 길지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을 다수 담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기도와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제시하려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져 있고, 말씀에 대해 눈 먼 자와 귀가 닫힌 자, 그리고 벙어리가 된 자들에게 문화적 맥락에서 그것을 제시하는 법을 아는 자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할을 잘 감당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증거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바로 그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