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대로 추락한 영향으로 휘발유 판매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훌쩍 넘어섰다.

2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기준으로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 값은 리터당 평균 1,391.9원인데, 여기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2.7%(872.4원)다. 휘발유 5만원어치를 주유하면 이 가운데 3만1천350원은 세금이란 얘기다.이런 비중은 2009년 1월 셋째 주(63.9%)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휘발유 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46.6%에서 2013년 47.8%, 2014년 49.9%, 지난해 58.5%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가 하락세는 더 가팔라져 올해 연간 기준으로 보면 2005년(61.05%) 이후 11년 만에 세금 비중이 60%대를 넘어설 수 있다.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원유 가격과 관계없이 휘발유에 고정적으로 리터(ℓ)당 900원 가까운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유류세는 가격에 따라 변하는 종가세(從價稅)가 아니라 리터당 일정액이 매겨지는 종량세(從量稅)다. 흔히 유류세로 불리는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3종 세트가 745.9원이고 부가가치세 10%가 또 붙는다. 이달 둘째 주 기준 부가세는 126.5원이다.

여기에 원유 수입 당시의 관세 3%와 수입부과금 리터당 16원까지 고려하면 세금 액수는 좀 더 커진다. 때문에 국제유가가 더 떨어져도 휘발유 값이 리터당 1,300원 아래로 내려가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지난 21일 리터당 173.98원으로 1년 전의 305.23원보다 43%(131.3원) 하락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주유소 휘발유 값은 1,468.93원에서 1,376.56원으로 6.3%(92.4원) 떨어졌다. 시중 기름값 인하를 막는 주범으로 세금이 거론되면서 업계와 소비자단체 일각에선 유류세 인하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류세는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는 세금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안팎이던 2011∼2012년에 746원이었고 유가가 26달러였던 2000년에도 745원이었다. 2008년 국제유가가 140달러대로 치솟았을 때 한시적으로 10% 내려갔다가 복귀됐다. 유류세를 국제유가와 연동시키면 유가가 오를 때 세금도 올라 휘발유 값이 폭등하는 등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의 유류세는 국제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다. 전체 휘발유 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회원국 중 15번째로 높다. 이달 둘째 주 기준으로 보면 영국이 73.5%로 가장 높고 네덜란드(71.1%), 스웨덴(69.7%), 이탈리아(69.1%), 그리스(68.2%) 순서다. 우리나라보다 세금 비중이 낮은 나라는 캐나다(38.6%), 뉴질랜드(49.7%), 일본(52.9%) 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가 하락기에 나오는 유류세 인하 주장에 대해 정부는 반응하지 않는다. 임재현 기재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현재로선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나라의 유류세가 OECD 회원국과 비교해 높지 않고, 주요국 대부분이 유류세를 종량세로 걷고 있다"고 말했다.

유류세로 걷히는 세수는 매년 20조 원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