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온누리교회의 유진소 목사가 호산나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되고, 이후 미주중앙일보와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의 사례비에 대해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필자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분이 이와 관련해 한 분이 쓴 글을 보내주기도 했다. 필자는 그 글을 보면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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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기영합주의
글에서는 가장 먼저 유 목사가 사례비를 공개한 것에 대해 인기 영합주의라고 비판했다.
해당 글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엄청난 사례비를 받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론 그런 목회자들은 전체 목회자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한데도 말이다"면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형교회 목회자이면서 사례비를 적게 받는다고 대중매체를 통해 언급하여 인기를 얻고 자신들을 내세우는 목회자들이 있다"고 사례비를 적게 받는다고 언급해서 인기를 얻고 자기를 내세운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많이 받는다고 지적당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듯이, 조금 받는다고 내세우는 것도 수치스러운 모습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약간 다르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유 목사가 자신이 사례비를 작게 받는다고 자랑하거나 생색내듯이 말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유 목사에게 혹시 사례비에 공개해줄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답했을 뿐이었다. 물론 질문을 해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코멘트로 했으면, 또 사례비를 너무 많이 받아서 답을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필자는 유 목사가 사례비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인기 영합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기자의 질문에 충실하게 답하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2) 무례함
또 유 목사가 사례비를 공개한 것에 대해 "다른 목회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회사에서는 자신이 얼마를 받는지 동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서로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행하는 모든 것이 포악과 횡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완벽한 사실은 아니다. 요즘 미국에서도 월가 금융회사의 고위 임원이나 회사 최고경영자(CEO) 등의 연봉이 공개되는 것이 추세이며, 이들이 지나친 연봉을 받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대형교회 목회자도 별로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고위임원이나 CEO급이어서, 그들의 사례비에 관심이 높지 않은가?) 그래서 미국 대선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인상하고 자신의 연봉은 대폭 낮춘 CEO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례비를 공개한 것이 포악과 횡포라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다.
물론 연봉을 공개하고, 사례비 공개하는 것이 좋은 일도 못되는 것은 사실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공개하지 않으면, 너무 많이 받아서 못한다고 비판하니 그것도 딜레마다.
아울러 글에서는 "보통의 목회자들은 유 목사가 언급한 사례비조차도 못 받는 목회자들이 절반이 넘고 그 이상 받는다 할지라도 가족의 수와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턱없이 모자라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나마 은퇴하면 아무런 대책이 없는 가운데 있다"면서 "그런데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그만큼 받는데 작은 교회에서 그 정도면 많이 받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글은 사례비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되고, 목회자의 상황에 따라 오히려 많이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사례비를 적게 받는 것이 절대적인 미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가정적 상황과 필요에 따라 사례비가 많이 필요한 목회자가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이어 "유 목사와 같은 이들은 교회에서 받는 사례 외에도 책 인세와 강사료 그리고 집회를 통해 사례비 이상의 수입이 있는 분들이고 심지어 대형출판사의 실질적 소유주이기도 하다. 또한 한번 부흥회 같은 집회를 인도하면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사례비를 받는다. 더욱이 자녀를 다 키워놓고 노후에 별 걱정이 없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례비에 책 인세와 강사료, 집회 사례비 등이 왜 포함되어야 하는가? 사례비는 말 그대로 교회가 목회자에게 감사함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사례비를 말하는데, 그 외의 것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목회자가 책이 많이 팔려서 많은 돈을 벌어, 그것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베푼다면 그것이 꼭 나쁜 것일까? 유 목사 등이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신만 배불렸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한, 오히려 그 돈으로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열심히 도왔다면 세상의 악한 부자들에게만 돈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 성경에서는 부자를 죄악시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다윗, 솔로몬, 루디아 같은 인물은 부자였다. 다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지 않는 부자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자를 비판하기 보다, 올바른 방법으로 부자가 되지 않는 것을 비판해야 하며, 부자가 된 후에 베풀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필자는 또 사람들이 목회자의 사례비에 대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부당하게 사례비를 많이 받는다면 문제지만, 정당하게 땀흘린 댓가로 사례비를 많이 받는다면 그것을 꼭 죄악시해야 할까?
무엇보다, 목회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사역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존재와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있어야 하며, 우주적이고 역사적으로는 영혼구원과 세계선교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목회자들이 사례비를 많이 받든 적게 받든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 영혼구원과 세계선교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기에도 정신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와 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도의 사례비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특히 성경에서는, 에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고 하셨다. 다른 목회자가 사례비를 많이 받든 적게 받든 그것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 내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또 그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을까.
3) 수평이동 성장의 폐해
이 글은 사례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넘어서 대형교회 자체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 글은 "소위 유명 목회자들이 개척하여 성장한 교회들 대부분이 수평이동이다. 특별히 사례비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두 분이 개척하신 교회들은 더 그렇다. 한 영혼이 돌아와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되려면 적게는 5년에서 10년은 걸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개척하자마자 수백명 혹은 수천명이 모이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각자의 교회에서 힘겹게 버티며 봉사하고 있는 성도들이 옮겨간 것은 아닐까? 이것이 과연 오순절에 나타났던 성령님의 역사일까요?"라면서 "이러한 쏠림현상(tipping point)은 교회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기독교 전체의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러한 교회들은 시설과 프로그램 같은 것들에 투자해서 더 많은 수평이동을 추구하기 보다는 성도님들을 훈련시켜서 작은 교회로 파송하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방향이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직접 개척교회를 해봤고, 우리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대형교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형교회의 성도를 아무 것도 없는 나의 개척교회로 빼앗아오는 수평이동에 성공해본 경험(?)도 있다. 물론 불신자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꼭 양뺏기의 관점에서 봐야 할까? 양뺏기가 아니라 전도하던 중에 현재 교회에서 너무 힘들어 해서 다른 교회를 찾는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에서 상처 받고 시험 들어 교회를 찾는 이들도 많이 만났다. 이런 이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교회를 찾아 치유와 회복을 맛볼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교회의 성도들을 빼앗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단 신천지처럼, 대형교회가 개척교회 성도들을 빼앗으려고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문제지만, 그렇게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대형교회로 오려고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이들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비판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교회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좋아서 그런 것이 잘 갖추어진 교회로 옮긴다면, 그것이 그 성도의 관점이고 견해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그런 것이 아니다. 중소형교회 목회자라 할지라도, 참된 목회자라면 기꺼이 따르고자 찾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재 교회를 떠나 대형교회로 가려고 했던 이들이라면, 이미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에 충성심을 잃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결국에는 다른 교회로 가거나 아예 신앙을 잃을 수도 있다. 왜 자신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성도가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상처를 받고 다른 교회로 옮기려고 하는지에 대해 점검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목회자는 성도수가 많고 적음에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시험에 드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지 못함으로 인해,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지 못함으로 인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 대해 성도수가 적었다고, 사례비 적게 받았다고 심판하실까?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열심히 사역하셨지만, 5천 명 정도로 밖에(대부분의 대형교회 목회자만 못하다) 성장 못했고, 그것도 결국에는 다 도망갔다. 하지만 예수는 참이었고, 진짜였고, 결국 인간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예수께서는 부활하고 승천하심으로 죽은 후에 오히려 부흥과 생명의 역사를 여셨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서 열심히 예수와 사도들을 따라 사역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역일 뿐이 아닌가? 십자가는 내가 지지만, 부활은 내 영역이 아니다. 고난은 내가 당하지만, 영광은 내 영역이 아니다. 하나님은 주기도 하시고, 가져가기도 하시니, 자신이 할 사명만 감당하면 된다.
대형교회에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중소형교회라고 문제 없는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양자가 서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참된 교회, 참된 공동체를 세우고, 영혼구원과 세계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동역자로써 대화하고 협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무엇보다 대형교회가 많은 것을 가진 자로써, 중소형교회들을 돕고 섬기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낮아지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섬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무조건 대형교회를 비판만 하는 것은, 하나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입장에서는 제 살 베기와 같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배울 것은 배우자. 그렇게 함께 성장해가자.
4) 개인 능력의 차이
필자는 이 글이 특히 대형교회와 중소형교회, 대형교회 목사와 중소형교회 목사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설교의 차이 등 개인 능력의 차이, 교회시설의 차이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 깊은 슬픔과 함께 마치 가나안 족속들을 보면서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했던 이스라엘 정탐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스스로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
도전자는 챔피온을 이기기 위해서 챔피온을 능가하는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말 그대로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패기가 있어야 한다. 중소형교회라고, 중소형교회 목사라고, 중소형교회 다니는 성도라고 대형교회만 못한가? 중소형교회, 중소형교회 목사, 중교형교회 성도는 열등한 존재인가? 자신은 능력이 없어서 중소형교회 다니고, 중소형교회를 맡은 목사가 됐는가?
필자는 오히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는 사도 바울의 말이 떠오른다.
또 어부와 창기 등으로 가득했던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인 예수의 제자가 떠오르고, 10만의 대군을 무찌른 기드온의 300용사가 떠오른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인간의 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요인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내 교회가 중소형교회인지, 대형교회인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교회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중소형교회를 통해서 대형교회를, 중소형교회 목회자를 통해서 대형교회 목회자를, 중소형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대형교회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일을 행하실 것이며,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날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대형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고, 대형교회 목회를 해본 적도 없지만, 물론 원래부터 신분이 천하고, 가진 것도 없고, 실력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따라서 현재의 교회를 다니고 있고 현재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소형교회, 중소형교회 목회자, 중소형교회 성도들, 그대들은 절대로 열등한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자리에 두셨을 뿐이며,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죽기까지 충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상을 주실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유 목사의 이번 사례비 공개가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지나치게 비판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례비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는 현상황이 안타깝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사례비 많이 받느냐 적게 받느냐에 있지 않을 테니까.
호산나교회가 중소형교회 목회자가 아니라 대형교회 목회자를 청빙한 것도 완전히 환영할 일도 아니지만, 이 교회는 전임 담임목사가 스스로의 역량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성도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고백하는 용기를 가진 대형교회 목회자는 거의 처음 보는 듯 하다.) 교회를 갑자기 물러나 교회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목회자를 청빙하는 도전적인 선택을 하기 보다 어느 정도 검증된 대형교회의 목회자를 청빙하는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고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최선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회의 대다수가 동의해서 선택했다면, 기도의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