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헌금을 교회에 하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하라고 하거나 성도들에게 중소형교회로 가라고 하는 등 '튀는 교회'들이 나오면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깊이 있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또 아직 살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들 교회들이 튀는 결정을 내릴 때, 꼭 다른 사람들에게 튀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신념에 따라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 또 튀는 결정을 내리면, 칭찬도 받겠지만 반작용으로 안 좋은 소리도 들을 수 잇기 때문에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아예 튀려고 하는 경우도, 그래서 하나의 모델로써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많은 언론들은 이슈와 클릭을 찾아 튀는 것들을 찾고 있고, 그런 것이 포착되면 기사화한다. 그래서 이슈가 된다. 그리고 꼭 언론으로 보도되지 않아도, 요즘은 소셜 미디어 시대다. 특정 개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개인이나 교회는, 자신들의 결정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튀는 결정을 내릴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 진리로 돌아가는 튀는 결정이어야 하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개신교로 불려지는 기독교는 그 의미에서부터 '저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개신교회는 또 개혁교회라는 말로도 불려지는데, 이는 진정한 교회는 날마다 죽고 다시 사는, 새롭게 되는, 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항의 방향, 변화의 방향, 개혁의 방향이다. 무조건적인 저항, 변화, 개혁이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본질이 되어야 한다.

어쨌든 요즘 들어 튀는 교회들이 나오는 것은, 지금의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참된 성경적 교회로 돌아가는 몸부림과 저항, 개혁이 필요하다는 시대의 음성으로 들려온다. 그리고 최근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놓고 성경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에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 중 하나는 대형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중소형교회에 가라고 하는 움직임이다.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과, 중소형교회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아울러 요즘 들어 평등에 대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이다 보니,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복음의 정신이기도 하다.

주요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있는 인천방주교회는 3월 13일 교회 문을 닫기로 했다. 성도들에게 주변의 다른 작은 교회에 나가달라는 것으로, 아예 작은 교회로 옮겨가도 좋다고 한다. 이 교회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몇년 전부터 미자립 교회들을 지정해서 성도들에게 그곳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한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박보영 목사는 아주 강력한 간증으로 인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유명한 목회자이기도 하다. 박 목사는 작은 교회에 대한 마음으로 인해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에 기초한 결단인지, 작은 교회를 돕는 근본적인 대책인지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것이 한 교회의 움직임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한국교회 전체가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문제의 본질은 작은 교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은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면, 그곳에 성도를 보내려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그렇다면, 왜 작은 교회는 현재 작은 교회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다 문을 닫기까지 하는 것일까? 대형 교회로 양뺏기를 당해서 그럴까?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 대형 교회의 자정 능력에만 맡기지 말고, 교단이 나서서, 한국교회 전체가 나서서 대형교회의 양뺏기에 대해 중재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작은 교회 안에 성장에 걸림이 되는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하고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럴 경우, 작은 교회에 성도들이 간다고 그 교회가, 그곳으로 가는 성도에게 모두 유익이 될까?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지는 않을까?

필자는 나름 입맛이 까다롭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서, (다 그렇겠지만) 음식이 맛있을 경우 다시 찾지만, 맛이 없으면 거의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이럴 경우 음식 맛이 없는 집이 망하면 안 되니 다시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음식점이 스스로 맛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변화하고 개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끝이 안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가 된 후에 나서야 한다. 음식점이 잘 되는 곳에 가보면 그런 이유가 있다. 망하는 곳도 그런 이유가 있다. 따라서 철저한 사례 분석과 벤치 마킹 등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요즘 자영업자들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실력이 있어도 망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에만 바라보게 하지 말고, 세계로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있다. 대형교회가 온갖 횡포를 부려 모든 물고기를 싹슬이 하고 있다면, 교단과 한국교회 차원에서 중재해야 하겠지만, 작은 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가 역량이 부족하다면, 교단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형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작은 교회에 보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작은 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 스스로의 저항과 변화,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없을까? 성도들을 중소형교회로 보내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을 고쳐내는 것이 작은 교회를 살리기 위한 더 본질적인 해법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더 강한 믿음이 요구되는 것 같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자신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가? 예수님도 공생애 전에 30년의 훈련이 있었고, 다윗도 양치기 목동 생활에 이어 사울 왕에게 몰리고 쫓기는 10여년의 광야 훈련을 받았고, 모세는 40년은 바로 궁전에서, 40년은 광야에서 양을 치며 훈련을 받았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도 이러했거늘, 범인들은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훈련이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충분하게 훈련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신의 소명을 감당하다 자신이 가진 것은 한 달란트 뿐이라서 다른 이들처럼 다섯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고 한 달란트만 남겨도 만족할 것인가? 사역을 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예를 들어 요셉처럼 노예로, 죄수로 추락해도, 예수님처럼 그 끝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을 당해도 변치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무엇보다 교단 총회는 작은 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신음하고 있는 이 상황을 놓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최고급 세단을 몰고 기사까지 거느리고 이런 저런 명목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넉넉하게 사역하는데, 중소형교회 목회자들은 사역에 올인해도 부족할판에 투잡, 스리잡을 뛰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단 총회는 이런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천방주교회 같은 개교회들에게 이 문제를 맡기고 방치할 것인가? 그렇다면 교단 총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또 목회자 안수만 주고 끝내지 말고, 목회자에 대한 계속 훈련을 실시하면서 목회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서, 작은 교회들이,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스스로 자립하게 도와야 된다. 학위를 주는 목적으로 신학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참 목회자를 양성하는, 그리고 이들이 진정한 목회자가 될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신학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해주는 나라가 된 한국처럼, 작은 교회들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교회로까지 성장하게 해야 한다.

물론 교단적 차원에서도 고민하고 노력도 하고 있겠지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오늘의 교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교단 총회가 목회자 안수를 해줘서 목회자를 배출해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작은 교회가, 작은 교회 목회자가 스스로 알아서 크도록 방치하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자식을 낳아 놓기만 하고 기르는 책임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단 총회 차원에서 대형교회들을 설득하고 설득해서 작은 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돕도록 이끌어주고, 또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리더십 훈련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천방주교회의 이번 일에 앞서 지난 1월 10일 주일예배에서 서울 쌍문동 높은뜻정의교회 오대식 담임목사는 '헌금 없는 주일'을 선언해 '튀는 교회'가 됐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교단 총회들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 안에 있는 진정한 문제에 대해 충분하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개교회 차원에서 한국교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한국교회 지도자들, 교단 총회 등이 중소형교회의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여기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자리는 군림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하라고,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군림하는 자리에는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결하려고는 나서지 않아 보인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국교회가 점점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