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의 막판 이슈로 떠오른 손해배상 청구가 주목받고 있다.
사측은 불법 파업으로 인해 수천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며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실제로 배상할 능력이 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이 같은 행위는 보복 수단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22일 노동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사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 금융동 6층에서 계속해서 교섭 중이다. 이날 교섭의 핵심 안건은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폐업한 하청업체에서 근무한 조합원의 고용 승계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파업의 주요 배경인 임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날 마라톤협상 끝에 사측이 제시한 '4.5% 인상안'을 하청노조가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양측은 현재 손해배상 청구 문제를 놓고 협상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불법 파업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으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고, 사측이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는 손해배상 청구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억압하기 위한 악질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손해배상과 관련한 규정은 민법 제750조에 나와 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가 그것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하청노조 파업의 위법·불법성에 대한 것부터가 논란인데, 노동계는 파업이 합법적인 쟁의행위인 만큼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들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33조와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를 근거로 제시한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직장 점거행위가 불법일 수는 있지만, 파업 자체가 불법이 될 수는 없다"며 "하지만 현재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모든 손해를 하청노조가 배상하라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과 관련해서는 국가별로 판단이 조금씩 다르다.
영국은 1906년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의 규율을 위한 법률'(An Act to provide for the Regulation of Trade Unions and Trade Disputes)을 통해 노조에 대한 불법행위 소송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반면, 한국 대법원은 1994년 동산의료원 노조 파업과 관련해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전액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민사상 그 배상책임이 면제되는 손해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국한된다고 풀이해야 할 것이고,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은 사용자는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에서는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적지 않게 이뤄졌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많게는 수십·수백억원에 달하는 손해 배상을 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파업을 한 근로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 선진국에서는 있기 힘든 일로, 근로자와 노동조합을 길들여 무력화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소속 윤애림 박사도 통화에서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보복하기 위한 행태"라며 "조정 절차를 거친 끝에 합법적 파업으로 노무 제공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오후 1시까지 진행되는 대우조선해양 원청노조 대우조선지회의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 결과가 주목된다.
투표 결과가 공권력 투입 여부와 관련한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탈퇴하는 것으로 결정되면 앞으로 대우조선해양 원청·하청 노조 활동의 불씨가 사그라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도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며 "반면 부결되면 강제 진압에 나설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