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와 무기거래를 타진 중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 측이 최근 국제회의에서 한미 군사공조를 이유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시스템이 훼손됐다고 한 발언이 새삼 관심을 끈다.
발언 자체가 대북 제재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제사회의 상식을 깬 것일 뿐 아니라 미리부터 러시아가 북한과의 무기거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엔 회원국들이 지지해온 가치 체계를 흔들어보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와서다.
5일(화) 유엔 군축회의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달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1차 준비위원회에서 핵안보 분야의 한·미 공조 활동을 비판했다.
미하일 콘드라텐코프 러시아 외교부 비확산 군축국 부국장 대행은 "수년간 북한이 NPT를 위반했다고 비판하는 일이 일반적이었고 유엔 안보리는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여러 결의를 채택했다"면서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으며 한미 양국은 지난 4월 공동 핵계획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7월 18일에는 미국의 핵무장 잠수함이 부산항을 방문했다"며 "이런 행동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전체 시스템을 훼손하는 것으로 책임은 한미 양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NPT가 각국이 핵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을 제약하고 있다는 말도 꺼냈다. 콘드라텐코프 부국장 대행은 "각국의 핵기술 접근을 막을 구실로 NPT가 사용되는 건 파괴적인 경향이 있으며 불공정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발언은 그간 러시아가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을 비판하는 북한 측 입장을 두둔할 때 사용한 논리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풀이된다.
대체로 러시아는 한미 군사 공조가 동북아 역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정도의 반응을 내놓았지만 이번에는 유엔 안보리 시스템을 먼저 훼손한 것은 핵 공조에 나선 한미 양국이라는 주장을 꺼낸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국제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공감대 속에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이 도출됐다는 맥락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공조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합법적 행동인데도, 그로 인해 '분위기가 바뀌고', '안보리 시스템이 훼손됐다'고 말하는 것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지 않았던 러시아가 별 고민 없이 내놓을 주장은 아니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무기 거래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시 콘드라텐코프 부국장 대행의 발언이 이런 움직임과 상통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유엔 주재 한미일 3국 대사는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가 안보리 결의에 위배된다며 협상 중단을 촉구한 상태다.
안보리 시스템의 정당성을 먼저 훼손한 쪽은 한미 양국이라는 러시아 측의 주장은 이처럼 무기거래의 부당성이 거론되기 앞서 한미 양국에 책임을 돌려보려는 일종의 명분 쌓기 내지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는다.
콘드라텐코프 부국장 대행의 회의 발언 중에는 러시아가 원자력 산업 선도국으로서 중국·터키 등과 평화적인 원자력 기술 협력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민간 선박을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가 러시아라는 말도 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북한과 무기 거래 협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할 다양한 탄약을 공급받는 대신 핵 추진 잠수함과 위성 등 첨단기술을 이전할 수 있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콘드라텐코프 부국장 대행이 평화적인 원자력 협력 사업을 거론한 것도 러시아가 안보 분야에서 추진할 각종 거래를 두고 불법을 의심하는 시선을 차단해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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