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갈등으로 추가제재 막더니 기존 제재까지 무력화 태세
크렘린궁 "美경고보다 북러 이익이 중요"...안보리 금지 무기거래도 강행 분위기

김정은 위원장이 전용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4월24일 전용 열차로 러시아와 북한의 접경 지역인 하산역에 도착,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의 자료사진. 2023.9.11 [러시아 연해주 주 정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 )

러시아가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유엔 제재 문제를 논의할 의향을 밝히면서 회담 결과에 따라 기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체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안보리에서의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논의 주제가 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북한 친구들과 이 주제에 대해 논의를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이 보도했다.

논의할 사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안보리 대북제재가 불법이라고 주장해 온 북한과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공조하려는 의사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YTN에 출연, 러시아 측 발언에 대해 "미국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할 거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보리 제재 문제에 있어서도 조금 완화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외교에 있어서는 프로파간다도 있기 때문에 실제 어떻게 진행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P5)의 일원인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현대 국제사회의 비확산 체제를 만들었던 주인공 중 하나다.

2016∼2017년에는 북한의 대형 도발에 대응해 안보리가 잇따라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는 데 중국과 함께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현재의 대북제재 체제가 만들어지는 데 사실상 동참해온 셈이다.

그러나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이 답보하자 러시아는 태도를 바꿔 2021년 중국과 함께 안보리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제재 완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대치 등 지정학적 변화는 태도 변화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지난해 북한이 대형 도발을 재개한 이후 러시아는 거부권을 내세워 안보리의 대북제재 채택에 계속 제동을 걸어왔는데 비확산 질서 유지 필요성보다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추가 제재를 가로막는 정도였다면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한발 더 나아가 기존 제재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북한과 협력해 대놓고 기존 제재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다.

이번 회담에서 북러가 논의할 것으로 보이는 군사 협력은 북한에 대량살상무기(WMD)는 물론 모든 재래식 무기의 수출입·판매·이전을 금지한 안보리 제재에 정면 위반이다. 안보리는 위성발사 또는 우주발사체를 포함해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어떤 형태의 대북 기술협력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과 무기거래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미국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미국의 경고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북한을 포함한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경고가 아닌 양국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등은 북러 무기거래 시도시 추가 제재 등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지닌 상임이사국으로 남아있는 한 안보리에서 대북·대러 추가제재가 통과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한미 등은 서방 진영과 협력해 독자 제재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의 대러 무기 이전은 유럽 국가에도 민감한 문제여서 제재 전선이 확대될 수도 있다.

장호진 차관은 "안보리가 그런(제재) 기능을 못 한 지가 좀 됐기 때문에 유사 입장국 간의 독자제재 형태로 많이 전개가 되는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이나 한국, 일본 등 범서방 진영의 협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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