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가 총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 가량을 투자한 러시아 공장을 현지 기업에 단돈 14만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재진출 가능성에 대비해 2년 내엔 되사올 수 있는 '바이백'(재구매) 조건을 계약에 포함했다.
현대차는 19일(현지시간)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현대자동차 러시아 생산법인(HMMR)'의 지분 전체를 매각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매각 자산에는 연 23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뿐 아니라 인근 연산 10만 대 규모의 옛 제너럴모터스(GM) 공장 부지도 포함됐다.
10억달러 이상 투자한 현대 기아차 생산공장의 자산 가치는 장부상 약 4100억원(현대차·기아 포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매각 예정가는 1만루블, 한화로 약 14만원에 불과하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적자규모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지난해 3월부터 생산과 수출이 모조리 멈춘 상태에서 '리스크'를 덜어내는 차원에서 현지 업체에 매각하다 보니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상징적인 값에 매각하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수자인 아트 파이낸스는 벤처투자 기업으로 최근 폭스바겐의 러시아 공장과 자회사 지분도 인수한 바 있다.
앞서 일본 닛산자동차와 프랑스 르노자동차도 각각 1유로(약 1400원)와 2루블(약 28원)에 러시아 법인을 현지 업체에 넘긴 바 있다. 이들 기업도 바이백 조건을 달았다.
이렇다보니 "러시아 정부가 자국 내 고용 안정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외국 기업 자산을 강제로 국유화한다"(파이낸셜타임즈)는 비판도 나왔다. 현대차 역시 2년 내에 되사올 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붙였지만, 이땐 매각가 아닌 시세로 매입해야 한다.
현대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된지 1년 9개월 만에 매각 결정을 내렸다.
앞서 현대차는 정몽구 명예회장 주도로 지난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완성차 공장을 구축했다. 동유럽 시장 교두보 확보, 첨단 우주항공 기술 도입과 관련한 러시아 측의 협조 등 전략적 목표도 있었다.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솔라리스, 크레타, 리오 등 인기 차종을 생산했다.
2021년 8월엔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1위(28.7%)까지 올랐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로 부품 수급난을 겪으면서 지난해 3월부터 공장 문을 아예 닫아야 했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2301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 순손실 규모도 2270억원이 넘었다.